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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Oct 02. 2015

마누라만 없으면...

작센의 선제후 요한 게오르그 4세

작센의 선제후인 요한 게오르그 4세는 작센의 선제후인 요한 게오르그 3세와 그의 부인인 덴마크의 안나 소피아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밑으로는 두 살 어린 남동생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가 있었죠.

1691년 12월 아버지가 사망한 후 요한 게오르그는 작센의 선제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때까지 미혼이었으며 곧 그의 어머니인 안나 조피 선제후비는 아들에게 결혼하라고 압력을 행사합니다.


작센의 선제후 요한 게오르그 4세


사실 이때 이미 요한 게오르그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선제후는 자신보다 7살 어린 "빌라"라는 애칭의 마그달레나 시빌라 폰 나이트슈위츠를 정부로 두고 그녀와 함께 지내고 있었습니다. 사실 요한 게오르그 4세가 빌라와 처음 만난 것은 아버지가 살아있었을 때였습니다. 요한 게오르그 3세는 살아있었을 때 아들과 빌라를 떼어놓기 위해 무척 애썼다고 합니다. 왜냐면 빌라의 어머니는 한때 요한 게오르그 3세의 정부였으며 선제후의 명으로 빌라의 아버지로 알려지는 인물과 결혼했기 때문이었죠.

요한 게오르그 3세의 행동은 사람들이 빌라가 사실은 선제후의 딸이기에 아들과 떼어놓으려 한다는 이야기를 나오게 만듭니다. 이런 추문이 돌았지만 빌라를 너무나 사랑한 요한 게오르그 4세는 빌라와 헤어질 마음이 없었으며 사람들에게 빌라가 자신의 여동생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강하게 부인했다고 전해집니다.



마그달레나 시빌라 폰 나이트슈위츠, "빌라",로칠트 백작부인



요한 게오르그는 선제후가 된 다음해에 결혼하라는 압력을 받게 됩니다. 선제후는 빌라를 너무나 사랑했지만 빌라와는 결혼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빌라가 그의 이복 여동생이라는 소문도 중요했지만, 사실 선제후의 지위를 가진 그는 자신의 지위와 동등한 통치가문의 여성과 결혼해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귀천상혼"이어서 상속권을 박탈당하거나, 상속권을 인정받는다고 하더라도 권리를 가진 다른 이들의 반발로 인해 잘못하면 계승권을 두고 다툼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죠.

아마도 선제후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빌라와 헤어지거나 아니면 적어도 적당한 여성과 결혼해서 후계자를 얻어야 한다고 압박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딸을 줄 왕실은 흔치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요한 게오르그는 가문에 걸맞은 여성과 결혼하게 됩니다. 그녀는 작센-아이제나흐의 엘레오노레로 호엔촐레른 가문의 분가 중 한 가문인 안스바흐 공의 과부이기도 했었죠. 그녀는 두 아이와 조용히 살고 있었는데 이런 그녀에게 이 혼담을 가져와서 결혼시킨 사람들이 바로 브란덴부르크 선제후(후에 프로이센 국왕 부부)였습니다. 선제후부부는 이런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는  선제후에게 같은 작센가문 출신의 엘레오노레가 적합하다고 여겼으며 또 호엔촐레른 가문과 연줄 있는 그녀가 작센 선제후와 결혼하면서 작센과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간의 우호를 다질 수 있다고 여겼을듯합니다.


작센-아이제나흐의 엘레오노레



아마 엘레오노레 역시 이런 상황을 알고 있었겠지만, 아들이 후계자도 아니고 전처 자식이 남편의 뒤를 이었기에 아마도 재혼하는 것이 더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던듯합니다. 게다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부부의 권유도 있었고요.  사실 당시 정부 없는 군주가 없었고 초혼인 선제후와 결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을듯합니다. 결국 엘레오노레는 요한 게오르그 4세와 결혼합니다.


하지만 요한 게오르그는 자신의 아내를 대놓고 무시하는데  그는 선제후의 공식 거처에 사는 아내를 피해 정부인 빌라와 함께 다른 궁전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게다가 후계자를 낳는 것은 선제후 부부의 의무였기에 정 없는 부부라도 어쩔 수 없이  함께해야 했었고 엘레오노레는 아이를 임신합니다. 하지만 엘레오노레는 아이를 두 번이나 유산했으며 후계자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상상임신까지 하는 등 작센에서 힘겨운 삶을 살게 됩니다.


후계자를 얻기 위해 결혼했지만 후계자를 얻지 못하자 요한 게오르그는 엘레오노레에 대한 감정이 미움으로 바뀌게 됩니다. 엘레오노레 때문에 사랑하는 빌라와 정식 결혼할 수 없게 되었다고 여긴 것이었죠. 그리고 선제후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됩니다. 바로 아내를 살해하려 한 것이었죠. 선제후는 자신의 아내를 칼로 찔러서 죽이려 했습니다. 다행히 선제후의 동생이었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가 옆에 있다가 형의 칼을 손으로 막았다고 합니다. 선제후비는 무사했지만 선제후의 동생인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는 손에 장애를 가지게 되었죠.


작센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 후에 작센의 선제후, 폴란드의 국왕


결국 이런 상황까지 이르게 된 결혼생활은 누군가 죽으면서 끝나게 됩니다.

선제후의 정부였던 빌라는 딸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선제후는 그녀에게 "로칠트 백작부인"이라는 칭호를 하사하죠. 하지만 빌라는 곧 천연두에 걸렸으며 선제후의 품안에서 사망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 곁에서 간호하던 선제후 역시 천연두에 감염되어서 빌라가 죽은지 한 달도 안되어서 사망하게 되죠.


또다시 과부가 된 엘레오노레는 작센을 떠나 첫 번째 결혼으로 태어난 두 아이들과 조용히 살았습니다. 하지만 작센 선제후와의 불행한 결혼 생활은 그녀의 삶을 파괴했고, 엘레오노레 역시 선제후가 죽은 2년 후에 사망했습니다.


더하기

후에 엘레오노레의 아들은 후계자 없이 사망한 형의 뒤를 이어 안스바흐를 이어받게 됩니다. 딸은 책임감을 느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의 궁정에서 키워졌으며 이런 인연으로 영국의 왕비가 되죠.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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