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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락방 Sep 17. 2020

《허랜드》

여자들만 사는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


                                                                                                                                                           

《허랜드》, 샬럿 퍼킨스 길먼 지음, 아고라, 2016



여성주의라는 것은 '이것은 어째서 이런가, 뭔가 부조리하다'라는 깨달음에서, 의문에서  시작한다. 왜 그런가 물어도 '오래 그래 왔어'라는 대답밖에 들을 수 없었으므로 여성들은 페미니즘을 알게 되고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  같다.  여러 차례 언급한 적 있지만, 페미니스트 철학자 윤김지영 선생님은 천주교도로서 성당에 가 미사를 드리면서 왜 여자만  미사보를 쓰는 건지, 그걸 안 쓰면 안되는지에 대해 주변에 물었을 때, '원래 여자만 쓰는 거야'라는 답을 들었고, 그 대답이 성에  안차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나로 말하자면, '최명희'의 [혼불]을 시작하면서 내내 쌓아뒀던 것들이 폭발했다. 대체  왜 여자는 예로부터 이런 취급을 받아야 했는가, 왜 피해자이면서 숨죽여 지내야 했는가, 왜 멸시를 당하면서도 침묵해야 하는가.  그렇게 나는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샬롯 퍼킨스 길먼은 결혼을 하고 전통적인 성역할을  강요하는 남편 때문에 신경쇠약에 걸려버린다. 산후우울증도 여기에 한몫을 했고. 그러나 치료를 위해 찾아간 정신과에서는 그녀에게  지적 활동을 하지 말고 육아와 가사노동에만 집중하라는 처방을 내린다. 이 처방은 그녀를 더 나쁘고 약한 상태로 몰아갔다.


아마  이런 경우 많은 여자들이 점차 시들어가고 더 약해졌을 것이다. 1900년대였으니까. 그러나 샬롯 퍼킨스 길먼은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그만두겠다 말하고 남편과 이혼한다. 자신이 아픈 이유가 뭔지 그녀는 너무 잘 알고 잇었던 탓이다. 자기에게 처방을 내린  의사가 자신을 제대로 진찰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내가 왜 아픈 줄 알아? 그건 지적 활동을 해서가 아니라,  지적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해서야!

의사가 시키는 대로 자기 자신을 침묵 속에 놓아두기보다는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그녀는, 그 일을 계기로 <누런 벽지>라는 자전적 소설을 썼다. 그리고 이 글의 처음에 언급했던 페미니즘, 그러니까 이  모든 일들이 이상하지 않은가, 부조리하지 않은가, 를 생각했던 그녀는 그것을 고발하는 소설을 써낸다. 이 책, [허랜드]가  그것이다.



'허랜드'는 말 그대로 '여자들만 사는 나라'이다. 미국인 남성 세  명이 여자들만 있는 나라라는 말에 호기심과 기대를 가지고 찾아간다. 일단 여자들만 있다는 곳이니 완성되지 않았겠지, 그곳은 많은  것들이 부족할 거야, 여자들의 질투와 시기가 가득하겠지, 젊은 여자들 많겠지, 라는 뻔한 편견으로 그곳에 도착했는데, 오, 이곳은  (여자들에겐) 천국이었다. 여자들만 있는 곳에서 여자들은 스스로 아이를 낳는 법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여자들만 살면서 의식주를 현명하게  해결하며 게다가 나라의 모든 여자들이 굉장히 지적인 거다. 이 모습은 이 미국인 남자들이 결코 생각지 못했던 것이었고, 눈앞에  보면서도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곳에서 그곳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익히며 미국의 문화와 언어 역시 교환하던 그들은,  자시들이 살고 있는 미국을 욕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 많은 부조리한 것들에 대해 침묵하려 하지만, 허랜드에서 살고 있던 여자들의  '당연한' 물음들 앞에 자신들이 살아왔던 남성 위주의 사회가 얼마나 보잘것없었는지, 얼마나 불공평했었는지를 드러내게 된다.



