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만드는 에세이
유사 이래 '자녀 세대의 분노와 그것을 걱정하는 기성세대' 이 세트메뉴가 없었던 적은 없다. 자녀세대는 늘 분노했고 기성세대는 늘 걱정했다. 민주화의 격동을 보낸 시절의 청년들은 독재자에게 분노했었고 그들이 어른이 되어서 현재 자녀세대의 분노를 걱정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전형적이어서 문학적으로도 자주 나타난다. 그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도 자녀세대의 무분별한 분노와 무력감, 공허와 상실에 대해 표현한 것을 잘 느낄 수 있다. 햄릿과 버닝 둘 다 분노의 대상과 동기가 불분명하고 미스터리하다. 그리고 해당 주인공들의 부모는 전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부재한다. 그럼에도 두 작품에서 확실히 나타나는 것은 그 분노가 부모세대로 부터 전이된 것 혹은 물려받은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당연한 얘기다. 자녀들은 부모세대로부터 모든 것을 물려받는다. 그들이 쓰고 수정한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며 이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도 아니며 사라질 것도 아니다. 그러니 분노에 가득 찬 자녀들이 있다는 것은 분노에 가득 찬 부모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지만 기성세대가 다음 세대를 해석할 때 종종 까먹고 마는 것들이다.
햄릿과 종수, 둘 다 기존 시스템에 무력감을 느끼거나 혹은 분노한다. 나 역시 분노한다. 나는 스스로 언제 가장 화가 많이 날까? 하고 질문해 봤다. 나는 개인의 부도덕하고 파괴적인 행위에는 그다지 분노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멍청하고 욕 나오는 시스템에 대해서는 화를 많이 내는 편이다. 체계에 대한 반발이다. 나의 개인적 특성이기도 하지만 현세대가 가장 분노를 많이 느끼는 것은 불공정하며 상벌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일 것이다. 살인자, 강간범, 방화범, 사기꾼은 언제나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서 그것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시스템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든다. 그리고 반대쪽엔 제대로 된 상도 마련되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이제 노력을 등한시하고 한탕주의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비교적 덜 사랑하고 더 많이 얻으려고 한다. 정서적 가치는 점점 희미해지고 다른 것들로만 채우려고 한다. 그 저변에는 공허와 무력감이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햄릿과 종수 두 인물은 끊임없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지연시키는데 햄릿은 자신의 복수(삼촌을 향한)를 종수는 자신의 꿈(작가가 되는 것)을 미루고 미루다 모든 것들이 벌어지고 나서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게 된다.
우리는 근대식 교육을 받으면서 동시에 현대의 이념을 교육받은 세대다. 즉, 근대의 체계를 몸과 지식으로 배우면서 동시에 그것을 부술 망치를 부여받은 셈이다. 개인차가 심하지만 여기서 오는 괴리는 놀랍도록 신비하다. 현재의 자녀들은 놀랍도록 보수적이면서 동시에 진보적이다. 이 세대가 대체 보수와 진보를 구별하기는 하는 건지 싶을 정도로 많은 것들이 뒤섞여있다.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지 몰라서 아무것도 선택을 하지 않거나 혹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선택하고 있다. 그러니 기존 체계에 대한 반발은 물론이고 서로에 대한 반발 역시 빈번히 일어난다. 기성세대들은 이 모습 역시 분노로 가득 찬 모습으로 본다. 망치를 들고 뛰어다니며 서로의 이념을 파괴하는 데 매몰된 이들이 눈에 띄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어느 세대에나 그랬고 민주화 세대 역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전과 확실히 다른 것은 이 세대에는 길잡이가 없다는 것이다. 언제는 길잡이라는 게 있었겠냐만은 늘 항상 대적해야 할 명확한 상대가 있었다. 햄릿과 종수의 차이가 이 점에서 갈리는 것처럼 말이다. 햄릿은 자신이 대적해야 할 삼촌이라는 대상이 있었다. 그러나 종수에게는 대적해야 할 대상이 없다. 미스터리하고 알 수 없으며 불가해한 세계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냥 허기는 지고 돈은 벌어야 되고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하게 된 세대가 되었다.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명분이 있는 싸움 따위는 없어 보인다. 그래서인지 이 세대는 명분이 있어 보이는 것에 열광한다. 그래서 대상과 동기가 명확하지 않은 분노는 때론 엉뚱하고 이상한 장소에서 발현된다.
분노의 자녀들은 부모들을 걱정시킨다. 하지만 분노라도 있다면 차라리 나은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단순히 배고픈 상태이다. 허기는 무엇이든 집어삼킨다. 분노마저도. 어떤 이념과 철학, 다정함과 믿음이 있다 하더라도 배고픔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게 될뿐더러 파괴된다. 어쩌면 우리의 자녀세대는 분노를 물려받지 않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우리의 허기에 모든 것이 잿더미처럼 불 타 사라졌을 수도 있을 테니까. 우리는 분노한 자녀들이 아니라. 폐허의 자녀들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