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맞는 호흡의 글을 찾기까지
하지만 그들에게만 돌을 던진 순 없었다.
방구석에 앉아 매일 세상의 수많은 지식을 받아보고 논평하는 배부른 자가 어찌 그 이상의 불평을
할 수 있겠는가.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듯, 지혜는 그에 목마른 자가 찾아나서면 그 뿐이다.
그래서 나는 좀더 양질의 지혜원(智慧源)을 찾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기로 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나는 먼저 그 글이 쓰여지기까지의 '호흡'의 길이를 먼저 떠올렸다.
일간지를 예로 들어보자. 언론사별로 정치, 경제, 사회 면별로 담당기자가 있겠지만, 그들에게 할당된 그 날의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게 잡아야 24시간일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항상 정확한 양질의 지식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지 싶었다.
여기서 '지식'과 '지혜'를 분명히 구분해두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먼저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지식은 '어떤 대상에 대하여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를 이른다. 반면 지혜는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으로 정의된다.
이 둘만 보면 굉장히 다른 차원의 두 단어 같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요컨데, 지혜란 '지식 이외에도 그 사람의 경험, 판단력 순발력 등의 최적화된 집약'으로 정의하고 싶다.
달리 말해 지식과 지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다양한 환경적 요인 속에서도 탄력적으로 실천적 행동과
함께 조화롭게 발현될 수 있는가'의 여부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찾는 것은 결국 지혜이지, 지식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다만, 지식은 지혜의 좋은 재료가 될 수 있고 지혜에 비해 가시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손에 닿는
지식들을 모으는 것이다. 이후 '재료를 어떻게 화학적으로 잘 결합해 지혜로 만들 것인가'는 또다른
난제이지만 말이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듯, 지혜는 그에 목마른 자가 찾아나서면 그 뿐이다.
그래서 나는 좀더 양질의 지혜원(智慧源)을 찾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기로 했다.
이야기가 많이 옆으로 빠진 것 같지만 지식이 아닌 지혜를 궁구하는 것은 내 삶의 중요한 가치인 만큼 꼭 내 생각을 공유하고 싶었다.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래서 나는 좀더 제작의 호흡이 긴 글들을 읽어보기로 했다.
주간신문이나, 잡지 나아가서는 월간 정기간행물로 범위를 넓혀보았다. 그 호흡이 길수록 확실히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이 탄탄하고, 읽는 나 역시 해당 사안에 대한 찬성/반대와 무관하게 '참 좋은 글이다'라는 인상을 남기는 글들이 많아서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돌아보면 나는 먼 곳에서 답을 찾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우리는 글의 호흡이 길뿐 아니라 필자의 창작의 고통을 감히 짐작할 수 없는 출판물을 알고 있다.
두 말할 필요없이 '책'이 아닌가.
나란 사람은 내 호기심의 총량에 비해서 너무 독서를 게을리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런 거창한 이름의 여정 또한 필요 이상으로 길어진 거겠지. 하지만, 여정이 짧지 않았던 만큼 깨달음의 깊이 또한 깊었다.
그래서 나는 요새 제한된 나의 시간 속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좋은 책'을 찾아 나서고 이를
내 소양으로 잘 흡수할지를 보다 구체화하고 있다.
하지만, 여정이 짧지 않았던 만큼 깨달음의 깊이 또한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