"일부 고등 곤충 가운데에도 그런 예가 있는데, 우리는 그걸 단위생식, 즉 처녀생식이라고 부릅니다."

그녀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생식이란 말은 알겠는데 처녀는 뭐죠?"

그녀의 질문에 난감해하는 테리 대신 제프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처녀란 짝짓기를 하는 동물 가운데 아직 한 번도 짝짓기를 하지 않은 암컷을 부르는 말이에요."

"그렇군요. 처녀라는 말이 수컷에게도 적용되나요? 아니면 수컷한테는 다른 용어를 쓰나요?"

그는 같은 용어를 쓰지만 수컷에게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하고는 급히 질문을 회피했다.

그녀가 말했다. "그런가요? 그렇지만 짝이 없으면 짝짓기가 불가능하잖아요. 그럼 짝짓기 전의 암수 모드는 처녀 아닌가요? 미국에는 수컷 혼자서 생식이 가능한 생명체가 존재하나요?"

그가 대답했다. "내가 아는 바로는 하나도 없습니다." (p.83-84)




하하하하.  물론 이 당연한 의문은 몹시 통쾌했고 너무나 쉽게 여성을 멸시하고 혐오하는 것을 드러내는 방법이라 감탄하며 읽었다. 그런 한편,  이미 백 년도 훨씬 더 전부터 누군가는 '처녀'란 말이 '아직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을 뜻하는 용어로 적절하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했건만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씁쓸했다. 샬롯 퍼킨스 길먼이 그 오래전부터 '이거 이상하잖아!'  부르짖었건만, 그러나 아직까지 '처녀비행', '처녀작' 같은 말을 운운한다는 것은, 샬롯 퍼킨스 길먼의 외침이 모두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게 아닌가. 여성을 혐오하는 문화는 너무나 힘이 셌다. 아주 오래전부터 여자들은 이렇게나 문제점을  지적했건만!!



"우리는 고기는 물론이고 우유를 얻기 위해 소를 키우거든요. 소의 우유는 식단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 음식이죠. 우유를 모아서 유통하는 사업의 규모도 상당하고요."

그녀들은  여전히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그린 소를 가리켰다. "농부들이 소의 젖을 짭니다." 그러고는 우유 통과  의자를 그리고 몸짓으로 소 젖을 짜는 모습을 재연해 보였다. "그러고 나면 우유 배달원이 도시로 가져와 운반하지요. 모두가  아침이면 집 앞에 놓인 우유를 받아볼 수 있답니다."

소멜이 진지하게 물었다. "소는 새끼가 없나요?" (p.88)




역시 길먼은 허랜드 여자의 입을 빌어 묻는다. 소젖은 소 새끼가 먹는 거 아니야?



미국  남자 세명은 각자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제프'는 여성을 천사 대하듯 우러러보고 '테리'는 여성을 성적대상화 하는 데만  급급하며 소위 빻음의 절정을 달린다. 이 이야기 속의 화자인 '밴'은 그들 사이의 중립이라고 칭해지지만, 가장 객관적 시선을  가졌다고 스스로도 자부하지만, 그러나 그가 '남자로 태어나 남자로 살아온' 세월이 어디 가겠는가. 그는 중립을 자처하지만 영락없이  남자다. 그나마 다른 게 있다면 허랜드의 장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 망설이지 않는다는 거, 아내가 섹스를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설득을 하되, 강제하지 않는 거. 그렇다. 테리는 그곳에서도 강간을 시도한다. 누가 남자 아니랄까 봐, 발정기가 아닌데 섹스를  해야 하는 걸 이해 못하는 아내의 방에 몰래 들어가 강간을 시도하는 것. 그러나 그는 허랜드의 건강한 여자들의 손에 맞고 묶인다.  테리는 어떤 여자라도 남자가 정복해주기를 원하는 법이라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었다. 허랜드에서 일 년을 살면서 자신이 알고 있던  고정화된 여성성을 가진 여자들이 아닌 여자들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그나마 혐오와 숭배 가운데에 있던 '밴'은 이  일에 대해서 테리의 강간 시도는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하지만, 그러나 여자에게도 잘못은 있었다고 말한다. 그의 아내는 특히나 더  여성성이 강해 보였다면서.



