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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락방 Oct 30. 2020

연애소설 읽는 흑표범

《애프터》

《애프터》, 제니 게이지 감독, 조세핀 랭포드*히어로 파인즈 티핀 주연, 2019

'테사'(조세핀 랭포드)는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간 신입생이다. 영문학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취업이 잘 안될 것 같아 경제나  경영을 전공할 생각을 갖고 있다. 입학 전까지 엄마(셀마 블레어)랑 둘이 살았는데 아빠가 일찍 돌아가셔 엄마에게 착한 딸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학교 기숙사에 딸아이를 들여보내고 가려는데, 룸메이트인 학생이 너무 날라리 같아 보여 엄마는 걱정이다. 방을  바꿔달라 해야겠다, 지만 테사는 엄마에게 자신을 믿으라며 돌려보낸다. 꼬꼬마 시절부터 늘 곁에 있던 남자 친구 '노아'는 자주  찾아오겠다고 작별인사를 한 뒤 헤어진다.


테사는 열심히 공부하고 싶었지만, 그랬으나, 룸메가 파티에  가자 꼬시고, 그래 나도 놀고 싶어 하고는 옷장에서 단정한 옷을 꺼내 입고 파티에 간다. 이런 파티 자리는 테사에게 익숙하지  않다. 옷차림도 남들과는 좀 다른 것 같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다른 학생들 사이에서 좀 동떨어진 느낌. 아아 보면서 너무  괴로웠다. 내가 저런 파티에 참석하는 사회에 살고 있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나는 백 프로, 월플라워 될 사람이야... 꿔다 놓은  보릿자루 되어 벽만 쳐다볼 거야. 으.. 보기만 해도 괴롭다. 나는 혼자 책을 읽는 게 제일 좋아 ㅠㅠ

게다가 저기 저  강렬한 눈빛을 가진 '하딘'(히어로 파인즈 티핀)은.. 뭘까. 이들은 테사에게 술을 마시라고 권하고 억지로 한 모금 마신 테사는  그들과 게임을 한다. 진실 혹은 도전이란 게임인데, 이 게임에서 어쩔 수 없이 테사는 하딘과 키스를 해야 하는 벌칙을 받고, 뭔가  이 자식 강렬하게 끌리지만, 난 남자가 있는데, 물론 그 남자는 나를 건드리지 않는 순하디 순한 남자이지만, 난 남자가 있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여기서에서 처음 본 너와.....라는 내적 갈등 오지는 상황에서 나는 이 게임을 하지 않겠다고 뒤돌아선다.



하딘은  이런 영화의 설정이 늘 그렇듯이 인기 남이고 게다가 뭐랄까 쿨가이다.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놈인데, 심지어 아빠가 대학총장이야.  그러니까 돈도 가졌고 얼굴도 잘생기고 며칠 전 읽은 로맨스 소설에서 표현한 것처럼 흑표범 매력을 가진 청년인데,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핳, 압권이 뭐게요? 심지어 문학청년이다! 너무나 어울리지 않게! 온몸에 타투로 장식한 흑표범 같은 재벌남이 문학청년이야! 자신이 참석한 파티  장소가 하딘의 집인 걸 모른 채로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의 상태로 방황하던 테사는 이층의 방 한구석에서 폭풍의 언덕 책을  발견하고 거기에 포스트잇이 북마크로 붙여져 있는 걸 본다. 조심스레 꺼내어 그 부분을 읽어보려는데 갑자기 딱- 등장한 하딘이 폭풍의  언덕 속 문장을 달달 외워 말하는 거다.


응?


너무 낯선 장면이다. 그러니까 편견인데, 사실 책 많이 읽는 사람이 육체적 매력까지 가질 확률은 거의 없지 않나?  제이슨 스태덤이 독서광일 것 같지 않은데? 물론 독서광이든 아니든 전혀  상관없이 좋아하지만. 난 사실 책 많이 읽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책 읽는 남자는 책 안 읽는 남자보다 잘난 척할  확률이 오천 프로 더 높다는 것이 나의 편견이니까. 워낙에 맨스플레인 하는 족속들이 책 읽으면 맨스플레인 곱하기 이천 해버려 가지고. 아무튼 책 많이 읽는 사람이 어떤 그런 육체적으로 첫눈에 반하게 할 만한 흑표범 매력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다고  생각하기 땜시롱 이 영화 속 하딘은 너무나 낯선 캐릭터였다. 하는 행동이나 눈빛이나 풍기는 분위기는 나쁜 남자야~ 나쁜 남자야~인데  오만과 편견으로 여주랑 논쟁하고 위대한 개츠비 아는 척하고 폭풍의 언덕 문장 암송하고... 웃김 ㅋㅋ 문학적인  흑표범 되시겠다. 어쨌든, 



