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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락방 Sep 24. 2020

현실을 직시하다

《스틸하우스 레이크》

《스틸하우스 레이크》, 레이철 케인 지음, 피니스아프리카에, 2020

'지나'는 아이 둘을 낳고 함께 살아왔던 다정한 남편 '멜빈'이 젊은 여자 열두명 이상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이 끔찍한 살인은 그들의 집 차고에서 일어났는데, 그녀는 남편이 그곳에서 여자를 죽이고 있을  줄을 전혀 몰랐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에게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냐며 그녀 역시 공범이라고 얘기한다. 그녀는 그렇게 재판을  받고 무죄로 풀려난다.


그녀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아무것도 몰랐다가 무방비 상태에서 남편으로부터  살해당한 여자를 목격하게 되고, 그리고 우연히 그가 그 한 사건의 범인만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녀는 그 일 자체로도  이미 충격적이었지만 그녀의 무죄를 세상이 믿지 않기 때문에 삶이 지옥이 된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계속 거주지를 옮겨야 하고  신분을 바꿔야 했다. 그렇게 거주지와 신분을 바꿔도 감옥에 있는 남편은 계속해 편지를 보내온다. 우리가 얼마나 좋은 가족이었는지,  아이들이 얼마나 그리운지, 그리고 아내를 얼마나 찾아가서 죽이고 싶은지.

지나와 아이들에 대한 협박은 비단  남편으로부터만 오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의 수많은 트롤들은 그녀의 행적을 쫓으며 그녀를 죽이자고, 그 아이들을 죽이자고 한다.  살인자의 아내, 살인자의 공범, 살인자의 자식들. 지나와 아이들에 대한 자료는 인터넷에서 뿌려지고 다른 잔인한 사진들과 합성되어  돌고 있다.


그녀 자신과 그녀의 아이들을 지킬 사람은 그녀 혼자 뿐이다. 그녀가 재판을 받는 동안  그녀의 어머니가 아이들을 맡아준 적이 있었고, 그때 아이들은 할머니와 다정하게 지내며 친해졌다. 할머니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가끔  통화해서 뜬구름 잡는 얘기만 해야 한다. 그들이 어디 있는지, 어떤 이름으로 살고 있는지 할머니에게 조차도 알려서는 안 되니까.  어떤 식으로 그것이 그들을 향해 적의를 가진 이들에게 들어가게 될지 모르니까.



아이들이  자꾸 학교를 옮기는 것도 그리고 친구가 없는 것도 아이들에게 좋은 게 아니어서 지나는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갈등하는데, 마침  스틸하우스 레이크가 바로 앞에 호수가 보이고 한적하며 좋다. 어쩌면 이번에는, 이곳에는 정착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그녀는  뛰면서 체력을 키우고 사격을 열심히 배운다. 그러나 호숫가에서 여성의 시체가 떠오른다. 그 시체는, 전남편이 여성들을 살해했던  방식으로 살해되었고, 이에 지나는 용의자로 지목된다. 익명의 제보가 그녀가 호숫가 보트에 있는 걸 봤다는 거짓을 말한탓이다. 이  살인으로부터 취조를 받고 집에 돌아왔는데 며칠 뒤 또 호수에서 시체가 떠올랐고, 이제 그녀는 확실한 용의자가 되어 다시 경찰에게  잡힌다. 그녀는 아니라고 아니라고 말하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고, 경찰서에 잡혀 있다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그녀의  집에는 빨간 페인트로 온갖 욕이 쓰여있었다.



지나는 이제야 비로소 남편과의  생활에서 잘못된 것들이 인식된다. 사실 그때도 그게 좀 이상했던 거였는데, 그런데 내가 그냥 견디기만 했어, 하는 것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그가 아이들에게 다정한 아빠라고, 그리고 좋은 남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그녀가 아내라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한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서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보지 않았다는 것들을 그녀는 이제  안다. 남편의 거짓을 그녀는 그 당시에 볼 수 없었다. 남편과 함께 있지 않을 때, 이제 그녀는 남편이 자기에게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안다. 남편은 그녀에게 살인을 연습했고, 그녀를 길들였다. 남편은 그녀가 남편에게 의존하게 만들었다. 남편은 그녀의  싫다는 말을 무시했다.



얼마 전에 읽었던 '게일 다인스'의 [포르노랜드]의  내용이 이 책에 겹쳐졌다. 남자 친구 혹은 남편의 이상한 요구에 갈등하는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 포르노에서 본 장면을 그대로  따라 하는 남자들이었는데, 왜 이런 이상한 요구를 하는지 몰라 어떤 여자들은 갈등했고, 어떤 여자들은 거부했고, 어떤 여자들은  견뎠다. '지나'는 견디는 여자였다.



멜은  자심이 숨결 놀이라고 부르는 걸 좋아했다. 내 목에 끈을 감고 조르길 좋아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자국이 남지 않도록 부드럽고  푹신한 재질의 끈을 사용했고, 그걸 사용하는 데 전문가였다. 난 그게 너무 싫어서 그에게 자주 풀어 달라고 이야기했고, 노골적으로  거절당했을 때는 눈앞에서 뭔가 번쩍 하다.... 캄캄해졌다. 다시는 싫다고 거절하지 못했다.

