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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락방 Oct 25. 2020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자신을 속이지 마.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이기호 지음, 문학동네, 2018

어릴 적에 교회를 열심히 다녔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교회에서 로맨스를 싹틔우기도 했다. 국민학교 때도 두 살 많은 오빠랑  핑크빛이었으며(크리스마스 연극에서 오빠는 요셉이었고 나는 마리아였다), 중학교 때는 고등학생 성가대 오빠를 좋아했더랬다. 그 오빠는  우리 교회에서 노래를 제일 잘 불렀는데, 내가 중고등부로 가면서 하필이면 성가대 남자 파트 반주를 맡게 됐고... 나는 미리 준비된 게  아니면 악보를 봐도 잘 칠 수 없는 비천재 반주자였고... 그래서 지휘자가 선택한 곡을 반주하라고 했을 때... 나는 멘붕이  왔고....... 그래서 제대로 못 쳤고......... 그런데 하필 이 오빠 독창 파트였고........... 오빠는 이 노래를 잘  알면서도 내 반주에 맞춰 불러줬고............. 나는 그 날 연습이 끝나고 지휘자한테 가서 '반주자 그만두겠다' 말을  했다. 내가 민폐를 끼친다고 생각했고 너무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딱- 쥐구멍에 숨고 싶었어....  


그렇게 나는 반주자를 그만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가  지났을까, 무반주 신앙인으로 교회를 다니던 어느 일요일 오후, 교회를 마치고 엄마랑 동네 시장을 갔다. 이것저것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하필이면 저 앞에서 그 노래 잘하는 오빠가 오는 게 아닌가. 나는 그 오빠를 봤지만 그 오빠는 나를 아직 보지 못한  상황에서, '인사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아냐, 나 같은 듣보잡 알지도 못할 거야' 생각했는데, 이윽고 눈이 마주치자 오빠가 먼저  인사를 해주었던 것이었고, 그렇게 열네 살 소녀의 마음은 두근거렸던 것이었다... 나중에 친구를 통해서 들었는데, 나는 듣보잡이기는커녕, '교회에 너 모르는 사람 없어'의 존재감으로 동네를 휘젓고 다니던 꼬마였어... 아무튼, 신앙생활 열심히 하던 나는  교회에 환멸을 느껴서 그만두게 되는데, 중학교 1학년 때였나 2학년 때였나, 그 뒤로 다시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삶을 살게  되었다. 교회에 왜 환멸을 느꼈느냐 물어보면 할 말은 아주 많지만, 그러나 이 자리가 그런 자리가 아니므로 더 이상 말은 하지  않겠다. 아무튼, 나는 '교회 오빠 강민호'에 그때 그 성가대 오빠, 나에게 먼저 인사를 해주었던 그 노래 제일 잘하는 오빠가  생각나는 것이다. 성은 '임'이었는데 이름이.. 생각이 안 나네?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라는 게 어떤 건지 제목만으로 이미 그 느낌을 알 수 있었던 나는, 아마도 그걸 확인하고자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러나 표제작인 단편,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는 재미없었다. ㅎㅎ 그 단편은 재미없었지만, 이  책에 실린 단편들 중 특히 두 편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읽으면서 오오~ 이기호~~ 막 이랬다니까? 그중 하나가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이다. 이 단편은 진짜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이야기였는데, 그러니까 줄거리는 이렇다.



