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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락방 Sep 18. 2020

《여성성의 신화》

그 함정의 열쇠는 물론 교육이다

《여성성의 신화》, 베티 프리단 지음, 갈라파고스, 2018

1921년에 태어난 '베티 프리단'은 이 책을 1963년에 출간했다. 세상은 여자들에게 집에 있으면서 청소와 요리를 하고  남편과 아이를 키우는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여자의 역할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그랬고 대중매체에서도 그랬다. 여자들은  대학을 가지 않거나 대학에 다니다가도 중퇴하고 결혼을 했다. 그러는 것이 여자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라 여겼다. 그렇게 결혼을 해  집안일을 하고 남편 뒷바라지에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분명 이것이 여성이 해야 할 일이며 이것이 여성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바라고 하는데도 어딘가 공허했다. 분명 누가 봐도 부족할 게 없어 보이는데, 하라는 대로 하고 있는데, 살라는 대로 살고 있는데  어째서 이렇게 공허할까. 왜 이렇게 다 아플까. 그런데 어디가 아픈지 병원에서는 왜 진단 내릴 수 없어하는 걸까. 그리고 왜 그렇게  아픈 가정주부가 나뿐만이 아닌 건가.


베티 프리단이 대단한 건 이런 시기를 살면서 '나도 아프다'  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이게 왜 그럴까' 그리고 이걸 낫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깊이 생각했다는 거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현상에 대해 이상하다는 의문을 갖고 원인을 파악하려고 하고 또 문제 해결방법까지 제시한 게 베티 프리단이 이 책으로 한 일이다.  누구보다 앞서 나아갔고 누구보다 생각이 깊었다. 그 점에 있어서는 부인할 수가 없다. 모두가 살라는 대로 살면서 지치고 공허해할 때  거기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노력하다니, 그 하나 만으로도 베티 프리단의 업적은 기릴만하다.



그런  문제를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써낸 베티 프리단의 이 책은 그래서 매우 '세다'. 만약 페미니즘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고 관심도 없던 '기혼 유자녀 고학력자 전업주부 여성'이 이 책을 읽었다면 아마도 한동안 헤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일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후려쳐지는 걸 활자로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 뭔가 비어있다는 걸 노골적으로  짚어내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베티 프리단은 가사 노동 자체는 그렇게 머리 써서 할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거,  누구든 시켜도 할 수 있어, 남자들도 잘할 수 있지. 그런데 머리 좋고 지적인 여자들이 매일매일 반복적으로 아무 발전 없는  일을 쳇바퀴 돌리듯 하고 있으니 안 아프고 배기겠니? 오늘 하는 일 내일 또 하고, 그러면서 하루를 보내고 일 년을 보내야 하니  새로운 청소도구를 쓰고 새로운 청소방법을 써보고.. 그런다고 그 일이 해결되니? 그렇다면 아이를 낳아야 하지. 아이를 낳아 육아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시간이 지나가겠지. 그런데, 아이는 언제까지 낳을 수 있나. 그것 역시 언젠가는 그만 낳아야 해. 매해 아이를  낳을 수도 없잖아.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다 자라면, 스무 살 전후로 결혼한 여성들이 30,40대가 되었을 때, 그때 그  시간은 어떻게 보낼 것이야?



베티  프리단은 지적인 성인 여성들을 이렇게 집에 가둬두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시종일관 주장하고 있다. 그건 그들 자신을 위해서도 좋지  않지만, 그들의 아이들에게도 결코 좋은 영향을 줄 수 없다고 얘기한다. 아이들에게만 온 열과 성의를 다함으로써 아이들에게 대리  만족을 느끼고 싶어 하고 아이들에게 역할 대행을 시키고 싶어 하기 때문에, 그런 아이들은 성장할 수 없고 각종 질환들을 끌어안게  된다고. 그러면서 동성애 까지도 이런 식으로 발현될 수 있다고 얘기하는 거다. 이게 단순히 여성들을 위한 문제가 아니라니까, 라는  의도로 강하게 말하려고 했던 까닭이겠지만, 이런 주장들은 반발을 살 위험이 너무 높아 보인다. 어떤 의도로 쓴 글인지 알겠지만,  그렇다 해도 '아이들이 잘못되는 건 다 엄마 탓이라니까!'라고 읽히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아이들 잘못되는 건 다 엄마 탓이야,  그건 그런데 엄마를 그렇게 만든 세상 탓이지. 이렇게 주장하려는 바이긴 하지만, 그래도 왜 그렇게 죄다 엄마 탓을 하는 거지?라고,  어떤 의도인 줄 알면서도 거부반응이 들었다. 물론 알고 있다. 조곤조곤 살살 말했다면 아마 귀 기울여 듣는 사람도 현저히 적었을 것일뿐더러, 들었어도 새기질 않았겠지. 거칠게, 세게 말해야만 들어주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나 세게 얘기한 것일 테다.



