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모르지 않게 되어서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는 것이 정말 많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이유는
정말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가족들이랑 여행을 참 많이 다녔거든요.
그때의 경험이 아직도 참 생생합니다. 오감을 자극하는 체험은 아직도 생생한 추억이 되어,
살아가며 경험하는 모든 순간을 최대한 많은 감각을 동원하여 경험하는 습관을 가지게 했습니다.
가장 강렬하게 몸에 남아있는 건 갯벌 체험이었어요. 자주 가기도 했고, 또 가면 몇 시간이고 뻘밭에 앉아서 놀았습니다. 뛰면서 보는 세상과 걸으면서 보는 세상은 다르잖아요, 예를 들어 길가에 핀 들꽃을 구경할 수 있느냐의 차이처럼. 걸으면서 보는 세상과 앉아서 보는 세상도 또 다르단 걸 느꼈습니다. 느린 것들이 만들어내는 발자취와, 사람 눈치 보며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내는 갯벌 친구들. 무심코 지나갔을 곳에도 어느 생명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아무리 작은 존재라도 살고자 하는 의지를 저렇게 최선을 다해서 표현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어떤 감각으로 경험하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어떤 분위기를 좋아하는구나를 스스로 정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감각을 깨우는 일, 그런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장소 등을 스스로 찾아가며 좋아하며 주변에 알리는 일을 했습니다. 세상을 나만의 감각으로 새롭게 해석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좋아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정말 많았습니다.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기 아까울 만큼 내가 경험할 것이 정말 많았기 때이지요.
감각을 통해 경험하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면 놓치게 되는 주변의 것들을 포함해, 속도를
늦추면 경험할 수 있는 감각이 정말 많습니다. 저는 요즘 빠르게 여러 장소를 오가야 하기에 차를 타고 다니는데, 넓은 들판을 달릴 때나 사람들이 많은 도심을 지날 때나 그 장소에서 느낄 수 있는 소리, 향, 분위기 등을 충분히 느끼며 지나가지 못해 참 아쉽습니다. 여러분은 목적지가 아닌 길에서의 경험을 충분히 느끼며 살고 계신가요?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공부를 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합니다.
그러면 공부를 통해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하면, 그건... 대답을 잘 못합니다.
직업을 물어보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청소년 시기에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직업을 다 탐구해 보고 딱 하나로 결정지을 수 있겠어요. 그냥 어떻게 살고 싶은지 궁금해서 물어보는데, 공부를 열심히 하는 친구의 입에서도 자신이 꿈꾸는 미래를 듣기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아무래도 경험의 부족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교육을 중요시하죠. 그리고 머리 좋은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사회입니다. 똑똑하다고 하면 그의 말을 믿고, 심지어 그가 공부한 분야가 아니어도 그의 말에 힘이 실립니다. 아마도 우리는 다양한 걸 다 잘하는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학과와 직업을 선택하게 만들어주는 시스템에 살고 있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아이들도 그래서 좋아하는 것 하나를 찾아가기보다는 일단 다 잘해놓고 그다음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자는 식으로 교육을 받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부는 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지만 스스로가 뭐 때문에 공부를 하고 싶은 건지 정의를 내리지 못할 경우가 많죠. 그런데 참, 그래서 어느 정도는 이 방식이 통합니다. 이 방식으로 의사도 키워내고, 공학자도 키워내고, 판사도 키워내고, 정치인도 키워내고 했죠, 그것도 만능에 가까운 사람으로요.
말씀드렸듯 저는 경험을 통해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의 내릴 수 있었죠. 경험,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그 경험을 미디어를 통해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기 전에, 무엇을 좋아하도록 강요당하는 사회라는 거죠. 미디어의 노출은 꾸밈없는 아이들의 솔직한 응답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24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를 각각 첨부합니다. 첫째 자료는 초등 고학년 330명, 둘째 자료는 1200개 학교 조사입니다.
모든 아이들이 모든 것을 다 잘하도록 교육받은 뒤에 미디어가 좋다고 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고, 그렇게 우리가 만들고 싶은 어른에 적합한 아이들을 선발하고 나머지는 그제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야 하는 구조. 저는 이 구조가 굉장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각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것이 맞을 텐데 우리는 왜, 가장 사랑받을 자리가 있는 것처럼 아이들을 가르치고 그 자리에 들어가야만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는 식으로 교육을 하고 있을까요?
공부시키는 것, 좋습니다. 저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니 공부를 시켜야지요. 하지만, 그전에, 왜 공부를 하고 싶은지를 찾아주고 싶습니다. 그건 교육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자신만의 고유의 가치를 타인이 교육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스스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어디를 굳이 가지 않더라도 그냥 제자리에 앉아서 주위를 천천히 둘러볼 수 있는 여유라도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는 커뮤니티를 만들어볼까 생각 중에 있습니다. 브런치를 통해 제가 느낀 그 필요성을 계속 연재하고, 어떤 식으로 그 커뮤니티를 발전시키면 좋을지 소중한 독자님들과 소통을 해보려는 큰 꿈이 있습니다. 조회수부터 잘 나와야겠지만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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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이 더 이상 쫓기듯 공부하는 비효율적인 시대 속에 살게 하고 싶지 않은 분들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