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로써의 비발디와 안나 지로
안토니오 비발디는 음악에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제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게 됩니다. 비발디처럼 신분이 낮은 이들에게 "사제"라는 직업은 사회적 지위를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는 발판이기도 했었습니다. 또 비발디가 가진 재능을 고려해볼 때 사제가 되는 것이 그의 재능에 훨씬 더 도움이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듯합니다.
안토니오 비발디는 1693년 15살의 나이로 사제가 되는 수업을 받기 시작합니다. 재미난 것은 비발디는 수도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 집에 살면서 집 근처 교회에서 수련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수련방식은 비발디가 사제 서품 받는데 무려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리게 했다고 합니다. 비발디는 1703년 25살의 나이로 사제로 서품 받게 됩니다.
사제가 된 1703년 비발디는 그의 생애의 상당 부분을 있게 되고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오스트랄레 델라 피에타의 사제이자 바이올린 선생님으로 부임하게 됩니다. 이 당시 사제들은 이런 식으로 일을 많이 했었다고 합니다만, 특이하게도 비발디는 1706년 성무(미사 등을 보는일)에서 제외됩니다. 훗날 비발디는 이런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가슴에 있는 질병 때문이라고 언급합니다. 태어날 때 매우 허약했었던 비발디는 아마 평생 천식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데 이런 상태는 비발디가 성무를 볼 수 없게 했었던듯합니다.
비발디는 병약했으며 그는 훗날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여행이나 어디 돌아다니기 무척이나 힘든 상태였기에 성무에서 빠지게 되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쩌면 비발디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병으로 변명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가 꽤나 힘들어했다는 것은 사실인듯합니다.
어쩌면 이런 비발디의 상태는 그가 사제가 되는 수련을 할 때 수도원이 아니라 집에서 머물게 만들었으며 또 성무에서 제외되고 오스트랄레 델라 피에타의 선생님으로 부임하는 것으로 그의 지위가 주어지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듯합니다.
사제였던 비발디의 삶에 불명예가 된 이름이 있었으니 바로 제자였던 안나 지로입니다. 1710년 만투바에서 태어난 안나 지로는 거의 비발디의 딸뻘로, 1724년 메조 소프라노로 베네치아에서 데뷔하게 됩니다. 이후 그녀는 비발디 오페라의 여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했으며 안나 지로와 그녀의 자매는 비발디와 자주 함께 여행을 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비발디의 후원자들에게 비발디와 안나 지로가 특별한 관계가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 충분했었죠. 특히 붉은 머리의 사제와 젊은 여자 제자가 함께 다니는 모습은 비발디에게 악의를 가진 사람들의 좋은 표적이 되었습니다.
사실 평생 비발디는 가족과 함께 살았으며 이런 상황에서 "비밀연애"가 가능했을지는 의문입니다. 게다가 베네치아 같은 도시에서 비밀리에 누군가와 연애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비록 동시대 많은 이들이나 현대의 학자들이 비발디와 안나 지로의 사이가 "특별했다"라고 생각하지만 아마도 비발디의 말대로 둘의 사이는 스승과 제자 그 이상의 사이가 아니었을 가능성도 상당히 커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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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늘 비발디의 말을 굳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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