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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락방 Oct 22. 2020

《그레이 아나토미 시즌15-E19》

규정에 어긋나는 일을 해야 할 때

《그레이 아나토미 시즌15-E19》,


닥터  '조'는 태어나자마자 소방관 앞에 버려져 애정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로 성장했고 지금 의사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친엄마가  어디에 사는지를 알게 되어 찾아간다. 자신의 뿌리를 알고 싶었고 친엄마를 한 번만이라도 만나보고 싶었으니까.

자신이 버려진 만큼 조는 엄마에 대해 생각한 게 있었다. 분명 학업도 제대로 못 마쳤을 것이고 가난하게 살고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조가 찾아간 그녀의 친엄마는 남편과 결혼하여 아이들, 강아지와 함께 단란하게 살고 있었고 대학원까지 마치고 번듯한 직장에서  일하는 훌륭한 여성이었다. 이에 조는 절망 한다. 엄마가 나를 버린 게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조의 엄마는  조의 그런 원망에 하는 수없이 조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일을 털어놓는다. 대학교 1학년, 학교의 조교가 끈질기게 데이트하자고  쫓아다녔고, 그래서 알겠다고 대답해 첫 데이트를 하게 된 날, 그로부터 데이트 폭력을 당했다는 것. 싫다고 이러지 말라고 하였지만 결국  조교는 대학교 1학년 학생을 강간했고, 강간 후에는 웃으면서 좋았다고 말하라고 윽박질렀다. 그날 밤 조가 임신되었고, 조의 엄마는  누구에게도 임신 사실을 알리지 못한 채 이 아이를 혼자 낳아야 했던 것. 태어난 아이를 보니 모성이 생기긴 했지만, 그러나 아이를  따로 떼어내 생각한다는 게 불가능했다. 자꾸만 자신을 강간한 강간범이, 그 강간이 떠올라 견딜 수 없었던 거다. 그렇게 결국  닷새만에 조의 엄마는 조를 버리고, 자신의 회복을 위해 오래 애쓰다가, 몇 년이 지난 후에야 대학원까지 진학해 과정을 마치고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고 있다는 거였다.



조는  그런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운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결혼해서 남편으로부터 폭력을 수차례 당했던 이야기를. 임신  중에도 남편으로부터 폭력을 당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낳으면 나는 그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겠구나, 싶어서 조는 낙태를  했다. 그 얘기를 엄마에게 하면서 조도 울고 엄마도 우는데, 테이블 위에 놓인 엄마의 손을 조가 잡으려고 하자 엄마는 순간  본능적으로 움츠러든다. 그리고 엄마는 말한다.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았고, 지금 이 순간 너를 만나는 것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라고.



조가 이렇게 엄마와의  만남을 떠올리게 된 건, 물론 이 일 자체가 잊을 수 없는 사건이기도 하지만, 병원에 성폭행 피해 환자가 입원했기 때문이었다. 얼굴과  온몸에 심한 구타의 흔적이 있는데, 피해자는 의사에게 싱크대에 부딪쳐서, 옆집 아이들과 하키를 하다 다쳐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남자 의사가 들어온 순간 피해자는 조의 손을 저도 모르게 꽉 움켜쥐게 되고 조는 상황을 짐작하며 다른 여자 의사를 불러 함께  피해자를 진찰하게 된다. 그녀의 모든 흔적이 그녀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해주는데 한사코 아니라는 피해자에게, 닥터들은 괜찮다고  네가 원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조는 자신이 남편에게 당한 폭력에 대해서 얘기한다. 피해자는  자신의 강간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까봐 그리고 자신을 탓할까봐 두려웠다고 한다. 남편과 빨래 때문에 싸우고 화가 나서 바에 가  혼자 술을 마시다가 강간을 당했는데, 자신이 술을 마셨단 사실과 또 짧은 치마를 입었다는 사실 때문에 남편도 그리고 경찰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아 신고조차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책의 말을 늘어놓는다. 내가 그날 왜 술을 마셨을까, 그때 왜  가로등이 꺼진 길로 걸어갔을까. 이에 조와 다른 닥터는 그것이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It was not your fault.


