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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락방 Sep 25. 2020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결국은 선하고 옳은 길로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무라카미 하루키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문학동네, 2018


이제는  예전만큼 그렇게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즐거웠다. 38년간 꾸준히 글을 써온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듣는다는 건, 언제까지고 읽고 쓰는 걸 계속하고 싶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니까. 게다가 하루키의  의도가 독자에게 어떻게 전해졌다한들, 하루키 본인은 '결국은 선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사람이라고 얘기한다. 해피엔딩이 아니어도  어쨌든 '계속 살아나가자'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고, 선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물론 선하다는 것은 각자의 판단  기준에 따라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알 수 없지만, 나의 선함이 너의 선함이나 모두의 선함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한들 모두를 오래 속이는 것은 불가하다고 얘기한다.


또한 문체와 문장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하루키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문장을 예로 들어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문장을 쓰고자 계속 노력한다는데, 나  역시 글에 있어서 문장과 문체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바, 크게 동의하며 읽었다. 아울러, 하루키가 늘 인지하고 가는 것처럼, 나  역시 챈들러의 '잠 못 이루는 밤은 뚱뚱한 우편배달부만큼 드물다'는 문장을 계속 저기 안쪽에 넣어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내용은 누가 쓰든 크게 달라질 바 없지만, 문체가 그 책이 더 재미있는 책이 될 수 있는가를 결정한다는 하루키의 말은 틀리지  않다.


하루키가 매일 정해진 시간에 꼬박꼬박 글을 쓰고 달리기 역시 꼬박꼬박 하는 것은, 하루키의  팬이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다. 하루키는 일기를 쓰지는 않지만 그런 매일의 기록을 숫자로 남기는 것은 끊임없이  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오늘 달리기를 얼마나 했는지의 수치에 관한 기록.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는  하루키의 신념이다. 하루키는 자신이 '소설에 대해서는 근면한 편'이라고 하는데, 소설가가 소설에 대해 근면한 편이라는 것은 얼마나  마땅하며 근사한가. 이런 하루키의 생각을 읽는 것이 이 책의 기쁨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도 하루키의 영향을 어느 부분 받았거나 받게 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그건 하루키의 영향이라기보다는 나의  성향 탓이겠지만, 매일매일 꼬박꼬박 글을 쓰고 읽고 앞으로도 계속 그걸 놓지 않으려는 자세라고 해야 할까. 그런 삶의 태도들. 그건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겠지만, 그러나 나 역시 하루키가 그런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아는 만큼, 어떻게든 내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지금은 회사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고작 이 정도뿐이지만, 나는 나중에도 일정 시간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에 내어주고  싶다. 그것이 나의 가장 큰 기쁨이니까. 이를테면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하루를 온전히 내게 쓸 시간이 지금보다 더 늘어났을 때,  과연 그런 날이 올진 모르겠지만 더 이상 돈벌이에 연연하지 않아도 좋을 때, 그럴 때에도 나는 하루 중 어느 만큼 의 시간을 뚝 떼어내  글을 쓰는데 들이고 싶다. 내가 혼자 산다면 혼자 사는 대로, 혹은 동거인이 있다면 있는 대로, 그 동거인이 단순히 한 공간을 함께  이용하는 동거인이라거나, 아니면 나랑 함께 한침대에서 잠드는 이라 해도, 그 성별이 남자이든 여자든 그러니까 어떤 형태로  존재한다고 해도, 내가 글을 쓰는 공간으로 들어가 어느 정도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내 동거인도 너무나 당연한 듯이 받아들여주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함께 쓰는 방이 있어야 할 것이고, 따로 쓰는 방도 있어야 할터이니, 큰 집에 살아야 한다. 역시  돈을 벌어야........ 돈이 최고되는 것이다.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를' '가와카미 미에코'가 인터뷰한 기록이다. 가와카미 미에코는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제목은 들어본 책, 《젖과 알》의 작가이다.  《젖과 알》은 출간 당시 독특한 문체로 유명했다 하고 하루키 역시도 그 문체를 극찬하는데, 정작 가와카미 미에코는 그렇게 쓰지  않기로 했다 한다.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여자'작가이기 때문에 문체만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다는 것. 인터뷰 중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칭하던데, 페미니즘을 알고 있는 여성 작가가 인터뷰어가 되어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은 언젠가  한 번은 꼭 거쳐야 하는 게 아니었나 생각하던 바, 즐거이 읽을 수 있었다. 게다가 고대하던 질문 역시 나온다. 가와카미 미에코는  하루키를 인터뷰하기 위해 그의 책들을 한 번 더 읽기도 하고,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이데아'를 파악하기 위해 플라톤을 읽기도  하며, 이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기록해 인터뷰에 임한다. 정말이지 성실한 인터뷰어가 아닐 수 없다. 물론 하루키에 대한 선망을  가진 터라 또한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만난 거라 하루키에 대해 등을 질 순 없는 자세를 베이스에 두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네  작품에서 여성들은 보조적이다, 왜 그렇게 그리느냐'라고 묻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지점이었다. 가와카미 미에코는 자신의 친구들도  하루키의 작품을 읽고 그 점에 의문을 품었다 했고, 나 역시 여성을-특히나 소녀를-그런 식으로 다루는 가에 대해 불만이 있던 터다.  


