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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 Descansador Oct 09. 2018

감성과 이성의 스위치

내게 맞는 스위치 찾기


한 주에도 몇 번, 아니 하루에도 몇 번씩 껐다가 켠다. 내 마음 속의 스위치.



주 5일을 9 to 7 직장에서 보낸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굉장히 지치는 일이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나 개인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고작 3-4시간. 누군가는 말하겠지. 3-4시간이나 되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물론이다. 나는 매일 회사 건물을 나서면서 감사한다. 나보다 훨씬 늦게까지 일하고도 매일 집에 가기까지 나보다 두 배의 시간을 소모해야 하는 사람들이 이 비뚤어진 도시 서울에는 차고 넘친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감히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더욱 큰 고통이 나의 고통을 정당화하거나 완화해주지는 않는다. 내 생각에 현대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잘 모르거나 애써 부정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이 겪은 고통에 대한 보상을 종종 뒤틀린 방식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배설하듯 요구한다. 예컨대, '내가 이만큼 겪었으니 너 역시 이 정도는 겪고, 또 이겨내야 해'와 같은 발상 말이다. 


지금 당신의 입에서 나는 믹스커피와 담배의 고전적인 조합의 악취가 맡는 사람에 따라 그 충격의 크기와 여운이 다른 것과 같이 고통 역시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왜 모를까. 


내게 분명한 사실은 온전히 내게 주어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내가 개인의 시간이 비교적 더 많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점도 한 몫하는 것 같다. 


나는 늘 내 개인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이 말을 들으면 보통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을 나를 내향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아래의 도식을 보면 나의 성향은 물론 독자 여러분들 스스로의 성향을 돌아보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



외향성(Extroversion)과 내향성(Introversion) 스펙트럼



새삼스럽지만, 내향성과 외향성은 1과 0으로 이루어진 이진법처럼 양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긴 스펙트럼 상에서 보는 것이 합당하다. Ambi-라는 접두사는 '둘 다, 양 쪽의'라는 의미를 지닌 접두사로 Ambiversion은 외향성과 내향성의 특질을 고르게 가지고 있는 성향으로 이해하면 된다. 위 도식을 기준으로 Extroversion(외향성)을 0, Introversion(내향성)을 100으로 보았을 때 나의 성향은 60~70 정도로 표현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르면 금요일 퇴근 후, 늦으면 토요일 아침 일찍부터 내가 주중에 잊고 있었던
수많은 감성의 스위치들이 켜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내가 본 포스팅을 통해서 풀어보고자 하는 이야기는 사실 내/외향성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성과 감성은 내/외향성과 함께 다루어지기도 하지만 분명 맥을 달리 하는 문제이다. 


내가 요새 겪고 있는 어려움은 내 안에서의 이성과 감성이 '무분별하게' 뒤섞이는 데서 기인한다. 그리고 표제와 같이 이를 감성과 이성의 '스위치'라고 표현해보았다. 사실 내/외향성과 마찬가지로 감성과 이성 역시 연속된 스펙트럼에서 보아야 함이 마땅한데, 이를 ON/OFF로 표현되는 스위치로 표현한 건 요새 내 안에서 이 둘의 발현이 다소 극단적이고, 조화롭지 못하다는 내 생각에서다. 


아직 내가 사회초년생으로서 이 둘의 적절한 조합을 찾지 못한 것도 분명 이 혼동의 원인 중 하나다. 하지만, 내 문제 제기의 초점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내 삶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이 아닌 내게 얼마 주어지지 않은 내 시간을 보내는 데에서 발생했다. 


이르면 금요일 퇴근 후, 늦으면 토요일 아침 일찍부터 내가 주중에 잊고 있었던 수많은 감성의 스위치들이 켜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스위치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먼저 켜지고 싶어했다. 직장에 다니기 이전에 시간이 많았던 나라면 이들을 잘 달래면서(그럴 필요도 없었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 하나 하면서 행복감을 만끽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어지고 나서부터는 내 안에서 우선순위의 서열이 정해지질 못하고 뒤죽박죽이 되어 서로 충돌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원체 그리 계획적인 사람이 되질 못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List-up을 해두어도, 막상 무엇을 제일 하고 싶은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었다. 


