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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do Nov 10. 2020

부모가 되고 알게 된 것들

열정은 있었지만...

신규 발령 2년을 여주에서 보내고 3년 차가 되던 해에 서울 집에서 가까운 안양으로 내신을 냈다. 안양은 경합지라 경력 교사도 들어가기 힘든 곳인데 운 좋게 서울 집에서 제일 가까운 일반 중학교 특수학급에 발령을 받았다.


중증 중복 장애 학생들과 2년을 보내고 가서 그런지 특수학급 아이들의 장애는 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아이들에겐 뭐든 교육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변화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열정에 가득 찬 3년 차 교사였다.


특수학급에 온 장애 학생들은 장애가 경증인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온전히 일반 학급 수업에 속하기는 힘들다. 학습은 물론 일상생활도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학습은 주로 예체능 교과 위주로 원적학급에서 수업을 받고 주요 과목인 국어 수학 영어 과학 시간엔 특수학급에서 개별화 교육이 이루어진다. 아이들의 장애 정도에 따라 더 많은 시간을 원적학급에서 통합 수업을 받기도 하고 특수학급에서 더 많은 시간을 개별화 교육을 받기도 한다.


학습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생활지원도 필요하다. 예를 들면 식사지도 같은 것이다. 지금은 특수교육 보조원 제도가 있지만 당시엔 특수교육 보조원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아서 특수교사가 생활지도 지원까지 모두 나갔다.


당시 신입생 중 한 명이 식사가 자발적으로 잘 이루어지지 않는 학생이 있었다. 그 학교는 교실에서 급식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나는 점심시간이면 학생의 급식 지도를 나갔다. 점심시간 전에 공강이 있어 미리 먹는 날은 여유가 있지만 점심시간 전에 공강이 없을 경우엔 5분 만에 식사를 마치고 학생이 있는 교실로 올라가서 식사 지도를 하곤 했다.


아이는 혼자 수저를 쥘 수는 있지만 젓가락질은 어려웠다. 밥반찬 모두 수저를 이용해 먹어야 했다. 점심을 다 먹고 노는 친구들을 쳐다보느라 그마저도 스스로 안 하려 했다.


“수저 들자. 밥 퍼야지, 먹어야지.”

“꼭꼭 씹어. 다른데 보지 말고 밥 먹자.”

“반찬도 먹자”


아이를 계속 독려하며 식사지도를 하다 보면 점심시간이 금방 지나갔고 점심 급식통 정리가 시작되면 어떻게든 한 술이라도 더 먹이려다 보니 마지막엔 떠먹여 주게 되거나 아이의 식판만 마지막에 내가 급식실로 정리해서 가져가는 방법으로 점심을 다 먹이곤 했다.  아이의 문제는 식사에 집중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보아하니 집에서는 엄마가 다 떠 먹여 주는 것 같았다.


언제까지 아이가 떠먹여 주는 밥을 먹게 할 순 없었다. 일반 학급에 온 이상 규칙을 따라야 한다 생각했다. 일반 아이들의 속도에 다 맞출 순 없지만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춰야 한다 생각했다.


아이에게 점심시간 안에 스스로 식사를 다 못 할 경우 급식판을 치우겠다고 말했다. 인지 능력이 있는 학생이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부모님께도 전달을 드렸다. 스스로 식사를 안 하고 식사시간에 맞춰 식사를 마치지 못할 경우 그날 급식은 그걸로 끝내겠습니다.


어머님은 알겠다 하시면서 다음날부터 나에게 우유를 하나씩 넣어 보낼 테니 식사 전에 먹게 해 달라 하셨다. 아이가 밥을 다 못 먹으면 배가 많이 고플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밥 먹기 전에 우유를 먹으면 밥을 더 안 먹을 텐데?

내가 아이 밥을 굶길까 봐 걱정하시는 건가?

나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아이를 지도하고자 노력하는데 도대체 이 엄마는 언제까지 아이를 끼고 사시려는 거지? 평생 엄마가 밥을 먹여 줄 순 없잖아! ’


그땐 그랬다. 부모의 마음은 알지 못하는 미혼의 열정 가득한 신규 교사였을 뿐이었다.


내가 부모가 되고 나서야 나는 당시 그 어머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일반 중학교에 보내서 안 그래도 마음이 불안하고 걱정되는데 그런 아들이 점심도 제대로 못 먹을 생각하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교육이라는 이유로 내 아이가 처할 상황이 못내 못마땅하고 속상하셨을 법도 한데 차마 내겐 크게 내색도 안 하셨다


아침에 식구들 밥을 다 먹는 동안 멍 때리느라 반도 채 못 먹은 10살짜리 딸아이 입에 밥 한 술 떠 먹이면서 문득 그때 그 아이와 엄마가 떠 올랐다.


열정은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 실제로 나는 당시 아이들과 많은 활동을 했고 열정적으로 교육했다. 그러나 내가 그 당시 아이들과 학부모님께 따뜻한 선생님으로 기억될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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