우리의 여주인공 테사는 그 남자한테 너무  빠져 빠져 빠져 버리는데 아까도 말했듯이 난 남자가 있는데~ 자꾸 이러면 안 되는데~ 너무나 혼란스럽고, 한 번도 그 어떤 강렬한 육체적  터치~터치~ 해본 적 없어가지고 하딘의 터치가 막 몸서리쳐지고 그래서 더 해보고 싶고 막 그런 것이야. 한마디로 치명적 매력을 가진  남자한테 치명적으로 빠져들게 될 것 같아서 스스로 몸을 사리고 조심하고 내적 갈등 오지고 지리는 상황인 거다. 크- 당신은  왜 그렇게 치명적인가, 안돼, 위험해, 거기에 빠져들지 않도록 나를 다스리겠어, 아 근데 너무 훅 치고 들어온다, 너무 치명적이야,  매력으로 나를 패대기친다, 으앗 빠져들어, 그렇지만 위험해, 여기에 빠져들면 나는 헤어 나올 수 없을 거야, 내가 나를 다스리자,  나는 순진하고 착한 남자 친구가 있다, 나는 순진하고 착하지만 강렬한 터치는 전혀 없는 남자 친구가 있어, 육체적 매력 그게 뭐라고  안돼, 흑표범한테 빠지지 마, 혼란스럽다, 나는 왜 밤에도 당신의 꿈을 꾸는가, 당신 나에게 무엇, 당신 치명적, 안돼 이것은  안될 관계야, 흑 그렇지만 너무 좋아, 졸라 매력적이야, 치명적이야 치명적, 나는 너무 괴롭다.... 의 상태가 되어버리는데, 아아,  이 혼란의 도가니탕 속에 있는 테사가 나는 너무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공감이 되고, 나는 스무 살(보다 한두 살 더 어린것  같지만)의 테사가 되어 겁나 힘든 것이다. 아, 힘들어 힝 ㅠㅠ 막 이렇게 되어버리는 거다. 어떤 사랑을 하든 그건 그 사랑  당사자의 몫이지만, 지금 테사가 하려는 이 치명적 매력남에게 빠져들려는 그것은 너무나 힘들 것이고, 그 사랑은 서른한 살에  찾아와도 개 힘들고 마흔 살에 찾아와도 백팔배로 나를 자제하게 만드는데, 스무 살 테사 너는 어쩌면 좋아. 내가 그런 치명적 매력남에게  빠질 때 나를 다잡기 위해 색칠하던 컬러링 북이 있는데, 그것.. 테사 너에게 줄까? 마음 다스릴래? 선 그려진 대로 색칠하다 보면  잠시 잠깐은 내적 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어..... 언제든 컬러링북 필요하면 말하렴. 언니 두 개나 있단다. 48색 색연필도  있어... 그것도 내가 기꺼이 빌려줄게. 나는 치명적 매력남을 만나 치명적 관계에 들어가려는 모든 여자들의 편이란다... 힘을  줄게, 언니 손을 꼭 잡아. 언니가 유료로 결제한 백팔배 앱도 언제든 추천해줄게. 딩- 종소리에 맞춰 절 한 번, 딩- 종소리에  맞춰 절 두 번.. 우리는 백팔배를 할 수 있어. 서른 하나에도 힘들었고 마흔에도 힘들었던 그 뜨겁고 훅 들어오는 미친 사랑을  스무 살의 네가 어떻게 감당하겠니 흑흑 ㅠㅠ힘들어 힘들다 많이 힘들다 너무 힘들어  ㅠㅠ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이런 상황에선 여지없이, 도망칠 수 없다. 테사는, 우리는 그런 사랑을 거절하고 거부하다가 빠져들고야 만다.  치명적인 사랑에 빠질 때는 내 주변 상황이 급속하게 변화한다. 오랜 남자 친구이자 베스트 프렌드였던 노아와 이별하고 엄마와도 관계를  끊어버리게 된다. 이게 치명적 남자가 테사에게 한 일이다. 그렇지만 순간순간 하딘도 테사에게 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널  밀어낼 거야, 하던 테사에게 하딘은 '우리가 이렇게 멀리 지낼 순 없다, 네 친구가 내 친구들인데 어떡하냐, 친구로 지내자'라고  하는데, 그래서 테사도 오케이 하는데, 아아, 얘들아... 치명적 매력을 서로 느끼는 관계가 친구로 지내기는 졸라 어렵단다?  안돼... 말도 안 되지. 그거 말장난이야. 말장난인 거 너도 알고 나도 알고 하늘도 알고 에브리바디 노즈... 아무튼 그렇게  친구를 하기로 하고 하딘은 테사에게 보여줄 곳이 있다며 호숫가로 데려갑니다. 하딘은 그곳이 자기의 비밀장소라고 했다. 그곳에 풍덩  빠져들어 수영을 같이 하면서 하딘은 자꾸 테사에게 반하고 그렇게 물에 둘이서 둥둥 뜨다가 서로 키스하기 직전, 테사는 "우리  친구 하기로 한 줄 알았는데?"라고 말하고 하딘은 "우린 그냥 친구는 될 순 없겠는데"라고 한다.  


