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연애 2>, <밥맛 없는 언니들>,
인스타그램 태그, '#김샥샥의감정아카이브'를 아시나요? 남달리 친절하고 상냥한 성격의 김신식 작가는 주변 지인들에게 '싹싹하다'는 표현을 자주 들었어요. 그렇게 스스로 '김샥샥'이라는 두 번째 이름을 지었답니다. 비평가이자 작가, 감정사회학 연구자이기도 한 그는 우리 주변의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문화 콘텐츠를 기민하게 관찰하고, 사람들의 감정을 섬세히 살피는 시선을 가지고 있어요. 생각 없이 보고 잊었던 예능 프로그램에도 김샥샥의 관점을 입히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탄생해요. 또 다른 사유와 고찰, 새로운 발견을 이끄는 그의 문장을 읽다가 궁금해졌어요. 지난 해 우리가 놓친 문화적 관점은 어떤 것인지, 새로운 해에 그가 찾아낸 문화적, 감정적 주제는 어떤 것인지요. 함께 읽고 일상의 영감을 얻어 볼까요? 동료들과 이 콘텐츠를 공유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보아요.
감정사회학 연구자 김신식의 아카이브감정사회학 연구자 김신식의 아카이브
Writer 김신식
Editor 지수
인스타그램에 풀죽은 문화예술 작업자를 독려하는 기록을 올리며 살아간다. 어느덧 2022년도 저물고 2023년이 찾아왔다. 한 해를 결산하고 새로운 해를 기약하는 시기를 맞아 아직까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대중문화 콘텐츠 세 개를 골랐다. 선정의 이유는 각자 다르지만, 계속 곱씹다 보니 서로 이어지는 측면이 있었다.
<환승연애 2>의 메인 프로듀서 이진주는 연예예능에서 낯설게 다가오는
‘배경지식’이란 단어를 기획 의도로 밝혔다.
티빙 유튜브 계정에 공개된 이진주 PD의 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 우리는 살면서 늘 타인을 만난다. 둘, 그 타인을 알아가려면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셋, 근데 어떠한 배경지식을 습득해야 눈앞에 있는 타인을 잘 알 수 있을까. 넷, 제작진은 그 타인과 사귀었던, 우리가 X라고 부르는 옛 연인의 시각이 주효한 배경지식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단다. 그러고 보니 보통 연애예능이나 결혼예능에선 출연자 스스로 자신의 프로필과 장점을 알리는 장면이 부각된다. 근데 환승연애에선 출연자 각자 정체를 숨긴 채, 함께 나온 X가 대신 쓴 ‘자소서’를 읽어나간다. 자기소개서 양식치곤 이례적으로 애인 사이였기에 언급 가능한 뼈있는 말도 적혀 있다. 아무개를 향한 X만의 응원과 미련이 표현된 셈이다. 자소서에 담긴 그 미묘한 감정 상태는 새로운 사랑을 꿈꾸는 출연자가 호감 가는 다른 출연자와 어떤 관계를 맺으면 좋을지 판단하는 자료가 된다. 이처럼 자료의 맥락에서 사랑을 고찰한 점은 환승연애 제작진의 통찰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가령 시즌2의 해은과 규민, 원빈과 지수의 사전 인터뷰를 보면 연애시절 기록하며 보관해둔 추억의 아카이브가 어마어마하다. 그래서일까.
시청자들은 X와의 복잡다단한 감정이 묻은 상당량의 자료를
버리지 않은 사람만 쏙쏙 골라서 섭외한 제작진의 안목에 주목했다.
다만 X와의 돈독한 관계를 증명하는 수많은 자료가 축적되었다는 점이, X를 좋아하는 다른 사람을 쉽사리 차단하거나 X와 재결합하는 데 결정적 요소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출연자 사이에서 감정의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이유다. 논의를 이어가면, <환승연애 2>에선 끌리는 타인에게 다가가고자 그이의 X를 상대로 배경지식을 확인하는 장치를 시즌 1보다 다양하고 정교하게 깔았다. 익명 채팅방 안에서 응답할 처지에 놓인 출연자는, 자신의 X와 관련한 질문을 걸어오는 상대에게 괜찮은 자료로 쓰일 만한 특이점을 제공한다. 대화 도중 아직 정리되지 않은 지난 연인과의 감정을 확인하며 거짓 정보를 건네거나 정보 공유를 자제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출연자 본인은 X와 연애하며 느낀 감정 상태, 그것과 결부된 흔적을 담아둔 아카이브처럼 지내왔음을 실감한다. <환승연애 2>는 ‘나’란 존재가 특별한 타인과의 관계에서 체험한 바를 유심히 관찰하고 연관된 감정을 자의든 타의든 저장해두며 산다는 점, 이로 말미암아 그 타인의 고유한 특성을 증언할 준비가 된 ‘감정 아카이브’로 살아간다는 점을 지난 시즌에 비해 더욱 도드라지게 보여줬다. 더 나아가 내가 누군가의 감정 아카이브로 살아가는 데 중요한 계기에 사랑과 이별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현실이 인간만의 특권이라 기쁘고, 인간만의 특권이라 서글프다는 여운 또한.
나는 이 예능이 ‘성장-서사’를 꾀하지 않아서 인상 깊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소식하던 사람이 식사량을 늘려나간다고 해서 그게 누군가의 좋은 성장인양 몰아가지 않는단 뜻이다.