그러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피해자에게 그 말이 제대로 가 닿지 않는다. 그녀는 자꾸 다른 사람들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고 두렵고 고통스럽다. 그런 와중에 남편으로부터 당한 피해를 얘기하는 의사에게 자신이 말한다.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해서라면 그것이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일이라면 일단 자신 탓을 하고 보는 건  대부분 여자들에게 공통점인 것 같다. 나만 해도 내가 이렇게 했어야 했나, 저렇게 했으면 달랐을까를 가장 먼저 생각하니까.  오래전부터 성폭행은 피해자에게 잘못이 있다고 여성들이 집단 억압을 당한 탓이다. 어두운 거 알면서 왜 그 길로 갔지, 술을 왜  마셨지, 내가 왜 그 남자를 만나러 나갔지, 내가 왜 그 남자랑 결혼했지, 내가 왜 말대꾸했지.. 그러나 잘못은 명백하게도  성폭행한 가해자들에게 있다.


피해자는 성폭행으로 인해서 장기가 위로 밀러 올려졌다. 호흡이 점차로 가빠지고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병실 바깥으로 나가 수술실로 이동해야 하는 게 너무 두렵다. 피해자는 말한다.


"모든 남자가 그 남자로 보여요."


피해자는  자신을 강간한 남자가 자신을 강간할 남자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낯선 남자로부터 강간을 당했고, 그런 후에 다른 남자들에  대해 저 남자도 그런 남자일 것이다 두려워하는 건, 당연하다. 그녀는 두렵다. 의사도 간호사도 남자를 보기가 두렵고, 자기를  봐주었던 조가 바깥에 나가려고 하면 날 두고 가지 말라고 손을 꼭 붙잡는다. 조는, 그러겠다고, 당신 옆에 있겠다고 한다. 그리고  수술실에 가는 길도 두렵지 않게 해주겠다고 한다. 조는 피해자가 병실을 나가 수술실로 가는 그 모든 길을 병원의 여자 직원들로  채운다. 그녀의 두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여자 직원들을 불러 줄을 세우고 남자 직원들은 그동안 출입 금지시킨다.



그녀를 데리고 수술실로 가는 것도 전부 여자 직원들이고 그녀를 수술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도 모두 여자였다.



수술을 집도하는 역시나 여자 의사는 조에게 말한다. 지금 네가 한 일은 규정에 어긋난다고. 조는 대답한다. 알고 있다고. 그러자 집도의가 말한다.


"그런데 그래야만 했어."



성폭행은  피해자에게 치명적 해를 입힌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해를 입혀서 그 후의 일상을 사는걸 아주 힘겹게 만든다. 망가진 몸은 병원에 가  치료를 받는다 해도 그 일을 당했다는 그 순간의 끔찍한 기억은 살아있어 끊임없이 피해자를 괴롭힌다. 며칠 혹은 몇 년이 걸려  가까스로 일상을 회복해 건강한 삶을 유지한다고 해도, 피해자는 트라우마 때문에 언제라도 재경험을 할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혹은 책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트라우마는 피해자를 과거의 그 시간으로 다시 끌고 들어가 괴롭게 한다. 성폭행은 그런 것이다.



또한,  조의 경우처럼, 피해자 한 명만 괴롭히는 게 아니라 그 사이에 태어날 아이까지도 괴롭힌다. 내가 강간으로 태어난 아이라는 것,  우리 엄마는 강간 피해자였고 우리 아빠는 강간 가해자였다는 것, 나에게도 어쩌면 그런 자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나의 존재가  엄마에게는 고통일 거라는 것.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자꾸 생각하고 의심하게 되는 것. 나를 보면 움츠러들고 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걸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강간은  우선 다른 폭력에 의한 상처와 동일하면서도 그와 다른 상처를 발생시킨다. 난폭함의 결과이기 때문에 동일하다. 그리고 그 상처가  희생자에게는 접촉에 의해 더럽혀졌다는 생각과 수치심을 각인시키고 훼손당한 인격을 관통하는 모욕감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놓는 데 비해, 폭행한 자에게는 대개 거의 인식되지 않거나 욕망을 해소하는 그 순간 지워져 버린다는 점에서  다르다.