결론은  놀랍게도, 그리고 당연하게도 '교육'이었다. 여성들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 모든 문제들은 여성들이 고등교육을 받음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고 얘기하는 거다. 너무 당연한 말인데도 교육이 답이라고 말하는 베티 프리단의 주장을 읽노라니 너무 짜릿했다.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 것 같았다. 베티 프리단은 여성 자신을 위해서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결혼한다고 교육을 멈추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라고. 교육은 어떻게든 답이 된다고. 배우기를 멈추지 말라는 거다. 그건 동네에서 문화센터에 가 교양을 쌓는  그런 교육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남자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배우는 바로 그 교육, 똑같은 교육이었다. 언어, 화학, 수학, 물리  등에 대한 교육들. 그런 교육의 과정을 필수적으로 마치라고 한다. 어떻게든 마치라고. 그러면 설사 결혼하고 일에서 멀어졌어도,  나중에 아이들이 다 자란 뒤에도 세상에 나가서 뭘 어떻게 할지 감이라도 잡을 수 있다는 거다. 자, 어디 가서 무얼 해볼까, 그리고  그걸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하는 것들을 알 수 있다는 것. 실제로 그녀가 인터뷰한 전업주부들 중에는 '이름 붙일  수 없는 병'으로부터 스스로 빠져나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 투자하기를 아끼지 않았다.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림 그리기를 배운다던가 학교를 다시 다닌다던가. 뭔가를 배웠던 사람들은 그다음을 향해 나아갈 방법을 찾을 수  있는데, 교육 자체로부터 멀어졌던 사람들은 아이들이 자라고 이제 자신에게 쏟을 시간이 왔을 때조차, 어디에서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는 거다.



또한, 교육을 받고 거기에 머리를 쓰고 그걸 이용해  직장을 다니면서 돈을 버는 것. 이 모든 것이 여성 개인을 위해서도 그리고 그 여성이 속한 가족 구성원들을 위해서도 더 나은  방법이라고 거침없이 주장한다. 남편에게도 아이에게도,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도 높은 여성이 아내인 것이 또 엄마인 것이 더 낫다는  것. 그 가족들은 가족 내에서 더 잘 지낼 수 있었고 가사 노동에 들어가는 수고도 덜 수 있었다. 게다가 아주 흥미롭게 읽은  부분인데, 이렇게 자기만족이 높은 여성이 섹스에서도 더 즐길 수 있었다. 다른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섹스로 즐거움을  찾으려 하거나 아이에 몰두하거나 하게 되는데, 내가 일을 하고 나의 발전을 위해 힘을 쏟는 사람들에게는 섹스가 부수적인 것이  되고, 하면 즐겁게 하지만 굳이 안 한다고 스스로가 사랑받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휩싸이지 않을 수 있다는 거다. 뭐, 너무 당연한  말이다.



미국의 전업주부 여성들이 모두들 아프다고 할 때 그 현상을 직시하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베티 프리단은, 이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린 이후에도 왕성하게 활동한다. 단체를 조직하고 여성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거다. 그러나, 아, 베티 프리단은, 래디컬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걸로 보인다. 남성을 끌어안지 않으려는  래디컬들을 향해 비난한다. 베티 프리단은 반드시 남성과 함께 가야 한다고 하는데, 읽으면서 '베티 프리단, 남자 되게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



이 책은 지금 읽기에는,  그리고 지금의 젊은 페미니스트나 래디컬 페미니스트가 읽기에는 그렇게 획기적은 책은 아니다. 그러나 당시에 이 책이 얼마나  놀라웠을지는, 이 책 속에 숱한 인터뷰이들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베티 프리단이 말하는 여성의 교육, 그리고 여성의  경제적 자립에 있어서는 나 역시 마음 깊이 동의하는 바다. 전업주부로 살며 아프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여자가 어떤 식의  삶의 형태를 선택하든, 단단하게 설 수 있기 위해서 교육을 받고 경제적 자립을 해야 하는 거다. 내가 결혼해 남편과 함께  살더라도, 그리고 그 남편이 운 좋게 돈을 마구 벌어온다고 해도(그레이의 오십 가지 그림자 속 그레이처럼), 거기에 안주하는 게  아니라 나는 내가 교육으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기댄다는 것은, 그 축이 무너졌을 때 나 역시  쏟아져버리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기대야 하는 게 나 자신이라면, 내 축을 내가 잘 세우는 한 내가 쓰러지지 않을 수 있다.



교육에 대한 부분이 너무 짜릿했다. 여성들이 더 많이, 더 열심히 배움에 몰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베티 프리단의 주장은 그런 지점에서 여전히 유의미하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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