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을 가지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내가 살던 지역은 멕시코 할리스코(Jalisco) 주의 과달라하라(Guadalajara)라는 도시다. 이 도시는 수도인 멕시코시티(Ciudad de México)로부터 차로 약 8시간 거리에 떨어져있는 도시로 멕시코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로 알려져 있다. 본래 과달라하라는 멕시코시티를 이어 멕시코 제 2의 도시로 불렸으나, 이후 북쪽 공업도시로 부상한 몬떼레이 (Monterrey) 시에 밀려 3위로 물러나게 되었다고 한다.
할리스코 주의 다른 유명한 지역 중 하나는 바로 떼낄라(Tequila)일 것이다.
'어.. 뭐지?' 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것'이 맞다. 할리스코 주는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떼낄라라는 술의 태생지이기도 하다. 나는 (굳이) 가보지 않았지만, 떼낄라 마을로(정말 마을 이름이 '떼낄라'다) 가는 투어 상품들도 다수 있다고 하는데 기차를 타고 가면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다양한 종류의 떼낄라를 맛본 뒤, 도착해서는 아가베(Agave)를 주원료로 증류, 숙성 등의 과정을 통해 술을 만드는 과정을 탐방하는 투어라고 한다.
아가베는 멕시코에서 어디에서나 정말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 중 하나이다. 나는 이 식물이 떼낄라의 원료임을 몰랐음은 물론, 그저 알로에인 줄로만 알았다. 멕시코로 오기 전 종종 집에서 아가베 시럽을 바른 빵을 먹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나를 둘러싼 환경을 조금 바꾸는 것만으로도 내가 일상에서 당연시 여기는 많은 것들이 특별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내 삶의 터전이 완전히 뒤집히는 것인 만큼 그 특별함의 크기나 색깔 또한 차원이 다르다.
과달라하라 내에서도 내가 사는 커뮤니티의 이름은 Jardín Real이었다. 내가 굳이 '커뮤니티'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이 곳을 비롯한 주변 다수의 동네가 각각 그들만의 게이트로 구분지어져 있기 때문이다.
위 사진과 같은 게이트를 기점으로 차를 가져온 방문자의 경우 신분증을 경비원에게 맡겨야 한다. 경비실엔 상시 근무 인원이 있으며, 밤에는 경비원들이 교대로 자전거를 타고 커뮤니티 내를 순찰한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눈치챘겠지만, 상당한 '부자 동네'다.
내가 살던 집 주인 아저씨, 아주머니만 해도 모두 번듯한 직업을 가진(직업이 뭐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장성한 자녀 셋을 두고, 내가 살던 집을 소유하며 나처럼 한 학기 또는 두 학기 동안 과달라하라를 방문하는 학생들을 상대로 방을 빌려주고 받는 월세를 노후 자금으로 운용하는 분들이었다.
내가 당시 월세로 지불했던 금액은 한화로 35~40만원에 달했다. 다행스럽게도 보증금은 우리나라의 경우와 같이 크진 않았고, 한 달 월세에 해당하는 금액을 Deposit의 형태로 맡겨두는 형식이었다. 그리고 원한다면 마지막 월세를 이 Deposit으로 지불하고 집을 나올 수 있다. 직전 글에서도 물가를 간단하게나마 언급했지만, 35만원은 현지 물가 수준을 고려하면 꽤나 비싼 월세에 해당한다. 예측컨대, 시내 쇼핑몰 주변의 중상급 식당에서 한달 내내 저녁 한 끼를 먹고, 10% 팁을 주고도 약간은 돈이 남을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나중에 각국의 교환학생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이지만 내 월세의 절반 수준의 집에 사는 친구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내가 썼던 월세가 아깝지 않다. Jadín Real은 고요하고도 안전한 동네였고, 주변 편의시설들도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피자집부터, 커피집, 길거리 타코집, 햄버거 가게 등 없는 것이 없었다. 내가 멕시코에서 체류 중 먹었던 가장 맛있었던 타코도 이 동네 길거리에서 먹었던 타코였다.
본 글의 표지는 내가 다녔던 학교인 몬떼레이 공과대학(Tecnológico de Monterrey)이다. 내가 앞서 언급했던 급성장한 공업도시인 그 몬떼레이가 맞다. 이 학교는 이름처럼 본교가 몬떼레이 시에 위치해 있으며, 멕시코 전국에 과달라하라를 비롯해 총 31개의 캠퍼스가 있다. 멕시코에서 최고 명문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학교가 UNAM(Universidad Nacional Autónoma de México)인데, 공립학교계의 최고가 UNAM이라면, 사립학교계의 최고는 단연 Tec. de Monterrey가 강림하고 있다. 이 학교는 라틴아메리카 내에서 최초로 학교 시스템을 인터넷과 연결한 학교로도 알려져 있으며, 영국 경제 주간지 Economist에 따르면, 몬떼레이 공과대학 경영대학은 라틴 아메리카를 통틀어 최고 수준이며 멕시코 내에서 특허를 가장 많이 보유한 학교 중 하나라고 한다.
최고의 사립대학교로 유명한 만큼 등록금 또한 놀라운 수준이다. 내가 등록한 과달라하라 캠퍼스 경영대학을 기준으로 한 학기 등록금은 한화로 약 400만원 수준이었다. 나의 한국 학교 등록금이 한 학기 330만원 정도 수준이었던 걸 고려하면 받아들일 수 없는 등록금이었던 게 사실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간 것인 만큼 등록은 한국 학교을 통해 등록했고, 결과적으로 내가 한국 학교에서 매 학기 냈던 등록금과 동일한 액수를 냈다.
그런 만큼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 대부분이 부유층 자제일 수밖에 없다. 이를 반영하듯 학생들을 위한
캠퍼스 내 주차공간도 매우 넓게 마련되어 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다수의 미국 사립대학교가 그러하듯 일정 수준의 금액을 대학교에 기부하면, 학생의 고등학교 성적 수준과 무관하게 '기부입학'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래서인지 실제로도 학생들의 학업능력이 매우 들쑥날쑥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높은 수준의 등록금을 보상할 만큼의 수준인지는 모르겠으나 캠퍼스 내부 시설은 매우 훌륭하다.
아쉽게도 그 당시 찍은 사진들 중 캠퍼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만한 사진이 그리 충분치는 않으나
대표적인 시설들은 위와 같다. 무료로 이용가능한 레인이 7~8개 정도 갖춰진 실외 수영장부터, 헬스장, 2개의 축구장과 별도의 아메리칸 풋볼 경기장, 대형 도서관 등 다양한 시설들이 빠짐없이 갖추어져 있다.
지금 돌아보면 사실 이런 캠퍼스의 모습은 그 밖의 세상과 분리된 다른 세상과도 같았다.
다시 말해 '멕시코 고유'의 것들을 보길 원했던 나에게 몬떼레이 공과대학은 너무도 '미국화'된 학교와
학생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래서 성당과 광장, 여러 박물관 등 유서 깊은 문화재들이 모여있는 도시 중심(Centro)으로 가는 횟수가 늘수록 화려한 캠퍼스는 내게 점점 더 이질적인 것으로 다가왔다.
나를 둘러싼 환경을 조금 바꾸는 것만으로도 내가 일상에서
당연시 여기는 많은 것들이 특별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내 삶의 터전이 완전히 뒤집히는 것인 만큼 그 특별함의
크기나 색깔 또한 차원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