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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Nov 28. 2023

동거 남친의 변명

동거 커플의 일상적인 나날

"내 장점이 뭐야?"

동공 지진이 오는 질문이다. 그녀(H)는 요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에 있다. 만 26세에 할 수 있는 고민이라며 코웃음 치는 내게 표정을 찡그렸다. 진지하게 다시 장점을 묻는 그녀에게 나는 억지스러운 대답을 내놓았다.


"일단 밥을 잘 먹고..."

누가 들어도 오답이다. 나의 순발력은 딱 이 정도 수준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도 축구공에 치이기 일쑤였다.

"남들한테 쓴소리를 잘 못해"

그건 장점이 아니라 단점이라는 그녀의 말에 나는 장점이라고 억지로 우겼다. 사회에서 늘 희생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잖아. 당신 덕에 이 사회가 돌아가는 걸. 역시나 오답이다. 장점이 뭘까? 내가 그녀의 장점을 진심으로 모르고 함께 살고 있는 걸까?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그녀의 질문에 오류가 있음을 알게 됐다.


"지금 네가 하는 질문은 사회적인 장점을 물어보는 거니까. 나는 대답할 수 없는 거야. 왜냐면 나는 너를 사회적 효용가치와 같은 그런 계산적인 것으로 치환하지 않으니까. 너는 그냥 너 존재 자체가 장점이야."


드디어 그럴싸한 대답이 나왔지만, 그녀는 불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진심으로 원하는 대답은 그게 아니었고 이미 내가 앞에서 싸놓은 똥에 뒤에 나오는 대답들은 모두 변명에 불과했으니까. 처음부터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반대로 내가 물었다. 그럼 나는? 그녀의 눈이 흔들리는 걸 봤다. 역시 쉽지 않은 질문이었다.

"대답하기 쉽지 않네"라고 말하는 그녀 덕에 나도 한숨 돌렸다. 피차일반이었다.


자신의 장점에 대해 무지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장점에 대해 무지한 경우가 많다. 살다 보면 눈에 띄는 것은 서툰 모습이다. 타인과 자신의 서툰 모습에 우리는 허락의 여지를 남겨 두지 않는다. 이혼의 과정을 겪는 부부의 이야기를 서정적으로 그린 영화 '결혼 이야기'는 사이좋았던 부부가 서로의 단점을 지적하고 저주를 퍼붓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모두가 보편적으로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면서도 단점만 지독하게 뜯어보곤 한다. 그 사람의 장점은 종이에 써서 특별히 서술하고자 할 때나 드러난다. 사랑이 장점을 가렸기 때문일까? 다분히 그럴 가능성이 크다. 사랑은 연인을 사회적인 효용 가치,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책무를 가려내지 않기 때문이다.


......


이 글을 모두 읽은 그녀는 나에게 헛소리 집어치우고 장점을 말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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