예를 들어 소식가인 박소현과 산다라 박에게 대식가로서 맛있게 먹는 법을 알려주는 강의를 열 ‘먹강사’가 손님으로 초대된다. 먹강사는 식사에 관해 새겨들을 만한 문구를 공유하고 자신만의 비법을 알려주지만 소식가인 두 방송인이 그걸 삶의 본보기로 따를 필요는 없다. 게스트가 식사하는 모습에서 좋은 점을 찾아주며 강의에 끝까지 임했으나 제안이 버겁다고 생각되면, 박소현과 산다라 박은 “잘 먹었습니다”라는 예의 있는 말로 선을 그으며 마무리한다. 먹강사로 초청받은 사람이 ‘소식좌’의 라이프스타일을 무시하면서 강압적으로 식사를 유도하지도 않는다. 특히 노사연·노사봉 자매와의 에피소드를 보면 부담 없이 먹게끔 고기를 잘게 썰어 주는 노사봉의 배려 스민 몸짓, 위트를 섞은 채 억지로 먹여선 안 된다고 당부하는 노사연의 태도를 두고 프로그램의 의의가 산다는 시청자의 호평이 뒤따랐다.
이같이 사람들이 응원하는 ‘소식좌 유니버스’에선 소식의 권유보단
음식 취향과 식사 취향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를 존중하며
한 식탁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밥맛 없는 언니들>의 열풍에 주목한 《경향신문》 오경민 기자는 말한다. “종종 ‘적게 먹자’고 오해하는 이들도 있지만 프로그램 메시지는 ‘먹을 만큼 먹자’다”(2022년 10월 20일자 기사). 그렇다. 머리에 롤을 말고 다니는 사람을 향한 평가부터 시작해 나와 타인의 일거수일투족이 언제든 공격받을 소재가 되기 쉬운 한국 사회다. <밥맛 없는 언니들>은 그러한 ‘초-공격적’인 사회에서 다양성이 공존하는 장을 지향 중이다.
좀처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지난해 <유퀴즈>에 출연한 데 이어 올해 9월 뜬금없이 SBS 심야뉴스 <나이트라인>에 나왔다.
그리고 뉴 진스가 나오기 전 문화예술 잡지 <BE(ATTITUDE)>와의 긴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에 이유가 있었다. 정리하자면 자신을 둘러싼 근거 없는 정보가 돌아다니는게 신경 쓰였다고. 사실 여기까진 유명인사가 으레 겪는 고충 정도로 인식될 법하다. 한데 <BE(ATTITUDE)>에 소개된 민희진의 화법을 면밀히 살피니 특색이 발견된다. 민희진 대표의 입에선 ‘~기보다는’ ‘~이 아니라’는 식의 습관이 자주 나타난다. 대개 비평가들이 자신이 내세우는 견해가 기존의 생각과 다르다고 차이를 둘 때 쓰는 글투 혹은 말투다. 이를 통해 민희진은 정보의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기술을 선보인다. 첫째, 세간에 전파된 자신이 이러저러한 사람일 거라는 정보를 언급한 다음 그것을 꼼꼼하고 분명하게 바로잡는 기술. 둘째, 유행을 만들어가는 사람으로서 으레 이런 포인트에 집중하면 되겠지? 하는 정보를 거론한 다음 그에 반문하는 기술을.
그리하여 민희진은 본 인터뷰에서 자신이 아이돌의 시각적 컨셉을 잡아주는
아트 디렉팅에만 능한 사람이라기보단, 사운드를 비롯해 음악적 요소를
골고루 챙기는 기획자임을 천명했다.
“대부분 새로움을 바란다고 하는데, 진심으로 새로움을 바라는 건지 잘 모르겠기도 해요”라며 트렌드 리더로서 새로움 자체에 대한 의미를 되짚어볼 신선한 정보의 출처가 되어주었다. 그저 올해의 아이돌이라 불러도 무방할 뉴 진스를 키운 문화기획자의 비법이 무엇인지 아는 계기가 아니라, 매일 정보와 지식을 가까이 하는 우리에게 어떠한 삶의 전략이 필요할까 고민하는 이에게 정독을 권한다.
앞서 이야기했듯 박소현과 산다라 박은 먹는 습관에 대한 게스트의 정보 제공이 ‘좋은 건 좋더라도 아닌 건 아닌 거야’라며 나에게 부담되는 정보를 끊어낼 줄 안다. 환승연애 출연자들은 이전 연애에서 상처받았던 대목을 걸러내기 위한 정보 취득에 열중한다. 민희진 대표는 본인에게 해害로 다가온 정보를 지적하고 바로잡는 기회를 마련했다. 종합하면 오늘날 대중은 정보가 수없이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경험을 맞닥뜨리며, 정보 자체가 언제 어디서든 내게 위해로 다가올 수 있다는 ‘함포메이션harmful+information’ 시대의 괴로움을 갈수록 심각하게 겪는 중이다. 유익하고자 정보를 얻는 게 아닌, 무해하고자 정보를 얻는 삶을 추구하는 한국인의 풍경이 반영된 콘텐츠는 2023년에도 계속 등장할 듯하다.
Another Talk
"작가는 감정이라는 렌즈를 통해 오늘날의 사회를 분석하는가 하면, 무심해 보이는 말 속에 숨어 있는 은밀한 감정을 예리하게 짚어내기도 한다. 또한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감정의 맥락을 세심히 관찰해 몇몇 감정에 대한 전복적인 평가를 시도한다. ‘우울’에서 오히려 ‘우울의 리더십’을 읽어내고, ‘공감’에서 되레 ‘조력자 증후군’을 짚어내는 식이다. 이런 섬세한 접근을 따라가면서 독자들은 혐오와 불안이 만연한, 과하게 감정화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지혜를 벼려낼 수 있을 것이다."
김신식 ㅣ 프케시의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