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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Nov 26. 2023

동거하면 불편해요. 아주 많이.

동거 커플의 일상적인 나날

코로나 유행 이후 '동거 가족'이라는 용어가 심심찮게 사용됐다. 실제로 동거는 행정적으로 꽤나 빈번하게 사용된다. '동거'는 어느 맥락에서 사용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상적인 용어임에도 특별한 뉘앙스를 풍긴다. 생각해 보면 그의 사촌들이 모두 연애와 결혼과 관련된 것들이니  특별한 지위를 갖는 것도 어색하지 않은 것 같다.


동거는 결혼과 연애만큼이나 매력적인 소재다. 드라마에서는 남녀 주인공이 의도치 않은 동거를 하게 되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연출된다. 로맨스를 쓰는 작가에게 동거라는 소재는 관계가 없는 두 사람을 강제로 한 장소에 묶어 둘 수 있기에 매력적인 소재다. 최근 제작되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의 기본 전제가 합숙인 것 또한 우연이 아닐 테다. 생활의 장소가 하나로 묶인 남녀는 특별한 무언가를 가진다.


주거 환경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꽤나 불편한 일이다. 동거를 시작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의례적으로 걱정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다 큰 성인의 입장에서 부모와의 동거도 불편하지만, 사랑하는 연인과의 동거는 더욱 많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이 불편을 감수하지 못하는 연인들이 동거에서 탈락한다. "치약 짜는 방식이 맞지 않아"와 같은 사소한 것을 두고 싸우는 커플이 클리셰처럼 등장하는 것처럼 동거는 애초에 맞지 않는 퍼즐을 끼워 넣고자 하는 어색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이 어색함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사랑의 불씨는 금세 다른 방식으로 꺼지고 만다.


우리 커플 역시 마찬가지의 과정을 겪고 있다. 다행히 두 사람 모두 큰 불편함 없이 어색한 퍼즐을 맞추는 과정을 겪고 있는데 두 사람 모두 우리 연애에서 가장 의아한 맥락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니까 "어떻게 우린 이렇게 잘 맞지?"와 같은 질문을 하는 어느 순진한 커플의 질문을 우리 스스로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느 날 진지하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고자 했다. 답은 질문만큼이나 싱겁다. 그냥 우리 두 사람이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성격이 가지는 공통점이 있을 수도 있다. 우리 둘은 언제나 사회생활에서 불편함을 감수하는 처지의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딱히 불만을 가지지 않는 성격이다. (나의 경우는 가끔 참지 못하지만, 그녀는 끝내 한마디 말 못 하는 성격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유난스럽게 생각하는 지점이 비슷하다. "화장실과 주방은 청결해야 돼 그렇지만 옷은 아무 데나 걸어 놔도 괜찮아" 같은 사고방식을 공유한다. 집 안을 깔끔하게 유지하고자 노력하지만, 둘 다 그것에 적당히 유난 떠는 성격이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면 매우 이상적인 동거 라이프로 들리지만, 꼭 그렇지 않다. 두 사람의 이런 성격이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가 더러 있다. 불편함을 감수하는 성격에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할 때가 있다. 이럴 때면 내가 대화를 주도해서 문제를 해결하곤 한다.


그리고 어느 날에는 유난스럽게 보이지 않던 것이 유난스럽게 보일 때가 있다. (이런 성격적 변덕은 내가 심하다.) 그러면 날 선 말을 할 때가 있다. 자연스레 숨겨져 있던 진심이 툭 튀어나올 때다. 매일이 쌓이면서 이런 일을 유연하게 대처하는 우리의 방법도 늘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서툴다.


우연히 성격과 습관이 잘 맞는다고 해서 자연스레 동거 생활이 윤택해지지 않는다. 우리 커플의 마지막으로 가장 잘 맞는 점은 부지런하다는 것일 테다. 미라클 모닝이나 일을 제때 하는 부지런함이 아니라, 상대를 배려하는 부지런함이다. 내가 먹은 것은 일찍 치우고 빨래가 가득 차면 먼저 본 사람이 치운다.


네가 할 일, 내가 할 일을 정하지 않고 상대가 이걸 보기 전에 해치운다는 마음이다. 피로 때문에 해내지 못하더라도 상대를 책망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 그럴 때가 있으므로 이해한다.


동거하면 불편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이 불편함을 사랑에 맡겨 버리면 사랑은 자신이 맡아야 할 의무 말고도 너무 많은 것들을 떠안게 된다. 사랑이 빠르게 탈진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몸과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상대를 위해 조금 부지런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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