바로 이 더럽혀졌다는 생각이 고소를 방해하고, 희생자에게는 입을 다물게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희생자를 비난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강간의 역사》, 조르쥬 비가렐로, p.41



그레이  아나토미 속의 피해자가 그랬다. 자신이 비난당할까봐 남편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경찰에 신고도 할 수 없었다. 이에 조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모든 건 네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그렇지만 혹여라도 나중에 네가 정의를 찾고 싶을 때를 위해서라도 성폭행의  흔적을 채취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강간에는  그 행위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우연히 목격하는 즉시 부인하면서 집단적 의식의 가장 어두운 영역에 묻어버리게 만드는 일련의  이유가 있다. 우선 사회적 제재라는 집요한 위협이 침묵을 강요한다. 성폭력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숨겨야 하는 절대적 필요성이 폭력 그 자체를 덮어버리게 만드는 것이다. - 《강간의 역사》, 조르쥬 비가렐로, p.48



피해자(생존자)가  그 일을 덮고 싶어 한다면, 그건 피해자의 뜻에 존중해야 한다. 사람마다 극복하는 방법도 또 대처하는 방법도 달라서, 그러는 편이  피해자의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 결정을 따라주어야 한다. 순결한 피해자를 만들려는 세상이, 피해자의 탓을  하려는 세상이 피해자의 입을 다물기를 원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시간들을 견디며 싸우고 싶지 않아서 자꾸 자신의 피해를 숨기고  싶어 한다. 그런 식으로 폭력이 덮이고, 덮이는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이 일어나는 걸 돕는다. 결국, 당한 너네가 잘못이야, 라는  사회의 압박은 '우리가 계속 성폭행할게'라는 뜻에 다름 아니다. 우린 계속할 테니 입 다물어.



그러나  세상은 변하고 있다. '조르쥬 비가렐로'는 강간의 역사라는 책을 썼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성폭행과 강간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레이 아나토미의 이 에피소드는 2018년과 2019년에 걸쳐 시즌 15를 통해 방송된 건데, 드라마 속에서는 아버지와  어린 아들을 보여주면서 '동의'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혹여 상대 여성이 즐겁지 않다고 한다면, 그만하라고 말한다면, 무조건  그만두어야 한다고. 어린 아들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나에게 즐거운 것이 상대에게 즐겁지 않다면, 그만두어야 할 것. 또한,  성폭행 피해자에게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여전히 강간의 피해자가 있고 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의  피해자가 있지만, 세상의 다른 여자들이 피해자에게 연대하며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덜어주려고 노력하고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끊임없이 말해준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서 아주 여러 번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이렇게 변하는 세상에서는 더 이상  숨기려 하지 않고 덮으려 하지 않는 피해자들이 입을 열 것이다. 폭력이 덮이는 것을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직접 묻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이 또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녀가 분명하게 대답하지 못한다면 성관계를  하지 말라.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로빈 월쇼, p.266


저 말고도 루크에게 폭행당한 여성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번 유죄 판결이 그들에게 위로가 되고 그들이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저는 그 사건이 나를 망치지 못하게 하겠다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그리고  치유 과정을 통해 조금씩 회복하는 중입니다. 상담을 받으며 상처를 극복하려 애쓰고, 자기 계발에 관한 책을 읽고, 다른 사람의 도움에  기대기도 합니다. 여기 모인 분들은 이제 이 용납할 수 없는 폭력을 인식하고 거기에 맞서 싸울 용기를 얻으셨으리라 믿습니다.  저는 복수를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생존자로서 저와 같은 일을 겪는 사람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 《강간은 강간이다》, 조디 래피얼,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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