화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 앞에 '권순찬'이란 사람이 '502호 김석만은 내가 입금한 돈 700만 원을 돌려다오'라는 대자보를 써서  자리잡기 시작한 것. 사정을 알아보니 권순찬은 어려서부터 부모와 떨어져 어렵게 살았는데, 어머니가 오랜만에 나타나 계좌번호 하나를  주며 '내가 어려워 사채를 썼는데 네가 좀 갚아다오' 했다는 거다. 그 돈은 700만 원이었고, 권순찬은 좀 시간이 걸려 사채업자  김석만에게 700만 원을 입금한 것. 그런데 그 사이 어머니도 아들이 입금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보증금 빼고 어쩌고 해서  사채업자에게 700만 원을 입금했고 그 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이에 같은 돈이 두 번 입금됐다는 걸 알고 권순찬은 김석만이  사는 아파트로 찾아와 중복 입금된 돈을 돌려달라 대자보를 써붙이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502호에는 김석만이 아닌, 김석만의  어머니만 홀로 살고 계셨고, 김석만의 어머니는 아들의 행방을 몰라.. 그래서 권순찬이 아파트 앞에 자리 잡고 있는 시간은 하루가  이틀이 되고 몇 달이 되어버리게 된 것이다. 이 사정을 알게 된 아파트 주민들은 그 사정 참 딱하다 싶어서 주민들끼리 돈을 모아  700만 원을 조금 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돈을 모아 권순찬에게 가는 거다. 우리가 대신 갚아줄 테니, 너도 계속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이 돈 가지고 가라,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502호 할머니가 딱해서다, 하는 것.



나는.. 이게 너무 이상했다. 이상한 선의라고 생각했어. 아파트 주민들은 그것을 '선의'라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마음의 짐을 덜 수  있고 빚도 갚을 수 있고, 권순찬 씨는 받아야 할 돈을 받아 이제 일상을 찾게 되었으니, 그러니 이것이 착하고 좋은 결론이라고  생각한 거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이 돈은 당연히 '김석만'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돈이 아닌가. 어찌 되었는 받아야 할 돈  700만 원을 누군가로부터든 받았으니 '그럼 됐다' 할 순 없는 거 아닌가? 나라면? 나는, '오, 여러분 이렇게 돈을 '대신'  갚아주셔서 감사해요!' 할 것인가?라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할 것 같은 거다. 이건... 아니지 않나?




저는 원래 그 할머니한테 돈을 받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저는 김석만 씨를 만나러 온 거예요. 그 사람을 직접 만나서 일을 해결하려고요…… (p.95)



아파트 주민들은 이에 권순찬이 이자 받으려고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들 점점 관심을 잃게 되고...



물론  권순찬이 아파트 앞에 그렇게 박스를 펴두고 잠이 들고 대자보를 붙이고 늘 앉아있는 일은 매우 불편할 것이다. 그 앞을  지나다니면서 내 마음은 얼마나 불편할까. 그러니 이 상황을 어떻게든 끝내고 싶은 입주민들의 마음이야 너무 당연한 것이겠다.  그렇지만 그 돈을 '대신' 갚아주는 것, 그리고 누군가 '대신' 갚아주는 돈으로 '이제 됐다'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런데,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 것인가. 김석만의 귀에 이 사실이 들어간다면, 그렇다면 김석만이 집에 찾아와 '여기 있소, 당신 돈  7백만 원' 하고 돌려준다는 보장도 없는데, 그러면 어떡해야 하나. 나로서도 뚜렷한 방법이 생각나지는 않는 것이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 그렇지만 또 딱히 내가 이렇다 할 해결책도 내놓지를 못해... 아아 그래서 너무 찜찜한 것이다..


그리고  읽으면서 더 크게 분노한 단편은 <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이다. 어휴, 이건 읽는 내내 진짜 너무 속이  터져서.. 뭐랄까, 내가 딱 싫어라 하는 남녀관계가 나오는 것... 히융-그러니까 여자는 가난하게 살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되는데, 남편이 열심히 일해서 대학도 보내주고 그러는 아주 착한 남편인 것이야. 그런데 여자는 남편이 착하니까 뭔가  불만이 생겨도 말을 잘 못하게 되고 뭔가 아무튼 그러다가, 다니던 직장에서 알게 된 한 남자랑 바람을 피우게 되는 거다. 상대 남자는  총각이었는데, 뭔가 딱히 사랑한다.. 는 건 아닌데 그냥 자꾸 만나서 육체관계 맺게 되는.. 그런 관계가 되어버렸단 말이야?