아…


역시…


육체적  매력 뿜뿜 치명적 매력 뿜뿜 하는 사람하고 어떻게 그냥 친구를 어떻게 해.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그냥 친구를 하냐고  ㅠㅠ


야  말이 되냐  ㅠㅠ



아무튼 그렇게 이 사랑은 시작되고..



그대를 알고부터 사랑은 시작되고

사랑을 알고부터 그대만을 느꼈어요…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시작된 이상 뜨겁게 불타오른다. 하딘은 할 수 있는 최대한 테사를 사랑하고 둘은 매일매일 친하게 지내다가 급기야  동거까지 하게 되는데, 이거슨 하딘의 아버지 친구인 교수가 외국에 장기체류하게 되면서 그 집이 비어 가지고 허락받아 그 공간을 쓸  수 있게 되었기 때문. 역시 부자이고 볼 일인가. 스무 살.. 돈도 없는 아이들이 동거하는데 지금 내가 아빠 엄마랑 사는 집보다 더  좋은 집에 산다. 물론 짧은 기간이지만, 세상에 그런 어떤 완전한 공간에서 스무 살 때부터 치명적 흑표범 남과 동거하다니. 테사 인생, 무엇… 내가 이 나이 되도록 못해본 것인데. 헛살았구먼 나는… 헛살았어… 나에게 돼지갈비를 허해야겠어 ㅠㅠ



아무튼 그렇게 다정하고 뜨겁게 잘 지내고 서로에게 점차 익숙해지며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고 테사는 하딘에게 '그 무엇도 너에 대한 사랑을 변하게 하지 않을 거야' 뜨겁게 뜨겁게 속삭인다.

너씽스고나체인지마이럽포유.…


그러나  하딘을 좋아하던 여자의 질투가 거기에 있었으니, 이 둘의 관계를 떼어놓고 싶다. '그녀에게 말했냐'는 하딘 폰의 문자메시지를  보게 된 테사는 '뭣여, 무슨 말!' 하게 되고 하딘은 '나갔다 올 테니까 너는 나를 믿어'라고 한다. 그러나 참지 못한 테사는  그와 그의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는데... 두구두구둥-

그것은 뭐냐 하면,  처음 게임을 하다 키스에 거절당했던 하딘이, 테사를 꼬시는 것에 도전하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이 일은 그들의 게임 같은 것이었는데,  처음 의도와 달리 하딘이 정말로 테사에게 단단히 빠져버리게 되었고, 이에 빡친 하딘의 전 여자 친구..이랄까 전 썸녀... 랄까,  아무튼 그녀가 그 당시의 상황을 녹화해뒀다가 테사에게 보여준 것이다.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친구들이 있는 자리에서...



그런 테사와 하딘의 이별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딘은 정말 테사를 사랑했다. 처음엔 그러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테사는 속아서 그에게 빠져들었다. 이들은 이제 이별의 아픔을 겪는다. 



처음의  의도가 밝혀지는 그 순간 모두가 있었던 곳. 그걸 녹화하고 재생한 친구는 그러지 말아야 할 짓을 했다. 그러나 그곳의 모든  친구들 역시 다 알면서도 그대로 두었다. 그곳에서 테사 혼자 '너네들 모두 알고 있었던 거야?'라고 물었을 때, 테사의 룸메이트의  표정은 좋지 않다. 자신이 한 일, 테사 하나를 바보로 만든 일이 옳지 않았던 것을 알았던 까닭이다. 그 자리의 모두는 테사  하나를 바보로 만들었다. 테사는 사랑에도 속았지만 친구들에게도 속은 것이다. 