그렇다보니 절대적으로 시간은 부족한 상태에서 욕구는 여전하니 뒤죽박죽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말이 나온 김에 한 번 적어보자. 온전히 내게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내가 하고 싶은 활동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말이다. 독자 여러분들도 자신이 무얼 할 때 가장 즐겁고 내 묵은 스트레스들을 없애주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기회가 된다면 내게 더할 나위 없이 보람찬 포스팅이 될 것 같다. 



▷ 내가 좋아하는 것들 

1. 언어 공부(스페인어, 중국어)
2. 달리기(4~5km) 
3. 음악 듣기 
4. 글쓰기
5. 맛있는 커피 마시기
6. 좋은 책 읽기 
7.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볍게 맥주 한 잔 
8. 영화 & 전시회 
9. 여행 
10.침대에 누워 넷플릭스, 유투브 보기 



글로 쓰고 말로 표현하는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보다 확실히 알게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은 그 무지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나아가, 기존의 앎을 강화하고 확장해준다. 위처럼 리스트를 쓰기 전에 나는 '10개 즈음은 거뜬히 쓰겠지'라고 생각했지만 7개를 넘어가면서부터는 조금씩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10개를 쓰고 나서도 뭔가 찝찝함이 가시지 않는 건 그 때문일까. 


내가 너무 욕심이 많은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런 게 분명하다. 명백하게 내 생활의 패턴은 달라졌고, 내게 주어진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해졌다. 하지만 위의 리스트에 적히는 것들은 내 대학 생활 이래 분명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공급은 부족한데, 수요는 그대로이니 그로 인한 괴리가 생길 수밖에. 수요 초과로 인한 '가격 상승분'은 고스란히 내게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내 삶은 이전처럼 풍요롭지 못한(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나는 주어진 시간 마저 알맞게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무거운 마음들이 돌덩이처럼 쌓여가고 있다. 




표현하는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보다 확실히 알게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은
그 무지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나아가, 기존의 앎을 강화하고 확장해준다. 



더욱 큰 문제는 많은 것들을 해내고 싶다는 욕심은 여전해서 이도 저도 안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내게 생긴 가장 두드러지는 증상은 '조급함'이다. 모든 결과는 그 수확을 위해 일정한 시간과 노력이 반드시 수반되는 것인데, 어느새 나는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의 Input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Output을 기대하고 있었다. Output이 기대만큼 따라주질 않다보니, 금새 흥미를 잃어버리고 인내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몰입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듯했다. 


앞으로 내게 주어진 숙제는 1) 위의 리스트에서 보다 명확하게 우선 순위를 정하는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2) 그를 실천하기 위한 대략적인 시간표라도 구성해보는 것(나처럼 계획 없는 사람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어느 샌가 다시 뒤죽박죽이 될 것 같아서다) 등이 될 것이다. 내가 특정 활동을 하기로 스스로와 약속을 해둔 시간 동안에는 그것에 몰입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희망적으로는 이런 훈련들을 반복적으로 하다보면 조금은 더 내 중심을 잡고 내 활동들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이번 포스팅은 최근의 내 문제점들만을 나열하고 해결책은 그저 원론적인 용두사미의 글이 된 것 같아 부끄럽다. 하지만,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점에서는 성공적이라 말하고 싶다. 이번 글을 통해 나 역시 내가 아는 것, 모르는 것에 대해서 보다 명확하게 알게 되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내가 이 글을 씀으로서 보다 명확하게 스스로를 이해함을 넘어 내 생각과 말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어쩌면 감성과 이성을 스위치에 비유한 것은 ON/OFF되는 영역을 스스로 한계짓고, 영역간의 한계를 필요 이상으로 분리해서 생각하는 우를 범하게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랜 역사 속에서 인간은 본래 영역이나 범위가 불분명한 추상의 것들을 영역화해왔으며, 이를 더욱 세분하여 개념이라는 지혜로 집대성하였다. 이런 것처럼 나 역시도 그 둘을 분리된 스위치로 구분, 관리하며 각각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고, 궁극적으로 보다 현명하게 ON/OFF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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