하루키의 대답은 이 부분에서 실망스러웠다. 자신은 딱히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 자기는  남자든 여자든 그런 것에 크게 개의치 않고 쓴다는 거다. 이 부분에 있어서 하루키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 말은  그에게 진실이겠고 또 진심이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여성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구나, 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냥 관심이 없어.  가와카미 미에코가 자신이 여자 작가이기 때문에 받는 부당함에 대해 토로하지만 하루키는 '그런가요?' 정도로 응시하는 거다. 아  그래? 그렇구나, 그건 그대로 힘들겠구나, 하고 넘어간달까. 이 인터뷰를 하던 당시에 하루키의 나이는 68세였고 1949년생이다.  그래, 49년에 태어난 일본 남자에게 뭐 크게 여성문제에 대해 기대할 게 있을까, 앞으로 딱히 바뀌는 것도 없겠지, 하게 되지만,  그래도 이 긴 인터뷰를 거치며 여성작가로부터 그런 생각, 그런 말을 들었으니, 그래도 아예 듣기 전으로 돌아갈 순 없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오래 해왔다는 것은 반드시  선은 아니겠지만, 그토록 오랜 시간 글을 써오면서 굳은 독자층을 형성했다는 것은, 그의 이야기가 어느 지점에서 신뢰를 주고 있다는  뜻일 테다. 하루키가 지향하는 그 결국은 선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들도 알아챈 걸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그의 유머가 좋아서 그의  책을 읽곤 했지만, 돌이켜보건대, 그의 이야기가 악하거나 한심했다면 진작에 내치지 않았을까.


하루키는  이야기에 힘이 있다고 믿고, 이야기가 오래 버텨온 만큼 앞으로도 이야기가 오래 남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이야기가 아닌가. 각자가 근면한 지점이 모두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운동에, 누군가는 산책에, 누군가는 공부에  근면할 수 있을 것인데, 하루키는 소설에 있어서 자신이 근면하다 했다. 아, 달리기에 있어서도 그렇지. 소설에 대해 근면한  편이라고 말하는 하루키를 보면서 나는 나 역시 읽고 쓰는 일에 매우 근면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 봐, 얼마나 꾸준히 읽고  쓰고 있는가. 나 자체가 딱히 근면한 사람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은 아니겠지만(물론 게으른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읽고 쓰기에  있어서는 근면함을 발휘한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읽고 쓰고 있다. 게다가 굳이 덧붙이자면, 나는 사랑에 있어서도 그렇다. 어느 한  사람을 마음으로 사랑한다면, 그 사랑에 대해서도 쉽게 포기하지도 돌아서지도 않는 것 같다. 사랑을 꾸준히, 성실히, 근면하게 하는  편이다.



나 역시 그동안 보잘것없는 많은 글들을 써오면서 그 안에 선함을,  그리고 옳은 방향을 담아내고자 했었다. 그 길이 맞다는 확신이 조금 더 들게 하는 좋은 책 읽기였다. 이 책을 읽고 하루키가 더  좋아진 건 아니지만, 38년이나 글을 써온 소설가의 글에 대한 생각을 읽는 것은 매우 좋은 책 읽기가 틀림없다. 앞으로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 특히나 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덧.

이들은 총 네 번에 걸쳐 인터뷰를 하고 그때마다 장소를 이동하는데,  '신초샤 클럽'에서 두 번째 인터뷰를 했다며 네 시간 가까이 이어진 인터뷰 동안


'간식으로 나는 초콜릿, 무라카미 씨는 도넛 반 개를, 저녁으로는 모두 함께 가락국수를 먹었다' (p.77)


고  한다. 나는.... 너무 놀랐다. 간식으로... 초콜릿... 고작 그것을...... 아니 게다가 하루키는 뭐여... 도넛 반  개라니.. 장난하나. 도넛 한 개도 아니고 두 개도 아니고 반 개를 간식으로 먹다니.. 도넛이 지름 30센티는 되는 거였을까.  대체 도넛 반 개를 뭐하러 먹지? 너무 이해 안 되는 부분인 것이다. 사실 사람들 다 간식.. 도넛 반 개로 끝내는 건가요? 간식은  햄버거나 샌드위치, 치킨 두 조각... 정도 돼야 하는 거 아닌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이었다............ 지나치게 적은 간식, 게다가 저 가벼운(!) 저녁은 또 뭐람?


엊그제도 퇴근길에 혼자 순댓국 시켜 소주 마신 사람으로서, 정말이지,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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