그러나  테사가 이 일로 좋았던 순간들도 있었다. 오랜 베프와 이별한 후 가슴 아파할 때, 룸메이트는 자신의 침대 옆자리를 내주며 이리로  오라고 한다. 그렇게 그녀를 위로해준다. 노아와 테사가 한 것이 뜨거운 사랑은 아니었어도 오랜 우정이었던 만큼, 그것을 잃었다는  것은 가슴 아프고 거기에 위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사랑을 잃고 헤맬 때, 관계를 끊자고 했던 엄마를 찾아가는데,  엄마와 딸은 역시나 그렇게 끊어질 수 없는 사이였다. 딸의 표정만 봐도 엄마는 딸아이가 힘들다는 것을, 상처 받았다는 것을  안다. 오랜 친구 노아를 찾아가 정말 미안하다고 얘기하면서 우정을 되찾게 되는 장면도 좋았다. 다 좋았는데,



기말 리포트를 제출한 마지막 영문학 시간. 교수님은 모두들 수준 높은 리포트를 내주어 고맙다고 말하고 방학 잘 보내라며 작별 인사를 한 뒤 수업을 마친다. 강의실에서 하나둘씩 일어나 자리를 비울 때 교수님은 테사를 부른다.


"이건 이번에 하딘이 제출한 리포트야. 나보다 네가 읽어야 할 것 같아서."


라며 하딘의 리포트가 든 봉투를 테사에게 준다.



응?


이게 무슨 상황이야, 지금?


 이게.. 아무리 문화권 다른  미국이라도 이래도 되는 건가? 이럴 수 있는 건가? 세상에 무슨 이런 오지랖이  다 있담? 학생들의 사랑이 깨진 게 가슴 아파서 다시  이어 주기 위해 교수가 이렇게 나서기도 하고 그러는 거야? 그것도 리포트를  건네면서? 나는 좀  어이가 없네?



리포트에는 그간 소설을 읽었던 자신의 인생에 겹쳐 자신만의  엘리자베스 베넷을 만났는데 자신이 잘못을 했다, 미안하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글이란 건, 글을 써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읽어줄  누군가를 상정하기 마련이다. 특히나 하딘의 저 에세이는 특별히 테사를 생각하고 쓴 게 맞다. 그 에세이를 쓸 당시 하딘의 마음은  온통 테사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테사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그건 기말 과제로 제출한 거잖아. 그러면 교수님이 과제를  받고 오, 이건 이렇구나, 하고 거기에 맞는 점수를 주는 게 일이지, 아이쿠 이런 이것의 대상은 테사네? 테사랑 사귀다 헤어지더니  이런 가슴 아픈 리포트가 나오는구나, 테사가 하딘의 이런 마음을 알아야 해, 하고 테사를 불러서 이건 하딘의 리포트야, 하는  것이 괜찮은 건가? 어제 나는 보다가 너무 의문스런 한 장면이었다. 이거 너무 이상해.




