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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May 08. 2023

취약함과 사랑 <영화 헤어질 결심>

영화로 만드는 에세이

1974년 아서 아론, 도널드 더튼 박사는 한 가지 사회 실험을 진행한다. 남성 무리에게 두 개의 다리를 건너게 하는데 하나의 다리는 폭이 좁고 심하게 흔들리며 하나는 튼튼하다. 다리 건너편에는 매력적인 여성이 기다리고 있다. 여성은 간단한 설문조사와 연락처를 건너온 남성에게 건넨다. 실험 결과 흔들리는 다리를 건넌 남성은 50%가 그렇지 않은 남성은 12.5%가 여성에게 연락했다.

흔들 다리 효과라 불리는 이 실험은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황 속 각성 상태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쉽게 착각한다는 요지이다. 심리학적 용어로는 귀인오류라고 부르기도 한다.


두 열정적이고 호기심 많은 심리학자 덕에 우리는 높은 곳에서 놀이기구를 타면서 공포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고백한다. 인간이 취약할 때 사랑에 더 쉽게 빠진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 인간을 조금 애처롭게 보이게 만든다.


기도수는 배 안의 진창에 빠져 있는 서래를 구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준다. 해준은 살인을 하고 위험한 상황에 빠져 있는 서래를 구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준다. 두 사람이 서래에게 사랑에 빠지는 방식은 일치한다. 서래는 영화에서 세 명의 남자를 만나는데 항상 자신이 취약한 상태일 때 남자를 만났다. 취약하고 절박할 때 서래는 사랑에 빠진다. 서래가 세 남자를 모두 진심으로 사랑했는가는 알 수 없지만, 그녀가 남성을 만나는 패턴이 하나로 일치한다는 사실이 있다.


해준은 서래를 만남으로써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고 만다. 영화 속 해준은 꼼꼼하고 치밀하며, 완벽을 추구하는 자부심 있는 경찰이다. 그러나 그는 취약한 상태에 빠진 서래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드러나고 마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는 서래 앞에서 붕괴되며 자신의 바닥까지 드러내고 만다. 그의 붕괴 사실을 아는 순간 서래 역시 함께 무너지고 만다.

영화의 1부 마지막에는 서래 어머니의 유골함의 시점 쇼트로 끝이 난다. 어머니의 유골함 시점에서 서래를 바라보는데 서래 역시 유골함을 바라보고 있다. 이 쇼트는 그녀가 이미 이때 죽음(헤어짐)을 결심한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서래는 자신의 휴대폰에 녹음된 해준의 고백을 반복해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바로 잡을 생각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준을 보고 싶어 한다. 그녀는 자기 삶을 가장 취약한 곳에 던져버리고 해준을 기다리지만, 해준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새로운 남편 임호신과 해준이 있을지도 모르는 이포로 향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 분투한다. 이번에는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지 않는다. 해준이 와서 또다시 자신을 바쳐 구해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녀는 목격자 없는 살인을 감행, 스스로를 바다에 묻는다. 마지막 목격자인 산과 바다, 그리고 태양이 헤매는 해준을 바라보며 영화는 끝이 난다.


헤어질 결심은 취약함과 사랑에 대한 영화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취약한 상태일 때 가장 사랑을 잘 느끼고, 때론 취약한 상태에 빠진 사람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 감정이 진정으로 '사랑'인가 하고 그때마다 세밀하게 따져보는 사람은 잘 없다.


영화 속 해준과 서래처럼, 파도가 빠졌다 밀리는 거 마냥 사랑도 함께 빠졌다 밀려난다. 사랑이 먼저인지 취약함이 먼저인지 역시 헷갈린다. 사랑해서 취약함을 보여주고 마는 것인지, 취약해져서 사랑을 하고 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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