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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Dec 03. 2023

우리 사랑은 전망이 좋다

동거 커플의 일상적인 나날

지지부진한 삶의 어느 중턱에 걸쳐있다. 나도 그녀(H)도 그렇다. 


우리 커플의 세계는 좁은 원룸의 평수만큼 좁아져있다. 비교를 거듭하면 평범하고 준수한 삶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나와 그녀의 마음속 세계에 비하면 이곳은 답답한 장소다. 그렇다고 해서 큰 불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희망하는 것은 당연히도 더 나은 삶, 더 나은 장소, 더 나은 전망이다. 모두의 소망이기도 할 것이다.


삶이 더 나아질 것이란 단순한 희망에 근거가 꺼지기 시작할 때가 있다. 애써 마음을 다잡고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로 먼 미래를 바라보지만, 살아온 모든 순간과 살아갈 시간들이 비 오는 날의 그늘진 긴 복도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현실적으로 우리 커플이 동거에서 결혼으로 나아가기 위한 단계에는 돈이 필요하다. 낭만적이게 사랑으로 이 모든 것을 애써 무시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가족에게 조금은 떳떳하고자 하는 자존심이 이를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 낭만적인 도피, 손을 부여잡고 드레스를 입은 그녀와 버스에 올라타고 싶다.

영화 졸업(1967)의 엔딩에서 두 주인공은 도피 끝에 버스에 올라탄다. 행복한 표정을 짓던 그들은 따가운 시선을 받는 것을 느끼게 되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변한다. 영화에서 버스 내부의 탑승객들이 시선이 다분히 따갑게 표현됐지만, 다른 시선으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로 그들은 드레스를 입은 여성과 남성의 모습이고 꽤 관심을 끈다. 젊은 남녀가 로맨틱한 사랑의 도피를 하는 이야기는 실제로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끈다. 도피가 아니어도 젊은 남녀의 결혼은 화젯거리다. 축복하는 이들의 환호를 받는 것과 다소 냉소적인 이들의 시선을 받는 것은 다르지만, 결혼은 언제나 한 마을이나 가문의 축제다.


사랑의 종착역이라고 보는 결혼은 언제나 사람들의 시선을 가득 사로잡는 역할을 했다. 결혼은 언제나 축복과 애정을 받았다. (사실 정말로 모든 순간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현재도 조혼, 매매혼 등의 문제가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결혼이 가지는 위치는 그랬다. 비관적인 시선이 아닌 긍정적인 것들이 뒤따른다. 


어쩌면 결혼에 대해 심히 어려운 시선을 갖는 것은 우리 커플의 지독한 고집일지도 모르겠다. 낭만적인 도피라고 보는가. 사랑의 확신이라고 보는가. 정말로 준비되지 않은 커플인가. 우리의 의지와 다르게 현실이 옳지 못한 것일까. 결혼이라는 선상에 오른 우리 커플은 흔들리는 배에 멀미하고 있다. 타이타닉호만큼 커다란 크루즈 선이 아니어서 그런 걸까? 


이 모든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서로에 대한 애정과 믿음에 감사하다. 우리 커플은 어찌 됐든 전망이 좋다. 손을 잡고 있으므로, 얼굴을 맞대고 사랑의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나침반을 보며 항해를 결정하고 있으므로. 이때 우리의 좁은 세계는 무한히 확장된다.


서로가 서로의 선장과 조타수가 되어 두려운 바다 위에 의지하고 있다. 

사랑이 만들어내는 인내심에 우리 커플은 늘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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