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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 Descansador Apr 24. 2020

내 공간이 주는 안정감, 또는 권태

애증의 방구석 

최근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의 책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를 읽었다. 

김정운 교수의 많은 작품을 읽어보지는 못하였으나, 칼럼이나 들은 바 있는 일화 등을 통해 여러 모로 흥미를 느끼고 있는 작가였다. 


이전에도 헌책방에서 [에디톨로지]라는 책을 들춰보며 느낀 바이지만, 김정운 교수의 글은 참 재미가 있다.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뜬금없는 나르시시즘부터 의식의 흐름과 같이 느껴지기도 하는 글의 흐름까지. 참 지루할 틈이 없다. 글을 참 맛있게 쓰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커졌다. 


글을 장르를 비문학으로 한정할 때 필자가 좋은 책이라고 느끼는 책은 두 가지 종류의 책이다. 

하나는 비교적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본인의 연구, 또는 이전의 연구된 다양한 사례의 인용 등을 통해 독자들이 해당 주제에 대하여 심도 있는 이해를 돕는 책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러한 책들은 감히 고전(Classic)으로 불리울 자격이 있는 책들이다. 두 번째는 그 주제의 탐구가 첫 번째 종류의 책처럼 깊지는 않더라도, 해당 주제와 연결될 수 있는 다양한 '점'들을 툭툭 던지듯 암시해주는 책이다.



두 번째 종류에 해당하는 책을 쓸 수 있기 위해서는 
정말 정말 많은 첫 번째 종류의 책들을 읽고 연구하고, 
그 수많은 지식과 통찰이 비로소 내 안에서 통합되고 영글어져야만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위의 두 가지 종류의 책을 균형있게 읽는 것이 식견과 교양의 깊이와 폭을 확장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종류의 책은 특정 주제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해주고, 두 번째 종류의 책은 얕게나마 이해하고 있는 주제의 폭을 넓혀준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김정운 교수의 책은 두 번째 종류의 책에 가깝다. 내 생각에 두 번째 종류에 해당하는 책을 쓸 수 있기 위해서는 정말 정말 많은 첫 번째 종류의 책들을 읽고 연구하고, 그 수많은 지식과 통찰이 비로소 내 안에서 통합되고 영글어져야만 한다. 


저자인 김정운 교수의 삶은 꽤 파란만장해 보인다. 그는 30대, 40대, 50대를 각각 독일 유학(30대), 교수 생활(40대), 일본 유학(50대)의 키워드로 정리한다. 특히 그는 독일 유학 시절 난민 수용소에서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다가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눈앞에서 목격한 장본인이었다. 또한, 그가 50대에 떠난 일본 유학은 그의 전문 분야인 심리학을 더 공부하고자 함이 아니라 뒤늦게 회화(繪畫)를 배우고자 함이었다. 그는 본서의 매 장의 표지로 자신이 그린 그림을 싣는데 작품들이 매우 훌륭하다. 


저자 김정운 교수가 그린 미역창고(아름다움의 힘으로 창조적인 생각을 한다) 


위 그림의 미역창고는 그가 현재 여수 옆의 외딴 섬에서 화실 겸 작업실로 쓰고 있는 미역창고의 모습이다. 해당 공간은 실제로 과거에 '미역창고'로 쓰이던 공간이었는데 김정운 교수가 이를 매입하여 현재 작업실로 쓰고 있다고 한다. 미역창고라고 씌여진 문구 위의 한문들을 잘 살펴보면 미역창고를 재치있게 재해석한 김정운 교수의 안목이 돋보인다. 그 의미가 '아름다움의 힘으로 창조적인 생각을 한다'라고 한다. 좌측 하단의 '오리가슴'은 김정운 교수가 정한 본인의 예명으로, 오르가즘의 한국식 표현이라고 한다. 


김정운 교수는 이 새로운 공간에서 회화 작업을 하고 저작 활동을 한다. 이 책의 제목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를 처음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온전히 나만의 공간인 '나의 방'에 대한 생각이었다. 가만히 내 방을 돌아보니 이 공간은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의미에서의 '나'와 단기적인 최근의 '나'의 모습을 매우 잘 반영하고 있었다. 옷은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었고 책상은 빈틈없이 수많은 물건들로 가득차 있었다. 이불은 정리가 안된 채로 헤집어져 있었고, 완독하지 못한 책들은 무질서하게 책장에 꽂혀 먼지가 날리고 있었다. 


예전에는 이런 내 방의 모습이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라는 표상이라 여겼다. 근거없는 자기 합리화는 아니었던 것이 어지로운 내 방이 외출 혹은 퇴근 뒤에도 같은 정도와 배치로 어지러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나는 묘한 안정감을 느꼈고, 나 이외에는 이 공간을 어찌 할 수 없다는 알 수 없는 정복감을 느꼈다. 


나는 나만의 어지러운 공간 속에서 알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

 

하지만 최근에는 좀 생각이 바뀌었다. 

어느 새인가 내가 이 무질서하고 어지러운 공간으로부터 오히려 지배를 받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오랜 시간 축적된 게으름과 무질서로 얼룩진 '온전한 내 공간'으로부터 압도되고 있었고, 쉬이 이 공간을 보다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어쩌면, 그런 용기없음을 오랜 시간 동안 안정감으로 포장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내 책상 위의 물건 배치들은 내 방 전반에 흩뿌려진 권태와 무질서의 축소판이다. 


수평으로 더이상 그 영역을 넓히기 어려웠던 무질서는 수직으로 그 영역을 늘려가기 시작했다. 내 책상 한 단면의 수직 영역이 커지면 커질수록 내가 책상 위에 어떤 물건들을 올려놓았는지에 대한 감각은 더욱 무뎌졌다. 한 번은 일주일 동안 찾은 물건을 책상 위에 수직으로 쌓아놓은 물건들 더미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발견하면서 한참을 허탈해 한 적이 있다. 



나는 쉬이 그 공간을 보다 긍정적으로 변화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어쩌면, 그런 용기없음을 오랜 시간 동안 안정감으로 포장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일찍이 느꼈던 무질서가 주는 안정감의 다른 단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로 내가 긍정적 변화를 위한 행동을 시작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직으로 쌓여진 물건 틈 사이에서 잊혀진 물건들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소중히 여겼던 많은 것들이 무질서의 소용돌이 속으로 지금도 속절없이 빨려들어가고 있다. 


더 늦지 않게 먼지들을 털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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