테사가  노아와 오랜 친구였으면서 교제를 하고 있었던 것, 그러나 그것이 우정이고 뜨거운 열정은 없었던 것은 그 관계에서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거리가 멀어지고 노아는 고등학생이라는 신분에 대학 생활을 만끽하고 있는 테사와 서로 환경의 변화나 거리의 변화로 인해  사이가 소원해지는 것도 역시 어떤 부분에서는 받아들여야 한다. 노아로서는 대학생이 된 뒤의 테사가 자신의 생각과 달리 변한 것  같아 속이 상한데, 그것 역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우리는 대학생인 채로 교제하다가 어느 한쪽이 사회인이 되었을 때 여러 가지  지점에서 어긋나기 시작하는 것을 경험하는 일이 많지 않나. 노아가 연락도 없이 갑자기 테사의 학교로 찾아온 것은 노아의  잘못이다. 놀라게 해주겠다는 생각이었고, 그런데 그 놀라게 함은 노아의 기대와는 달리 좀 어이없음이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만났고, 이  젊은이들이 돈이 어디 있나. 하룻밤을 그저 테사의 기숙사 침대에서 나란히 누워 잘 수밖에 없는 것도 그 하루의 불편함쯤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테사는 나쁜 사람으로 살아오지 않았다. 어떤 게 옳고 어떤 게  옳지 않은지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간 노아랑 사이가 좋았고 하딘에게 빠져드는 지점에서도 자신에게 더 좋은 건 어떤 건지  판단하려고 해왔다. 그런데 노아가 찾아와서 옆에 누워있던 밤, 노아가 아직 자신의 남자 친구였던 밤, 하딘을 찾아간다.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하딘의 가족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찾아가게 된 것. 그 자리에서 하딘과 얘기하다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고  하딘의 옆에 누워 밤을 보내게 된 건, 역시나 테사가 처음부터 의도했던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눈을 뜨니 아침이었고 노아로부터  부재중 전화 일곱 통이 걸려와 있다. 혹시나 밤새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닌지 걱정하는 노아 앞에 테사는 나타나고, 너무나 미안해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는지 고민하는 그들 앞에 하딘이 나타난다. 이로써 노아는 이 모든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노아가  찾아온 밤, 테사는 하딘에게로 갔다는 것, 그리고 아침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 이 상황은 노아에게 너무나 큰 아픔일  것이고 배신일 것이다. 그 자리에서 누구의 무슨 말도 듣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노아는 상처 받은 채로 집에 돌아가야 했다. 테사는  자신이 노아에게 못할 짓을 했다는 것을 자신도 안다. 노아에게 상처 입혀야지, 노아를 아프게 할 거야, 라는 마음을 먹은 게 아닌데도  그렇게 되었다.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해서 이것이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가끔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상처를 주려고 의도한 일이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상처를 주게 되는 일. 게다가 그게 상대에게 잊지  못할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 내가 나쁜 사람으로 살아왔던 게 아니고, 내가 지향하는 바 역시 좋은 사람이 되자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끔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이 된다. 못된 사람, 상처를 입힌 사람이 된다. 나 역시 살면서 그런 일들이 더러  있었다. 내가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내가 잘못을 한 이후에 생각하게 됐던 일들이었다. 나의 결정이나  행동으로, 그것이 어떤 의도를 품고 있었든, 상대가 상처를 받게 되는 일들이 더러 있다. 어떤 일들에 있어서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나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해도, 누군가가 상처를 받게 되는 일이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그런 일들은 종종 벌어진다. 나 역시 그런 식으로 상처를 받고 고통스럽고 괴로웠던 경험들도 있다. 아마 상대는 나를  괴롭힐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다락방 꼴 보기 싫어 괴롭혀줄 거야, 라는 의도로 그런 일을 벌이진 않았다 해도, 심지어 좋은  의도였다고 해도 나에게는 그것이 고통이거나 상처일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일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상처 받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상처 받지 않으면서 살아간다면 좋겠지만, 그러나 그런 일들이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다. 아무리 조심조심 살아도, 아무리  애를 써도, 어떤 일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 그런 식으로 벌어지고 만다. 


테사가 그 자리에서, 너무  끌리는 남자랑 이야기를 나누다 스르르 잠이 들어버리게 되는 그 상황에서, 계속해서 '노아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노아는  나를 보기 위해 왔다'는 걸 염두에 두며 기숙사로 억지로 돌아가야 했을까? 아마도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당장 이 사람과 여기 있고 싶은 나의 마음은 어쩌나. 내 욕망은. 노아는 내가 오라고 해서 온 것도 아니고 자기 혼자  무작정 찾아온 것이었는데. 그렇다 해도 노아가 다른 남자와 밤을 보내고 온 여자 친구를 아침에 맞닥뜨리는 것은 가혹한 괴로움이긴  했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내가 잠든 사이, 다른 여자를 찾아가 밤을 보내고 왔다면, 그러니까 그들 사이에 섹스가 있든 없든,  나는 아침에 들어오는 그를 보며 어떤 감정을 느껴야 했을까. 그가 그 밤에 옆에 있는 나를 두고 다른 사람에게로 갔다는 것은, 그  순간 더 중요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었다는 거잖아. 나는 이걸 도대체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그는 그의 마음이 끌리는 대로  육체가 이동한 것뿐인데, 나는? 



어휴.. 치명적인 남자한테 빠지느라 고생이  많았다 테사여. 심지어 그 사랑으로부터 이제 빠져나오느라 고생이 많다. 그런데 그거 쉽지 않을 거야. 그거 서른하나에도 마흔에도  쉽지 않은 일이란다. 어쩌면 영원히 안될지도 몰라. 그렇다면 네가 살아가며 감당해야 할 몫이란다. 아마도 네가 그걸 짐작했기  때문에 그렇게 그 사랑에 빠지지 않으려고 내적 갈등에 휩싸였던 거겠지.



그런데 이 테사와 하딘의 이야기가, 그다음 이야기가 나왔단다.  




삼각 로맨스 너무 싫지만 어쨌든 내가 그다음 이야기 봐주도록 하겠다.

금요일 밤이 아주 뜨겁겠군.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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