아내는  남편에게 속인다는 사실이 불편해서 남편에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말하려고 하면 하루 종일 일하고 또 새벽같이 출근해야 하는  남편이 피곤해하니 섣불리 말하지 못하다가, 만나는 남자에게는 '남편에게 말했다'라고 하는 거다. 그때, 내연의 관계 남자가  이렇게 대꾸하는 거다.



섹스가 끝난 후, 등을 구부정하게 만 채 돌아누워 있던 그는 한참 뒤 내게 물었다.

내 이름도 말했어요?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실망을 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미워진 것은 아니었다. (p.143-144)







내 이름도 말했어요?


아 너무 싫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너무 싫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너무 싫어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서  나는 이런 관계가 너무 싫다. 이런 관계 속에 놓이는 게 너무 싫어. 당당할 수 없는 연애, 당당할 수 없는 사랑이 진짜  저주스럽다. 애초에 배우자나 애인이 있으면서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슬픔의 새드니스이지만, 그렇게  됐다면 기존 관계를 정리하고 새 사람을 만나야 되는 거잖아. 왜 속이고 있으면서 만나 가지고 들킬까 봐 전전긍긍해야 돼? 남자가 자신의  이름이 바깥으로 새어나갈까 걱정하는 거 당연히 이해된다. 그 걱정 누가 안 하겠는가. 그 사실이 바깥으로 드러나면 지금 하는  일에서도 위태로울 거고 개인적으로도 개망신일 거다. 유부녀랑 바람 난 새끼라고. 그러면, 그런 관계를 시작하지 않았으면 되지만,  그게 감정이란 게 어디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되는 건가. 그렇게 알고 걸어간 관계라면 거기다 대고 여자한테 '내 이름도 말했어요?'같은  거, 쪼그라들어서 말하지 말아야 하는 거잖아. 섹스할 건 하고 나서 '내 이름도 말했어요?' 라니.. 진짜 슬리퍼 벗어서 싸다구를  날리고 싶다. 아 너무 구질구질해서 딱 싫어. 너무 싫어 ㅠㅠ





대체적으로  결혼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어서' 하는 것이겠지만, 사실 그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로 결혼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 고등학교 때 물리 선생님은 '아빠가 너무 싫어서' 일찍 결혼해 집을 나왔다고 했었다. '줌파  라히리'는 자신의 책에서 '헤마'의 입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결혼한다는 이유를 보여주기도 했다. 나  역시 '그냥 다 지겨워서'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결혼을 하면 적어도 '결혼 언제 할 거냐'는 질문도 안 들을 테고,  '선 보라, 소개팅해라'는 말도 안들을 테니까. 그 당시의 나는 '이 남자랑 결혼하고 다른 남자 속으로 사랑하면서 살면  되니까'라고 생각했었다. 만약 내가 그때 결혼했다면, 그것은 나에게도 그리고 상대에게도 큰 못할 짓을 하게 되는 것이었을 거다.  그리고 며칠 전에 주변 사람을 통해서 들었다. '하도 결혼하라고 잔소리를 해대서 나 좋다는 남자랑 결혼했지, 나는 그 남자를  사랑하진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이런 이유들 말고도, '이쯤 되면 결혼을 하는 게 순리 아닐까' 해서 결혼을 결심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기호의 단편 <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에서 남편은, 단순히  '이쯤 되면 결혼해야지'란 생각으로 결혼을 한 건 아닌 것 같았지만, 그러나, '가정은 있어야 하고 유지되어야지' 정도의 생각으로  결혼생활을 유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아내로부터 '다른 남자가 있다'는 얘기를 듣지만, 그저 묵묵하게 다음에 얘기하자고  하니까.



저기, 다음에 말하면 안 될까?

남편이 내 말을 끊으면서 말했다.

나, 내일 또 새벽같이 일 나가야 하잖아.

