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아라 Oct 01. 2015

또 보나파르트 가문 수장 문제..

또 부자 간의 문제 그리고 중간에 낀 손자

아버지 플롱-플롱과 수장이 되는 문제 때문에 엄청 힘들어했던 보나파르트 가문의 수장이자 지지자들에게 "나폴레옹 5세"로 불린 나폴레옹 빅토르는 결혼을 결사 반대한 벨기에의 레오폴 2세때문에 아주 늦게 그의 딸인 벨기에의 클레망틴과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클레망틴의 아버지가 죽은 뒤에 결혼할 수 있었는데 "욕먹으면 오래 산다"라는 옛말 틀리지 않게 콩고 문제로 국제적으로 욕먹었던 레오폴 2세는 꽤나 오래 살았었죠.


결혼할 때 클레망틴이 38살이었으며 나폴레옹 빅토르는 클레망틴보다 무려 10살이나 많은 나이였습니다. 하지만 행복한 결혼생활이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늦은 나이에 결혼했기에 두 명의 자녀가 태어나죠. 딸인 마리 클로틸드와 아들인 루이습니다. 늦게 결혼했기에 아들인 루이가 12살에 나폴레옹 빅토르는 사망합니다. 그리고 이제 루이가 보나파르트 가문의 수장으로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을 물려받게 되죠.


루이의 가족들은 브뤼셀에서 살았으며 루이는 여러 곳에서 교육받습니다. 보나파르트 가문을 이어갈 사람이었기에 어린 시절 가문의 최고 어른인 외제니 황후와 함께 지내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그는 비록 보나파르트 가문의 수장으로 프랑스에서 사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프랑스의 공직 등에 오르는 것도  금지되었지만, 위대한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을 잇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던듯합니다.


루이, "나폴레옹 6세"


2차 대전이 발발하자 루이는 애국심으로 프랑스 수상에게 자신도 프랑스군으로 전선에 나갈 수 있게 해 달라고 편지를 보냅니다. 하지만 이 제안은 보기 좋게 거절당하죠. 이에 굴하지 않고 루이는 "과거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 프랑스 외인부대로 눈길을 돌립니다. 그는 가명으로 프랑스 외인부대에 입대해서 북아프리카에서 있었죠. 하지만 프랑스는 결국 독일의 손에 넘어가게 되고 루이는 이제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활동에 참가합니다. 그는 드골이 런던에서 "자유 프랑스군"을 조직해서 독일에 대항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영국으로 향하지만 독일에 의해 체포되어서 갇히게 되죠. 풀려 난 뒤 루이는 다시 프랑스 레지스탕스 그룹에 가입하죠. 물론 가명으로 말입니다. 그는 레지스탕스 활동 중 거의 죽을뻔했는데 일곱 명이서 정찰을 하던 중 교전을 했고, 루이를 제외한 다른 여섯 명은 사망했으며 루이 역시 중상을 입었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은 그가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는 계기가 되었을듯합니다. 


전후 그는 스위스에서 살았는데, 이후 프랑스에서 법이 바뀐 뒤 프랑스로 옮겨가서 살았습니다. 전후 그는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지루하셨죠? 아하하 루이의 삶을 알아야 본편을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을 중요시한 루이는 아들인 샤를의 결혼문제에도 신경을 씁니다. 그는 아들을 무려 부르봉 가문의 후손과 결혼시킵니다. 부르봉-양시칠리 가문의 수장 딸인 베아트리스와 아들을 결혼시킨 것이었죠. 물론 좀 아이러니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나폴레옹 1세가 자신의 가문을 유럽의 왕가로 인정받기 위해 친척들을 유럽 여러 왕가와 통혼케 했던 것을 생각하면 나름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행동을 한 것일듯합니다.


그런데 샤를과 베아트리스는 결혼 20년 만인 1989년 이혼하고 맙니다. 그리고 샤를은 1996년 이혼한 여성이자 이미 오래도록 사귀고 있었던 여성과 결혼해버립니다. 둘의 딸이 1992년에 태어난 것을 봐서 아마 오래도록 사귄 사이 같았습니다. 결혼을 안 한 이유를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의 아버지의 유언장을 보면 루이가 아들 샤를의 행동에 대해서 못마땅해했던 부분이 많았던듯합니다.


"나폴레옹 6세"의 가족들, 저기 맨 뒤에 서있는 아들이 샤를입니다. 아니 장남을 왜 저기 세워뒀대요--;;


샤를이 이렇게 재혼한 다음해인 1997년 루이가 사망합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샤를이 가문의 수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죽기 일곱 달 전에 작성된 그의 유언장에는 가문의 수장 지위를 아들 샤를이 아니라 샤를의 장남인 11살의 장 크리스토프에게 물려준다고 명시되어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루이의 아버지인 빅토르와 루이의 할아버지였던 플롱-플롱의 갈등이 샤를과 장-크리스토프 사이에 그대로 재현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샤를의 장남이 할아버지가 죽었을 때 겨우 11살이었던 미성년자였다는 것입니다.


현재 대부분 샤를과 장-크리스토프를 둘 다 가문의 수장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장 크리스토프는 언론과 거의 접촉하지 않고 활발한 정치활동 중인 아버지 샤를에 비해서 크게 자신을 어필하지 않고 있기에 주로 언론에는 "부자 간에는 이상이 없다"라고 강조하는 아버지 샤를의 의견이 주로 이야기됩니다. 

최근 기사들에서는 이제 서서히 그가 독자적으로 여러 일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만 아버지가 수장이 아니라는 소리를 하지는 않는듯하네요.


장-크리스토프,"나폴레옹 8세" 그런데 얼굴은 증조할머니인 클레망틴 공주를 너무 과하게 닮아서 오를레앙 가문 얼굴이랑 비슷하다죠.


보아하니 아버지가 잘 나가는데 싸움할 필요가 없을듯합니다. 정치가로 활발한 활동 중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역시 정치할 모양인데 말입니다.


더하기

그런데 확실히 루이의 레지스탕스 활동이 후손들에게는 엄청나게 도움이 되는듯하네요. 인터뷰에 보니까 할아버지가 레지스탕스 활동했다고 자랑질하는군요. 


사진출처

http://www.parismatch.com/Actu/Societe/Jean-Christophe-Napoleon-Sans-rancune-784722

위키 미디어 커먼스

매거진의 이전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절대 결혼 허락 못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