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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락방 Oct 07. 2020

《금수》

자기 자신을 후려치지 말아요

《금수》, 미야모토 테루 지음, 바다출판사, 2016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은 직업이 없다. 직업이 없어도 뭐 큰 상관은 없다. 아버지가 부자라서, 오히려 도우미까지  두면서 살고 있으니까. 첫 남편이 다른 여자랑 모텔에서 상처 입은 채로 발견되어 이혼을 한 후, 그를 사랑했으므로 펑펑 울었지만,  아버지가 마음 다독이라며 돈을 주고, 여자든 그 돈을 받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지낸다.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은  부정확하다. 그녀는 차를 마시고 생각을 하고 음악을 들으면서 지낸다. 틈틈이 집안일을 하느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집안일은  해주는 다른 사람이 있으니까. 나는 남자랑 이별했다고 아버지가 돈을 주지도 않고, 매일 그렇게 음악만 듣고 남자만 그리워하고  카페에나 가고 어슬렁 거리다가는 굶어 죽는다. 이 여자 팔자가 늘어졌구나, 싶은데, 뭐, 나라도 아버지가 부자여서 돈 다 대주면 일  안 하는 삶을 택하겠지, 하다가도, 어쩌면 이렇게 무능력의 전형적인 케이스일까, 싶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되는데, 히융-,  여자는 얌전히 그렇게 지내다가 아버지가 정해주는 상대와 재혼을 한다. 이 여자의 삶은, 과연 이 여자의 삶인가, 이 여자 아버지의  삶인가.... 이 여자의 정체성은 재혼한 뒤에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키우는 데에 다 바쳐진다. 재혼한 남자 역시 바람을  피운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하아- 그래도 그냥 산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 남자가 바람피우는 것에 딱히 상처도 안 받는다,  사랑하지 않으니까. 그냥 아이를 키우면서... 산다.


그러다가 첫 남편을 우연히 케이블카에서  재회하게 되고, 그와 편지를 주고받게 되는데, 그 편지가 뭐 새로 시작하자 이런 내용은 아니고, 그저 우리 과거에 못다 한 말들,  그 안에 숨겨졌던 못다 표현한 감정들을 주고받는 거라, 간혹 애틋하기도 하다. 이런 시간은 나중에라도 필요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애틋함보다 딥빡침을 더 많이 주는데,


이 첫 남편에게, 여자는, 자신의 두 번째 남편에게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얘기한다. 이 여자의 첫 남편, 두 번째 남편 모두 여자를 두고 바람을 피운 건데, 이에 첫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무척 고분고분한 사람이었습니다. 입 발린 소리가 아니라 지금 생각해도 진심으로 그렇게 느낍니다. 고생을 모르고 곱게만 자라서  이따금 뺨을 한 대 갈겨 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제멋대로 된 구석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오냐오냐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정도로도 제 손 안으로 쏙 들어오는 사람이었으니 그렇게 제멋대로인 점 또한 당신의 매력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제가  알고 있는 당신이고, 새로운 남편에게 어떤가 하는 것은 제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남자의 바람기라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는 본능 같은 것입니다. 남자는 그렇게 생겨먹은 겁니다. 이 얼마나 멋대로 된 말인가, 하고 여성들은 분개하겠지만 사실이  그러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아름다운 아내가 있어도 남자는 기회만 있으면, 또는 그대의 상황에 따라서도 다른 여자와 잘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아내에 대한 애정이 어떻게 되는 건 아닙니다. (p.201)



하아-  아니 이게 무슨 개수작이야. 위 인용문은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 투성인데, 뭐, 다른 건 차치하고, 바람기에 대해 언급하자면,  아니, 무슨 남자의 바람기가 본능이냐.. 이렇게 말하는 건 그냥 핑계다. 아, 지질하기도 하지. 세상에 바람을 피우는 성별이 남자만  있는 게 아니다. 여자들도 바람을 피운다. 나도 연애를 하면서 다른 남자를 꿈꾼 적이 많았고, 다른 남자랑 잠깐 바람을 피운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나는 그것을 '여자에겐 바람기가 본능이야'라고 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바람피운 것에 대해서 내 본능에  그 탓을 하지 않는다. 그건 '내'가 한 일이지 '여자'들에게 그런 성향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앞으로 또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그러지 않을 다짐을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또 바람을 피울 수도 있고 한 눈을 팔  수도 있을 거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나'의 잘못인 거지, 여성적 본능이 아닌 거다. 어디서 남자의 본능 같은 거라고 개소리를  늘어놔...


결혼이라는 제도는 완벽하지 않다. 문제점이 많다. 한 사람이 남은 평생을 다른  한 사람과만 섹스해야 한다는 것은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제도 속으로 들어간 건 결혼한 사람 그 당사자다. 그렇다면  그 제도가 정해놓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 도리다. 그런데 그 약속을 어겼다면, 그것은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며 미안해할 일이지,  본능 운운... 해서 되는 게 아니란 말이다. 배우자라고 해서 결혼한 당신이, 연애 중인 당신이 완벽하기만 할까? 옆집에 이사 온  인력거꾼을 보면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더 나아가고 나아가지 않고는 나 스스로 선택하는 거다. 그것은 내가 결정한  일이지, 내 뼛속에 새겨진 성별이 주는 본능이 아니라는 거다. 이것들은 하여간 다 본능 탓을 하는데, 본능 탓을 한다면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 많다. 게다가 이미 그것이 본능이라고 널리 '잘못' 알려져 있어서, 그렇게 학습되어 있고 우리는 이미 거기에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맞아 섹스는 남자의 본능이지', '맞아 남자의 바람기는 어쩔 수가 없지' 하면서 용서를  하게 되는데, 그 모두를 본능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건, 빠져나가기 위한 수작이자 앞으로 또 그러기 위한 수작이다.




전(前) 아내와  편지를 주고받는 첫 번째 남편, 남자 주인공도 지금 다른 여자랑 살고 있다. 남자는 자신이 하던 일을 망쳤고, 실상 이 동거녀가  벌어오는 돈으로 먹고살고 있는데, 툭하면 그녀에게 상처를 준다. 동거녀는 그를 사랑하고, 그래서 둘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남자가 성실하게, 그리고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데, 이때 동거녀는 이렇게 말한다.



  

"역시 당신은 대단한 사람이에요. 저 같은 사람은 결국 여자라니까요. 거기까지 머리가 안 돌아가요." (p.211)




하아-  이건 또 뭐야... 이 여자는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지금까지 이 남자를 먹여 살리는 것도 이 여자고, 지금도 사업자금이나  아이디어 다 제공한 게 이 여잔데, 영업 좀 한 번 잘한 것 가지고 이 남자를 이렇게나 추켜세우고는, '결국 여자라니까요' 라니,  '거기까지 머리가 안 돌아가요' 라니..... 님하, 쫌......



이 소설 속에 여자가 두 명 나오는데 한 명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의 삶을 살고, 한 명은 고생은 자기가 다하고서(남자의 빚도 갚아준다) 결국 여자라는 이유로 자기 자신을 후려친다. 왜그래요들.....



이  소설을 다 읽고 SNS에 다 읽었다고 올렸더니, 이 책을 나보다 먼저 읽은 친구가 잽싸게 전화를 해왔다. 그리고서는  나와  함께 이 소설 엄청 짜증 난다고 실컷 욕했다. 아아, 같은 책을 읽고 함께 욕하는 건 너무나 즐거운 것..... 그래서 계속 책을  읽어야 하는 거다. (응?)



잠깐잠깐 애잔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애잔함보다 짜증이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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