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어학연수] a pivotal person

영어를 말할 때 내가 잊을 수 없는 사람 1

by 다락방

나는 알파벳을 모른 채로 중학교에 진학했다.

그 당시에도 선행학습을 하는 아이들이 없는건 아니었으나, 지금처럼은 아니었고 반에서 손에 꼽았으며 그 아이들 마저도 중학교 입학하기 몇 개월전에 시작했을 뿐이었다. 지금은 그것이 선행학습이라는 것을 알지만, 나는 그런 것도 모른 채로 중학교에 들어갔다. 대문자, 소문자의 존재도 몰랐고, 대문자로 ABC 까지만 알고 D 도 모르는 상태였던지라, 나에게 영어는 아주 낯선 것이었다.


그런 내가 영어를 이해할 리 없었다.

중학교 1학년, 반장선거에 후보로 올라서, 아, 내가 공부를 잘하는 상태로 오긴 했구나, 라고 생각을 했지만, 영어 수업 시간때면 정신이 혼미해졌다. '나'를 뜻하는 'I' 는 항상 대문자로 써야 한다는 것도 도대체 무슨 뜻인줄을 몰랐고, 단어를 열번씩 써오라고 했을 때는, 열번인걸 구분하기 위해 단어마다 점을 찍었다가 선생님에게 단어에 왜 점을 찍냐고 혼났더랬다. 나는 그게 왜 혼날 일인지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teacher 가 왜 티처 로 읽히는지를 모르니, 나는 선생님이 티처라고 발음할 때 얼른 티처 라고 교과서에 연필로 받아적어야 했고, 그걸 선생님이 볼까봐 두려웠다. 나는 영어시간이 너무 싫었다. 내가 무언가 '못하는' 아이라는 걸 받아들이기도 힘들었고, 내가 선생님을 그리고 수업을 두려워한다는 것도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


'발음기호'라는걸 선생님이 얘기하며 번데기 발음이나 돼지꼬리 발음을 설명하실 때, 도대체 '발음기호'라는게 무슨 뜻인줄도 몰랐었는데, 학급에서 유독 선생님의 모든 질문에 답하는 아이가 있었다. 나는 그 아이가 너무 부러워서 쉬는 시간에 '너는 어떻게 그렇게 영어를 잘해?' 라고 물어보니, 그 아이는 개인과외를 받고 있다고 했다. 나는 집에 와서 엄마에게 나도 과외를 시켜달라고 해보았지만, 엄마는 거절했다. 우리집은 과외를 시켜줄만큼 넉넉한 집이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영어를 어려워하자 엄마는 큰 맘 먹고 헌책방에 가 중고 영어 자습서를 사주셨다. 그전에 엄마는 전과나 자습서는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이나 참고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기 능력으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셨고, 나도 그걸 따랐으나,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엄마가 알려줄 수 없는 부분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영어는 자습서를 사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거다.


표지도 없는 중고 자습서를 사들고 와서 밤에 펼쳤는데, 자습서를 들여다봐도 이해할 수 없었다.


I am Insu.


가 도대체 왜 '나는 인수다'로 번역이 되는지를 뚫어져라 쳐다봐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이게 왜 나는 인수야. 그러면서 눈물을 흘렸다. 왜, 이게 왜 나는 인수인건데.


설상가상, 영어 선생님은 무섭기로 소문난 분이셨다. 수업시간에 가르치는 것도 차가운 말투였지만, 아이들을 한명씩 일으켜 세워서 질문을 하던 분이셨고, 못하면 때리는 분이셨다. 그렇다, 나는 체벌이 허용되던 시절에 학교를 다녔다. 나는 국민학교 내내 모범생이었고, 학교에서 뭐든 잘하는 애를 맡고 있었던지라, 내가 체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맞는 학생이 결코 될 수 없었고, 그런데 아이 엠 인수가 왜 나는 인수이다 인지를 몰랐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냥 교과서를 달달 외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업시간, 드디어 선생님은 나를 일으켜 세우셨고, 아마도 그 때 선생님은 내게 '너는 내 친구다'를 영작해보라 시키셨던것 같다. 교과서에 나온 문장이었다. 선생님은 교과서에 나온 것만 물어보셨고, 그래서 나는 그 질문을 듣자마자, 교과서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 떠올린 다음에, 덜덜 떨면서


You're my friend.