남편은  그렇게 말하곤 안방으로 걸어갔다. 남편은 마치 아무 말도 듣지 않은 사람처럼, 이제 막 퇴근해서 집으로 들어온 사람처럼  행동했다. 허리를 뒤로 활처럼 젖히며 스트레칭을 하기도 했다. 나는 남편을 따라 들어가 계속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p.149)



이  결혼생활이 딱히 만족스럽다거나 행복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결혼해 아내가 있고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결혼했지', '아내가 있지', '집에 가야지' 같은 말을 하는 것 자체를 자신이 기본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싶어 진 거다. 다른 남자가 있다는 아내의 말에 화를 내거나, 울거나, 슬퍼하거나, 소리를 지르는 것 모두 정상적인 반응일 수 있는  것처럼, 저렇게 듣기 싫어 피하는 것도 나는 정상적인 방법이라고 생각을 한다. 어떤 말은 지독하게 듣기 싫잖아. 나 역시 듣기  싫어 묻지 않았던 상황이란 것에 맞닥뜨려 봤었고. 그렇지만 계속 피하는 건 방법이 아니다. 해결하지 않고 두는 문제는 점점 자라날  수밖에 없고, 엉뚱하게, 해서는 안될 방향으로 고개를 틀어 해결을 억지로 하려 하게 되니까.



이  소설 속 남편이 그랬다. 자신은 자야 되는데, 일찍 일 나가야 하는데, 그래서 듣기 싫은데, 자꾸 아내는 자기에게 말을 하려고  해... 그래서 어떡하면 아내가 말을 안 하고 나는 잘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아내에게 수면유도제를 먹이기 시작한다. 말 듣기 싫고  자고 싶은데 아내가 자꾸 말을 걸려고 해서.... 이야기는 그래서 더 비극속으로 끌려가게 되는 것이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그때 결혼하지 않았던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결혼하면 다 해결되겠지'란 마음으로  결혼했다면, 나를 좋아해 사귀고 있던 남자에게 죄를 짓는 것이고, 그렇게 살기 시작한다면 상대 남자에게 계속 죄책감을 갖게 될  것이고, 나 스스로에게도 못할 짓이었을 것이다. 그런 채로 그 남자로부터 충족되지 않으니, 나는 계속 다른 사람을 찾았을 것이고,  그렇게 또 한 번 남편을 속이게 됐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내가 왜 이 결혼을 하려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자주 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이유에 다른 것들이 섞여들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앞으로의 결혼생활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고, 또 어려운 일에 닥쳤을 때 배우자와 함께 해결해나갈 수 있으니까. 서로 사랑과 신뢰를 가진 채 결혼했어야 대화라는 걸 할 수  있게 되고, 서로 대화가 끊이지 않는 부부라면, 웬만한 문제들을 함께 해결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나이 정도면 결혼해야  되니까', '지금 외로우니까', '결혼이란 걸 해서 살고 싶으니까' 등의 이유들 만으로 결혼을 선택하지 않아야 한다고, 이 책을  읽다가 몇 번이나 생각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은, 정말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이기호는  이 단편집을 통해 계속해서 묻고 있다. '나는 이래도 되는 것이고 너는 그래도 되는 것인가' 하고. 그것은 어떤 큰 사건들이  아니라 작은 것들에 있어서도 그렇다. '내가 이래도 되는 것이었나', '너는 그래도 되는 것이었나'. 결국은 '그때 우리가 그러면  안 되는 게 아니었을까' 하게 되고야 마는데, 그건 내가 최근에도 여러 차례 생각한 것과 맞닿아있다. 물론 이기호가 소설을 통해  드러내는 것들과 또 내가 가진 고민은 아주 다른 성질의 것이지만, 나 역시도 나에게 계속 묻는다.



내가 그때 그러는 게 최선이었을까?

내가 잘못한 건 아닐까?

시간을 돌려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인가?



이렇게  질문을 몇 달째 해오고 있는데, 그때마다 번번이 '응, 그래야만 했던 거야'라는 대답이 돌아왔지만, 최근에는 '그러지 않는 게  더 나았을 거야, 그러지 않는 게 더 좋은 방향으로 데려갈 수도 있었을 거야'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많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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