테리는 강간을 하지 못했고 아내로부터 거절당했다.  게다가 다른 여자들로부터도 감시당한다. 이때 그가 분노에 차 허랜드 여자들을 멸시하며 내뱉는 욕이 '노처녀'이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여자들에게 내뱉는 욕이 노처녀라니, 그게 그가 생각하는 여자들에 대한 욕이라니. 그가 어떤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잘 알 수 있지 않은가. 내가 누누이 '어떤 걸 욕으로 쓰는지가 그 사람을 말해준다'라고 하는 것은  사이언스...



'밴'은 '엘라도어'랑 결혼해서 우정을 나누고 있다. 이런 사랑이  있다는 것, 이렇게나 큰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성애의 당연한 섹스에 대해서, 그리고 양성이  사는 사회에 대해서 늘 엘라도어에게 말했기 때문에 엘라도어는 미국이라는 곳, 양성이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 자기들처럼 한쪽 성만  있는 곳보다 더 나은 곳일 거라고 당연히 전제한다. 그렇게 그들 부부가 미국으로 가면서 이 소설은 끝맺는다. 아흑-

엘라도어는  미국에 가서 어떤 세상을 보게 될까. 그녀가 마주하게 될 세계는 그녀에게 어떤 생각을 심어주게 될까. 그녀가 미국 땅을 밟고 양성  사회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녀는 아마도 이 책의 작가인 샬롯 퍼킨스 길먼처럼, 신경쇠약에 걸리게 되지는 않을까.  그녀에게 이때 내려질 처방은, 그렇다면, 그녀가 원래 살던 행복한 그곳으로, 남성이 없는 그곳으로 가야 하는 게 아닐까.



이  책에는 본편인 <허랜드>를 포함해, 자전적 소설인 <누런 벽지>도 실려있다. 작가의 실제 상황, 삶을  반영한 것인데, 글 쓰는 걸 싫어하는 남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숨어서 글을 써야 하는 여자, 처방이라고는 쉬고 산책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요하는 의사 남편과 살면서 그 처방대로 하다가 단단히  미쳐버린 여자가 나온다. 이 소설을 샬롯 퍼킨스 길먼은  지적 활동을 하지 말라는 처방을 내린 자신의 정신과 의사에게 보냈다는데, 그 의사는 그 소설을 읽었을까? 읽었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책에 실린 <내가 남자라면> 역시 짧은 단편인데, 이 소설을 읽노라면 샬롯 퍼킨스 길먼은  아마도 태어나면서부터 이 사회의 부조리함을 깨달았던 게 아닐까 싶다. 아내가 갑자기 남편인 남자가 되어 남자 옷을 입고 나가면서  옷에 주머니가 많은 것부터 편하게 생각한다. 이렇게 기능성 좋은 옷이라니! 게다가 모자! 실용성을 강조하는 남성들의 모자들이  있는데, 여자들은 왜 모자에 깃털 같은 걸 꼽고 다니는가.  게다가 경제력은 어떻고! 이 모든 걸 1860년 미국에서 태어난 샬럿  퍼킨스 길먼은 알고 있었고 이렇게 글로써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진작에 깨우치고 의문을 갖던 여성의 입을 막으려 했던  정신과 의사라니. 너무 해롭다. 이렇게 글로써 모든 걸 고발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해서 지적 활동을 하지 말라는 처방이라니, 너무나  한심하다. 그런 처방에 굴하지 않고 단호히 앞으로 나가 글을 계속 썼던 샬롯 퍼킨스 길먼은, 아, 얼마나 위대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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