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어학연수] Result

by 다락방

지난주 수요일은 5 level 을 마무리하는 Final Exam 이 있었다.

3레벨에서도, 4레벨에서도 가장 높은 스코어인 HD 를 받았고, 5레벨에서도 그걸 기대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지문을 읽을 때마다 모르는 단어들이 수십개씩 튀어나오고, 라이팅 글자 수는 더 많아지고, 리스닝은 통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HD 를 받기 위해서는 공부를 좀 해야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뭘 어떻게 공부한단 말인가 싶기도 했다. 교재나 프린트물의 지문을 좀 읽어보고, 교재에 있는 오디오 파일을 좀 들어보자 싶었지만, 너무 게을러서 그게 잘 안됐고, 막판에는 열이 나고 아파서 공부를 아예 포기해버렸다. 그래, 평소 실력으로 보자. 수업 시간에는 열심히 집중했던 나를 믿어보자, 하면서도 불안했었다.


시험 당일, T 를 만나 너 시험 준비 열심히 했냐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어떻게 했어? 물었더니, 그동안 배웠던 지문들과 배우지 않았어도 가지고 있는 지문들을 모두 읽어보고 오디오파일도 다 들었다고 했다. 아!! 나는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이 영어학습 과정을 마치면 그 다음으로 진학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HD 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시험 보기 몇주전부터 걱정하고 고민하고 공부했던 터다. mid 나 mock 에서 나랑 점수 차이가 거의 나질 않아서, 아 점점 더 점수 좋아지는구나, 어쩌면 이 친구가 HD 를 받을 수도 있겠어 싶었다. 3레벨에서 그 친구와 나 모두 HD 였지만, 어려워진 4레벨에서 그 친구는 D 를 받았더랬다. 언제나 성실한 학생이어서 내가 좋아했지만, 이번엔 더 열심히 하고 있었다. 아 불안하다, 내가 너무 손놓고 있었어...


시험이 시작되었고, 시험지를 받아들었다. 시험지에 학번과 이름을 적어넣고 가장 궁금한 마지막의 라이팅 토픽을 보고 싶어 시험지를 넘겨보았다. 감독관들은 뒤를 먼저 보지 말라고 한다. 굳이 그러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하여간 토픽을 봤는데, 오, 이거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던 토픽이었다. 다만 살짝 다른 식의 접근이었는데, 나는 소설 미디어에 대해 나올 거라고 생각했고, 그러나 출제된 토픽은 열살 이하의 어린 아이들에게 소셜미디어가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거였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저런 취지의 글이었다. 나는 소셜 미디어에 대해 준비했던 적이 있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일단 두 가지 이유는 간단하게 시험지에 잊지 않기 위해 적어두었는데, 사실 반론을 포함해서 근거는 세가지여야 했다. 아, 하나 더가 뭐였더라... 해서 안되겠다 만들자 싶어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서 근거를 생각해두었다. 자, 이건 이따가 쓰자.


그리고 리스닝 시간. 와- 너무 어려웠다. 두 번 들려주는 거로는 파악할 수가 없었다. 보니까 교재나 프린트물에서 변형된 질문들이 보였다. 만약 미리 준비해 지문을 읽고 오디오를 들어두었다면 답하기가 당연히 더 나았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어떤 듣기는 당연히 너무나 새로운 거였다. 와, 이거 안들리는데? 나는 겁이 났다.


그리고 읽기를 풀어나가는데, 이 역시 어려운거다. 게다가 지문은 왜그렇게 길어. 시간은 자꾸 흐르고, 과연 나는 라이팅에 시간을 얼마나 투자할 수 있을 것인가. 자꾸만 시간을 확인해야 했다. 4레벨 시험때는 한시간 정도 일찍 끝내서 시험장을 가장 먼저 나서는 사람이었는데, 와, 이거 시간이 부족한거 아닌가 몰라. 읽기 문제도 너무 어려워서 이걸 어쩌나 이걸 어쩌나 하면서 어쨌든 답을 하고 라이팅으로 넘어갔다. 수시로 시간을 체크했다. 끝나기 한 십분 전이었나, T 가 제출하고 나가는게 보였다. 나는 T 에게 입모양으로 '나 기다려' 라고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했다. 그동안엔 그러지 않았는데, 이번엔 시험본 친구와 어땠는지 너무 얘기해보고 싶은거다.


곧이어 나도 시험지를 제출하고 밖으로 나갔다. 나가보니 T 는 자신의 노트북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거 코끼리 문제도 여기 지문이 있잖아, 하면서 보여주는데 '나는 몰랐어!' 했다. 리스닝 어려웠지!! 했더니 '나는 리스닝은 괜찮았어' 하는게 아닌가. 어려운 것도 있었지만 괜찮았다고 생각한다는거다. 진심인가.. 나 진짜 너무 어려웠는데.. 평소 나보다 리스닝 못하던 친구인데...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건가.. 그리고 이거봐, 여기 이 지문도 나왔잖아 하는데... 네, 저는 처음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이것은 무엇인가 너무 절망스러웠다. 나 듣기 너무 어려웠어, smart homes 에 대한 거랑 refugee 부분이랑 안들렸어 ㅠㅠ 하면서 '나 패쓰를 못할까봐 걱정돼 '라고 말했다. 그렇게 조금 수다를 떨다가 헤어졌다.