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이제 내 뒤의 학생에게로 가시려는데, 나는 너무 놀라서,


"맞아요?"


라고 선생님께 물었고, 그러자 선생님은 '야 이놈아, 니가 말하고 맞았는지 틀렸는지도 모르면 어떡해!" 하고 넘어가셨다. 나는 You're my friend 가 왜 너는 내 친구다인지는 모르지만, 그런데 그 문장이 그런 뜻이라고는 알고있는 채로 영어 시간을 보내는, 그런 학생이었다. 그래서 영어 시간은 내게 공포였고, 영어 자체가 내게 공포였다. 나는 영어가 너무나, 너무나 힘들고 두려웠다. 무슨 말인지를 통 알 수가 없었다. 혼나는 학생이라는 포지션은 결코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알파벳을 금세 외웠지만, 나는 Good 이 왜 굿인지 몰랐다. 그런데,


이 무서운 선생님이 강원도였나 어디로 전근을 가신다고 했다. 남편분이 의사인데 남편을 따라 간다고, 내 기억에는 강당에서 소개됐던것 같다. 그리고 새로 온 영어선생님은 갓 대학을 졸업한 스물다섯의 여성분이셨고, 이 선생님은 결코 무섭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질문하는 건 같았어도, 아이들이 대답을 못한다고 혼내지는 않았다. 나는 영어 시간이 이전처럼 두렵지 않았지만, 동시에 영어 공부를 더 하지도 않았다. 어느틈에 나는 '영어 못하는 애'로 나 자신을 위치시키고 있었다. 내가 그전에 영어 시간에 어떻게든 기를 쓰고 따라가려고 했던 건, '영어 잘하는 애'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혼나지 않는 애'가 되고 싶어서였나보다. 무서운 선생님일 때 88점이었던 영어점수는 새로운 선생님이 되고 79점대로 떨어졌다. 나는 70점대를 받는 아이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그 때 알았다. 나는 더이상 자습서를 보면서 울지도 않았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영어를 버렸다. 그런데,


이 무섭지 않은 젊은 여자선생님이 하루는, 커다란 라디오를 들고 오셨다. 그리고 질판 가득 팝송 가사를 적으셨다. 그건 그 당시 한참 유행하던, 누구나 다 알던 노래, '장국영'의 <To You> 였다. 칠판 가득 가사를 쓰고 선생님은 카세트 테이프를 재생시켜 틀어주신 뒤에, 따라 불러보라고 하셨다. 나는 잘 못하는 영어를 한글로 받아적기 한 뒤에 따라 불렀다. 선생님은 수업 시간 내내 반복해 들려주셨고, 해석도 해주셨다. 나는 영어로 읽으면서 따라 부를 순 없었지만, 비록 한글로 받아적은 걸 따라 불렀지만, 내가 팝송을 따라부른다는 사실에 잔뜩 고무되었다. 팝송을 따라부르는 내 자신이 너무나 멋지게 느껴졌다.


나는 그 날 집으로 달려가자마자 엄마에게 장국영의 투유 카세트 테이프를 사달라고 졸랐다. 엄마는 집 앞 비디오가게로 가서 팝송 짬뽕이 된 싸구려 테이프를 사주셨다. 그때만 해도 리어카에서도 인기팝송을 짜집기해서 팔곤했다. 정품 테이프는 3,500원에서 4,000원 정도였지만, 그런 테이프는 1,000원에서 1,500원 정도였다. 그리고 엄마가 사준 그 테이프에는 장국영의 투 유 말고도 아주 많은 노래들이 있었다. 나는 엄마가 사준 테이프를 반복해서 재생하며 장국영의 투유를 달달 외웠다. 너무 좋았다! 정말 신났다! 팝송을 외워서 따라부른다는 기분은 정말이지 끝내줬다.


이때부터였다.

내가 영어를 생각하는 것이, 영어를 대하는 것이 달라졌다. 갑자기 영어가 즐거운 게 되었다. 나는 내가 영어를 좋아하는 사람이 된 데에는 세 명의 중요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번째가 바로 이 젊은 영어선생님이고, 두번째가 바로 우리 엄마다. 나에게 팝송을 알려준 사람, 그리고 그 팝송으로 공부하게끔 테이프를 사 준 사람. 나는 이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영어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영어에 등돌린 사람이 되었을거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 정말로 중요한 두 사람이다.



그리고 한 명이 더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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