바이올린 연주자로써의 비발디
안토니오 비발디의 아버지였던 지오바니 바티스타 비발디는 바이올린 연주자로 산 마르코 성당 오케스트라 단원이었으며 베네치아의 몇몇 극장에서 연주했을 뿐만 아니라 바이올린 선생님으로도 활동을 했었습니다. 아마 이 때문에 안토니오 비발디의 첫 번째 선생님은 바로 아버지였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토니오 비발디는 매우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죠. 아마도 스스로도 인정받는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비발디의 아버지는 아들의 재능을 알아봤을 것이며 아들의 재능을 더 꽃피울 수 있게 음악수업을 열중할 수 있게 했을 것입니다.
비발디가 연주한 기록이 등장하는 것은 1696년이었다고 합니다. 비발디가 18살이었던 1696년 산마르코 성당의 크리스마스 공연에 보조 연주자로 보수를 받은 기록이 비발디가 공식적으로 바이올린을 처음으로 연주한 기록이라고 합니다. 이후 비발디는 매우 뛰어난 바이올린 주자로 인정받게 됩니다. 1701년 한 기록에서는 지오바니 바티스타 비발디와 그의 아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그 아들은 아버지만큼이나 바이올린을 잘 켠다고 언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1703년 사제로 서품을 받은 비발디는 성무에서 빠지는 대신 "피에타"로 가서 그곳에서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일을 맡게 되었죠. 하지만 비발디는 바이올린 연주자로써도 활발히 활동했었던듯합니다.
1706년과 1711년에 발행된 베네치아 관광 가이드 팸플릿에서는 지오바니 바티스타 비발디와 그의 아들을 베네치아의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들 중 한 명으로 소개하고 있으며,1711년,1712년 1717년에는 비발디 부자의 바이올린 연주회에 대한 기록도 남아있다고 합니다.
1713년 빈센차의 산타 코로나 성당에서의 연주에 대해서 "매우 놀라운 연주를 보여줬다"라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뛰어난 바이올린 실력을 보여줬었다고 합니다.
또 1715년 독일의 건축가이자 음악 애호가였던 요한 프리드리히 아르만트 폰 우펜바흐는 비발디의 연주를 듣고 비발디의 연주에 대해서 "... 나에게 매우 충격적이었다. 누구도 그렇게 연주할 수도 한적도 없었다.... 네개의 손가락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움직였다"라고 언급하면서 비발디의 연주에 대해서 극찬하고 있다고 합니다.
1717년 연주회를 본 한 명은 ".... 내 생애 이런 연주는 이전에는 비슷한 것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라고 이야기할 정도였습니다.
비발디가 로마에 갔던 시기 비발디는 교황 앞에서 두 번이나 연주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아마도 1724년경으로 추정하는데, 비발디는 이에 대해서 ".... 극장에서 연주했으며, 심지어는 내 연주를 듣고 싶어 하셨던 성하 앞에서도 연주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합니다.
1737년 60살의 비발디는 후원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저는 이제 첫 번째 공연을 제외하고는 절대 오케스트라와 공연하지 않습니다. 제가 공연을 하는 것을 더 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편지를 보내고 있는데 아마도 비발디는 이때 이제 그가 바이올린 연주보다는 작곡자로서 더 잘 알려지길 원했었던듯합니다.
비발디는 동시대에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로 전 유럽에 명성을 알렸습니다. 비발디가 사망했을 때 그에 대해서 "매우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라고 언급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비발디는 이런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기에 250편 이상의 바이올린 곡들을 작곡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재능을 바탕으로 작곡된 비발디의 바이올린곡들은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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