집에 가는 길에 다른반 5 레벨 학생인 X 에게 어땠냐고 물어보니, 리스닝이 terrible 이라고 했다. 자기는 writing 도 자신 없다고 했다. HD 가 목표인데 큰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같은 반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너무 어려웠다고 했고, L 은 라이팅을 아주 조금밖에 쓰지 못했다고 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고.


나는 이때부터 걱정하기 시작했다.

정말 너무 어려웠다. 듣기에서 너무 많이 틀린 것 같다. 나는 그동안 HD 로 마무리하긴 했지만, 이번엔 자신이 없다. 그런데, HD 를 받지 못한다면 내 자신에게 너무 실망할 것 같다. 너무 스스로에게 창피할 것 같다. 나는 정말 너무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시험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가 않았다. 결과는 일주일 후에 알 수 있는데, 그 일주일이 미치겠는거다.


시험 끝난 다음날엔 호주 멜번으로 여행을 갔다. 가서도 나는 시험에 대해 걱정을 했고, 하루는 꿈을 꾸기도 했다. 시험 성적이 발표되는 꿈이었다. 꿈에서 나는 HD 를 받았다. 어휴, 그럼 그렇지, 하고 일어났는데 꿈이었다. 세상에, 호주 멜번에서 내가 시험 결과에 대한 꿈을 꿨다니까?

아, 진짜 HD 못받으면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또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런데 속으로 스스로에 대한 쪽팔림을 지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나 자신에게 쪽팔리는게 진짜 너무 싫은데.


어제는 호주에서 싱가폴로 돌아오는 날이었다.

싱가폴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하는 동안, 나는 비행기모드의 폰을 꺼내서 연락을 받을 수 있게끔 켜두었다. 곧이어 쏟아지는 메세지들.


첫번째는 가족들이었다. 엄마가 갑상선에 혹이 발견되어 검사를 하셨고, 그 결과를 들으러 여동생과 남동생이 함께 갔는데, 그 결과를 내가 듣기 전에 내 비행기가 출발하는 바람에 그 소식이 가장 궁금했다. 양성 종양으로 암이 아니며, 그러나 1년에 한번씩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다행이었다.


두번째는 앤드류였다. 나랑 호주에서 놀았던 앤드류는, '오늘 호주는 비가 많이 왔어. 아마도 네가 갔다고 우는건가봐' 라고 메세지를 보내왔다. 하하하하. 다정해. 내가 아는 가장 다정한 남자사람이다.


세번째는 X 였다. 너 기말시험 성적 확인했냐, 고 내게 묻고 있었다. 아니! 너했어? 물었더니 했다고, HD 라고 했다. 그는 다른 반이지만, 성실한 학생이라는 것을 내가 안다. 만나서 대화할 때도 영어를 잘하는 친구였고, HD 와 1등에 대해서 생각하는 친구였다. 오, 너 이메일로 받은거야, 물어보니 아니라고, 학교 홈에 들어가서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너무 걱정돼 ㅠㅠ 라고 말하니, 그는 내게 '너 mock 랑 mid 에서 나보다 점수 높았잖아!' 라고 했다. 휴.. 나는 비행기 안에서, 아직 사람들이 내리기 전에, 그러니까 내리기를 기다리다가 이제 내리고 있는 그 때에, 참지 못하고 노트북을 열었다. 내 폰과 테더링을 해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뒤, 얼른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제발 제발, 스크롤해 결과를 내리면서, D 여도 어쩔 수 없지만, 그런데 D 싫어, 그러면 나 스스로 너무 쪽팔릴거야, 제발... 하고 드디어 결과를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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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 ㅠㅠ

HD 다 ㅠㅠ HD 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나는 안도했다. 안심했다. 정말 다행이다. 쪽팔리지 않을 수 있어. 사실 이 나이에 회사까지 그만두고 여기 와서 이걸 못받으면 진짜 너무 챙피할 것 같았다. 사실, 가장 높은 스코어를 받았다고해서 영어를 잘하냐 하면, 그건 아닌것 같다. 이번에도 앤드류랑 대화하면서 나는 나의 영어가 정말 부족함을 느꼈거든. 하.. 아무튼 그래도 가장 높은 스코어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나는 가족들에게 얘기했다. 엄마는 수고했다고했고, 여동생은 나의 HD 를 의심한 적 없다고 했다. 휴...


몇 몇 친구들에게 물었다. T 는 HD 가 필요했는데, D를 받았다고 했다. A 와 J 는 C 를 받았다고 했다. 아마도 우리반에서 HD 는 나 혼자가 아닐까 싶다. 어휴, 너무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게 내 영어 실력이 좋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이번에 나는 앤드류랑 대화하면서 부족함을 너무 느꼈고, 그래서 영어 공부를 그만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에 돌아가서도 계속 공부할 생각이다. 학교를 다닌다면 더 좋겠지만, 이제 학교는 다니지 않고 앱을 통해서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그리고 조만간 IELTS 도 치러볼 생각이다. X 는 일전에 치른 적이 있고 그리고 여기서 5레벨을 마쳤으니 다시 쳐볼 거라 했다. 응 나도 그럴거야, 너 결과 나오면 알려줘 라고 내가 말하자, 그는 내게 '응 그런데 내년 쯤에나 나는 치러볼 생각이야, 너도 네 결과 알려줘' 했다. 응 그럴게, 라고 했다. 휴..


시험 접수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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