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

《티스》

by 다락방
common.jpg 《티스》, 밋첼 릭타스타인 감독, 제스 웨이슬러 주연, 2007

여자 주인공 '돈'은 고등학생이다. 고등학생이면서 순결 서약을 하였고, 다른 학교에 순결에 대한 강연을 하러 다니기도 한다. 그러다 학교에 잘생긴 남학생 '토비'가 전학 오는데, 이 녀석은 '돈'의 순결서약을 자꾸 무너뜨리고 싶게 만든다. 토비 역시 순결서약을 했다고 말하면서 돈과 가까워지는데, 서로에게 성적으로 끌리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함께 수영을 하다 동굴에 들어간다. 돈은 재차 '지킬 거지?'를 묻고 토비 역시 그렇다고 하는데, 다른 남자라면 몰라도 토비는 좀 다르지 않을까,라고 영화 보면서 나 역시 생각했던 터라, 갑자기 토비가 옷을 벗고 '참을 만큼 참았어!' 하면서, 싫다는 돈에게 '가만히 있어!'라고 할 때는, 와, 진짜 역겨웠다. 이날까지 살면서 내가 '이 놈이나 저 놈이다 다 거기서 거기다'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역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선 다르게 보려는 게 자꾸 나오는 것 같아. 돈이 되어서 영화에 몰입해 있었기 때문에 싫다는데도 강제적으로 밀고 들어오며 '넌 정신적으로는 순결해!'라는 개소리하는 토비를 보니 진짜 오만정이 다 떨어지고 남자 따위, 다 사라져 버려라, 하는 심정이 되는 거다.



그런데!

그렇게 강제적으로 성기 삽입을 했던 토비는 어떻게 되냐면,


고추가


잘려서


죽는다.


뎅강.



저기엔 어떤 가감도 없다. 말 그대로 정말 '고추가 잘린다'.



돈 역시 이런 일이 처음이라 바닥에 툭 하고 떨어진 토비의 고추를 보고 놀라는데, 집에 돌아가서 교과서를 열어 여성의 성기 모양을 보고 인터넷에 성기 돌연변이에 대해 검색해보며 '바기나 덴타타'라는 용어를 접하게 된다.



자기 안에 정말 이상한 게 있는 건지, 자기는 살인자가 되었으니 자수를 해야 할 것 같고, 돈은 어쩔 줄 몰라하며 산부인과에 찾아가 검사를 받는다. 산부인과 남자 닥터는, 지극히 정상이고 너는 자라고 있다, 그런데 유연성 검사를 해보겠다며 손 하나를 모두 돈의 질 속에(도대체 왜!) 집어넣고, 아프고 끔찍해서 소리 지르는 돈의 안에서 닥터의 손가락도 잘린다.



엄마는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상황. 이 일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어서,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는 돈은 너무 외로워서, 돈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한 남자아이를 찾아간다. 내 안엔 이상한 게 있고, 내가 사람을 죽인 것 같고, 자수를 해야 할 것 같고, 그런데 얘기할 사람이 없어, 하며 우는 돈을 이 남학생은 달래주는데, 그러면서 섹스를 시도한다. 돈 역시 싫지 않아 섹스에 응했는데, 이 남자아이가 무사한 거다. 어쩌면 이건 신화에서 말하는 영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신이 난 남학생은 한 번 더를 외치고, 돈과 남학생은 한 번 더 섹스를 하는 와중에, 남학생과 친구가 통화를 하면서 '내기에서 이겼다'는 말을 하는 걸 들은 돈이 도대체 무슨 소리냐 묻게 되고, 그제야 돈은 이 남학생이 자신의 순결을 뺏을 수 있느냐를 두고 친구와 내기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직 남학생의 성기가 자신 안에 있는 채였고, 돈은 이 말을 듣고 빡이 치고, 그렇게 이 남학생의 성기도 잘린다.



이제 돈은 알게 됐다. 자신이 원하는 상황에서는 자신의 질 안에 있는 이빨이 상대를 물지 않는다는 걸. 그러나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자신을 화나게 한 상태로 삽입을 시도한 상태에서는 상대의 고추를 잘라버릴 수 있다는 것을. 이 이빨은 굉장히 강력해서, 그저 물었다 놓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냥 잘라버린다. 컷. 커팅. 뎅강 잘라버리는 거다.



자신 안에 일어나는 변화가 뭔지 몰라 당황하고 무서워했던 돈이 자신이 가진 능력(!!) 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겪는 변화가 고스란히 나오는데, 성적 욕망 앞에 인내심을 기르려고 책까지 읽었던 그녀가, 이제 자신이 가진 걸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알게 된다. 히치하이킹을 해줬던 할아버지가 늦은 밤에 차를 세우고 차 문을 잠가 그녀를 나가지 못하게 했을 때, 이 차 안에서 자신에게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 알아채고 당황하고 겁을 먹었던 돈은, 이내 자신이 무엇을 가졌는지를 알게 되고 서늘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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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이것은 영화니까, 응당 나는 그런 것을 기대했다. 그러니까 그녀의 '진실한' 혹은 '진정한' 사랑 같은 것. 그녀가 질 안에 달린 이빨을 쓰지 않으면서 행복하게 섹스를 할 수 있게 만드는 그런 상대. 처음에 나는 토비가 그런 상대일 거라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영화에서 그녀를 강간하려고 하거나 성적 대상화시켜버리는 대상들 말고, 그녀를 동등하게 대우해주는 그런 남자는 나오지 않았다. 그건 다시 말해서, 고추가 잘리지 않을 놈이 없었단 얘기가 된다. 영화에서는 이런 그녀라도 사랑하는 남자에겐 이빨을 사용하지 않지, 같은 메시지 같은 건 끼워 넣지 않는다. 강제로 밀고 들어와? 잘라버려. 나를 성적 대상으로만 대해? 잘라버려.