절대  기절할 정도로 세게 조르는 법은 없었지만, 그런 상태에 매우 근접했다. 그리고 난 그걸 견디고 또 견뎠다. 섹스하는 내내 내가  산소를 갈망하는 동안 그에 의해 땅 위로 들렸다 내렸다 하면서 올가미와 사투하는 여자를 그가 떠올리고 있었다는 사실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학대는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그게 잘못됐다고 느꼈던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돌아보면 그가 자신의 살인 놀이에 나를 반복해 이용했다는 생각에.... 오싹 소름이 돋도 구역질이 난다. (p.118)



포르노를  연구한 책들을 읽으면서 항상 드는 의문이었다. 영상 속에서 여자가 남자로부터 고통을 당하는 장면, 그러니까 항문에 고추를 넣고  입안에 넣고 얼굴에 정액을 싸고 여자를 때리고 묶고 목을 조르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어떻게 한쪽 성은 '저걸 해보고 싶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걸까. 나는 이것을 활자로 읽는 것만으로도 괴로운데. 그 영상들 속에서 그것을 '서로의 쾌락'으로 표현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쾌락이 아니라는 건, 그냥 인간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아는 게 아닌가. 트윗에서 그 수많은 짧은 영상들을 신고하면서  내가 느낀 건 괴로움이고 고통이었다. 여자들이 당하는 일들은 성적 학대였다. 그런데 그런 영상을 많은 남자들은 심지어 돈을 주고  본다고 하니 미쳐버리겠는 거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학대하는 걸 보면서 쾌락을 느끼고, 그리고 그걸 직접 해보고 싶어 한다니.


지나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는 거다. 남편은 섹스 도중 그녀의 목을 조른다. 그녀는 싫었다. 이게 좋을 리가 없잖아. 난 생각만 해도 너무  무섭고 끔찍한데, 나랑 섹스하는 남자가 내가 사랑하는 남자이기 때문에 이걸 견뎌야 하는 걸까? 지나는 무서워서 견뎠다. 거절했다가  눈앞이 번쩍 했기 때문에. 섹스할 때 자신의 쾌락을 위해 혹은 서로의 쾌락이라는 명목으로 한쪽의 목을 조른다는 것의 그 폭력성,  그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는 건가? 그 불안정을 그 불안함을 그 공포를? 어떻게 다른 쪽의 목을 조르면서 쾌락을 얻고자 하는 걸까.   설마 부드럽게 졸랐다고 다정하게 봐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쾌락이 그렇게나 중요한 건가. 한쪽을 고통에 빠지게 할 만큼. 그리고  '나는 분명 상대의 허락을 받았고 상대도 좋아했다'라고 하는 남자들은 천 번 만 번 스스로에게 솔직히 묻고 답하기를 바란다. 여자가  정말 자유의지로 그것을 원했을지. 예스라는 답을 받기 위해 자신들이 어떤 말과 행동을 했는지를 정말이지 진지하게 돌아보기를  바란다.



그녀는 죄가 없었다. 그녀는 남편의 살인에 한 번도 공범인 적이 없었고  심지어 남편이 살인범인 지도 몰랐다. 그건 상상한 적도 없다. 그러나 그녀에게 죄책감은 무섭게 따라붙는다. 왜? 그녀가 몰랐다는 것  때문에. 한 남자가 살인범이라는 걸 모르면서 그와 함께 살았고, 그의 아이를 낳았다는 것 때문에 그녀는 세상으로부터 격리된다.  세상은 그녀에게 돌을 던진다. 여자들을 납치해 살인한 건 남편인데, 오히려 남편에게는 추종자가 생기고 팬레터가 쏟아진다. 그러나  그녀는, 그 누구에게도 죽일 년이 되어 있다. 세상은 여자의 말을 믿지 않고, 세상은 여자의 죄를 더 가혹하게 평가한다. 이 책의  작가 레이철 케인은, 이 모든 여성 혐오를 누구보다 인지하고 있다. 그게 이 책을 이 밤에 끝까지 읽게 만들었고, 그게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울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남자 연쇄살인범에게 어떤 광적이고 불건전한 끌림을 느끼는 반면, 공범인 여성은 훨씬 더 증오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여성  혐오와 독선적인 분노, 다른 이들은 안 되지만 이 여자는 망가트려도 괜찮다는 단순하고 맛있는 사실이라는 독이 들어간 수프다.

난 결코 무죄가 아닐 테니 무죄가 된 것을 절대 용서받을 수 없다. (p.246)




레이철  케인은, 죄 없는 여자가 죽일 년이 되어 계속 도망쳐야 하는 이야기를 써냈다. 아니라고 수십 번 외쳐봤자 아무도 여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 경찰도 믿을 수 없었다. 여자는 자신의 돈으로 보안장치를 설치해야 했고, 사격 훈련을 받아야 했다. 자신을 지키는 일은  오로지 자신만이 가능했기 때문에. 게다가 그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눈앞의 적들을 물리쳤다고 해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고 말한다.  여자의 삶에 안전을 위협하는 놈은 결국 한 명이 아니기 때문에. 여자가 스토커로 의심했던 건, 여지없이 스토커였다. 레이첼 케인이  쓴 건 지나라는 인물을 만들어내 진행한 소설이었지만, 현실과 아무것도 다른 게 없었다. 여자는 죄인이 되기는 쉽고 무죄가 되긴  어렵다. 여자는 누구를 믿기도 힘들고 자기 안전은 자기가 책임져야만 한다.




결론은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지만, 그랬기에 더 현실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좋은  소설이었다. 무엇보다 현실을 직시한 소설이었고, 그리고 주인공은 거기에 굴하지 않는다. 스스로 강해지고 또 강해지는 사람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녀가 겪었던 일과 그 일로 인한 트라우마까지, 소설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레이철 케인은 이걸 알고  있고, 그래서 아주 좋은 소설을 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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