'바기나 덴타타'는 이빨 달린 질을 뜻하는데, 바바라 크리드는 자신의 책 《여성괴물:억압과 위반사이》에서, 바기나 덴타타에 대한 신화를 소개했다.


초현실주의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바기나 덴타타(이빨 달린 질)의 이미지는 신화에서도 매우 일반적이다.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기는 하지만, 신화는 대체로 질에 이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포를 유발하는 여성들과, 그들이 안전한 성교를 위해(대체로 남성 영웅에 의해서)길들여지거나 그 이빨이 어떻게든 제거되거나 부드러워진다는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 - 《여성괴물:억압과 위반사이》, 바바라 크리드, p.22


8991729312_1.jpg 《여성 괴물:억압과 위반 사이》, 바바라 크리드 지음, 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17


그러나 이 영화속 주인공 '돈'은 이 신화의 부드러움을 부숴버린다. 그녀의 질에 달린 이빨은 길들여지지도 않고 제거되지도 않는다. 그녀에게 접근했던 그리고 지금 접근하는 남성들이 그녀를 향해 '사랑'으로 다가오는 게 아니라, 침범의 대상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신화는 신화일 뿐이고 현실은 신화와 다르다. 이빨 달린 질은, 내 안에서 철저하게 해야 할 일을 한다.


바기나 덴타타, 이 스토리에선 무고함이 있을 수가 없고, 많은 성범죄 가해자들이 무고죄로 상대를 고소하는 일도 일어날 수가 없다. 당사자인 내가 싫다는데 밀고 들어오면, 내 안의 이빨이 물어뜯어 버릴 테니까. 여기에 어떤 무고가 있을 수 있겠는가. 내 안에서 니 고추가 무사히 빠져나가느냐 아니냐로 이것은 강간이거나 섹스이거나 할 수 있을 텐데. 바기나 덴타타는 남자의 거세 공포증을 일컫는 용어라는데, 나는 남자들이 그 거세 공포증을 정말로 가졌으면 좋겠다.


모든 여자가 질 안에 이빨을 품고 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평생 건강하게 제 역할을 할 수 없다면, 최소한 어릴 때부터 있다가 완경 무렵에 서서히 이빨이 무뎌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어떤 여자들에게만 존재하는 랜덤이어도 좋겠다. 그렇기만 해도 남자들이 '강제로 하는 순간 고추가 잘릴 수도 있다', '어쩌면 이 여자는 이빨 달린 질을 갖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두려움은 그를 뒤로 물러서게 할 테니까.


'살바도르 달리'는 바기나 덴타타에 대한 자신의 작품을 해석하며 <한 번 물리면, 두 번 조심한다>는 제목을 달아두었더랬다. 그러나 영화 티스에서의 이빨이라면, 두 번은 없다. 두 번까지는 가지도 못한다.


pimg_7903431032714074.jpg <한 번 물리면, 두 번 조심한다>, 살바도르달리



이 영화에는 초반에 좀 거슬리는 장면이 하나 나오긴 하지만, 큰 장점 몇 가지를 가지고 있다. 일단 그녀의 이빨이 결코 무디지 않다는 거. 물었다 놓는 이빨이 아니라 그냥 뎅강 하고 잘라버린다는 거. 얄짤 없이 그게 뭐든 잘라버린다. 고추든 손가락이든. 또 하나. '사랑하는 남자라면 물지 않아요', '진실한 사랑은 찾아와요' 같은 친절한 멘트 따위 없다는 거. 사방을 둘러봐도 성적 대상화시키고 성희롱하는 놈들 투성이인데, 영화라고 다를까. 친구부터 의붓 오빠 그리고 길에서 만난 할아버지까지 여자를 성적으로 보는 남자가 끊임없이 나온다. 그러니 돈이 처음엔 자신이 돌연변이가 아닐까 걱정하고 속상해했지만, 결국 자신이 가진 게 뭔지 알며 차게 웃을 수 있는 거 아닐까.

게다가 이렇게 강간에 대해서 다루는데도 자극적인 섹스 장면이 나타나지 않는다. 강간 장면은 특히나 보기 되게 끔찍한데, 이 영화에서는 그렇게 끔찍한 장면을 내보내지 않는다. 어제 《제2의 성》 읽으면서 어떤 장면에서 너무 힘들어서 덮을까 했는데, 보부아르가 나 힘들라고 그렇게 쓴 게 아니라, 실제 누군가의 이야기를 가져와 얘기한 건데도 숨이 막힐 정도로 힘들었더랬다. 끔찍하고 자극적으로 묘사한 게 아닌데도 그랬다. 이런데 자극적인 묘사를 가져오는 책이나 영화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할까. 질 안에 있는 이빨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그런 끔찍한 장면을 넣지 않은 게 이 영화의 장점 중 하나다. 아, 고추 잘리는 장면은, 나올 때마다 끔찍하지만.



포스터에 '그녀를 사랑하면 잘린다'라고 되어있는데, 그녀를 '사랑'하면 잘리는 게 아니라 '강간'하면 잘리는 거다. 포스터 문구 똑바로 쓰세요. '사랑'하면 잘리지 않습니다. '강간하면' 잘려요. 강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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