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부부는, 아이 낳기가 망설여진다
이 글은 자살, 우울과 같은 민감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관련 내용에 불편함이나 심리적 부담을 느낄 수 있으니, 독자께서는 자신의 상태를 충분히 고려한 뒤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도움이 필요하신 경우, 주변의 전문가나 상담 기관에 연락하시길 권장드립니다.
우리 부부는 결혼 전에는 '딩크'로 살 작정이었는데, 결혼 후 생각이 바뀌었다. 아이를 갖는 것은 이 결혼 생활이 맺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차원의 결실이며, 인생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아이를 낳을 거냐고? 글쎄, 솔직히 이곳에서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전통적인 결혼관과 출산, 임신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전통적인 결혼은 남녀의 역할을 고정시키고, 출산과 임신은 여성에게 여러 측면에서 부당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가족은 우리 두 사람이 중심을 이루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전통적인 가족 형태인 부모-자식 관계가 반드시 가족의 필수 조건이라고 보진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결혼은 예상보다 빠르게 우리의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고, 우리는 더 보수적인 관점에서 가족의 가치를 이해하고 깨닫게 됐다.
우리의 소중한 반려견 베베가 가족으로 들어온 뒤에는 생명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생명은 고귀하고, 이렇게 예쁠 수 있구나. 교감하는 존재가 우리를 바라봐주는 것은 얼마나 뜻깊은가.’ 하고 감탄했다.
아이를 낳는다면 더 멋진 일이 펼쳐지지 않을까? 희망 어린 낙관이 우리 사이에서 피어났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사회의 부정적인 단면을 마주하고 좌절감을 느껴, 임신과 출산을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왜 사회 탓, 국가 탓을 하냐고? 이야기를 들어보라.
최근 화제가 되는 “청년들은 왜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단순히 파격적인 출산 정책이나 보조금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이미 복합적인 병을 앓고 있으며, 모두가 그 현실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하나의 예시가 자살률이다. 최근 유튜버 ‘슈카월드’가 다룬 대한민국 자살 통계와 그에 대한 인식을 다룬 영상을 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사회적 병리에 무관심한지를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은 자살률 27.3명으로 OECD 1위를 여전히 지키고 있고, 자살 사망자 수가 2023년 기준 직전 해보다 8.3% 증가했다고 한다.
사실 이 같은 통계는 현실의 ‘우리’와는 크게 동떨어진 일처럼 느껴진다. 왜냐면, 나는 매일 아내와 평온한 삶을 누리며, 수도권 외곽 아파트 숲에서 강아지를 키우고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다툼은 없고, 앞으로 더 나아질 것만 기대하고 있다. 여기서 “아이를 가진다면?”이라는 행복한 상상을 하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끔찍한 통계와 현실, 충분히 외면 가능하다. 우리 가족들은 언제까지나 우리를 지원해 줄 거고 우리는 그걸 믿는다.
그런데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정말 외면이 가능할까?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와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우리가 어떤 사회에 속해 있든, 그 영향은 피할 수 없다. 내 아이가 태어난다면, 평생 속한 사회·문화·인종·계층 등 다양한 배경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불안과 절망감이 팽배하여 하루 평균 42명(2024년 1월 통계)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회에서 아이가 받을 영향은 과연 무엇일지 가늠하기 어렵다. 나와 아내는 분명 최선을 다해 아이를 보살필 것이지만, 우리가 속한 사회가 이미 병들어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대체 이를 어떻게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겠는가?
어린 시절 나는 예민한 감각을 지닌 아이였다. 약 20년 전, 정서가 한창 발달하던 14살 무렵, 이미 대한민국의 높은 자살률에 개탄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였고 자살에 대해 많은 정보를 찾아볼 만큼 민감하고 위태로웠다.
시간이 흘러 나는 이제 수많은 아픔을 겪고 일부는 해소했으며, 일부는 가슴 깊이 묻어두었다. 그리고 어쨌든 나와 사회는 전반적으로 더 나아지고 있다고 믿게 됐다.
그러나 양육을 준비하기 위해 모으기 시작하는 정보들은, 오히려 “아이를 낳지 말라”라고 경고한다. 사회의 여러 면을 들여다본 내 결론 또한 그 경고에 가깝다. 내 이성은 분명 그렇게 말한다.
물론, 그런 사회적 비극이 우리 부부의 출산과 아무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앞서 말했듯, 만약 아이를 갖게 된다면 우리는 책임감으로 아이의 행복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테니까. 하지만 여전히 의심은 남는다. 그 아이도 결국 이 병든 사회의 영향을 받을 텐데, 그로 인한 상처는 정말 없을 수 있을까?
걱정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우리 부부는 차라리 아무것도 모른 채 결혼과 동시에 아이를 가졌다면 이런 고민 자체가 없었고, 더 젊고 체력이 좋을 때 육아를 시작하는 이점을 누렸을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가끔은 “아이를 낳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속한 사회의 미래가 사실 뻔히 그려지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빨간약을 먹은 것이나 다름없다. 알고 있다. 사회는 여전히 선한 의지를 가진 이들에 의해 돌아가고 있지만,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한 통계를 보고도 이 사회가 병들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그냥 딩크로 살자”라고 확정 짓지는 못했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가족의 소중함과 행복감을 뼈저리게 느끼고 정말 행복하다.
그럼에도 비관적인 생각이 커져만 가는 결정적인 이유는, 우리 사회의 누구도 이런 문제에 선뜻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나 역시 그 무책임한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닐까 두렵기도 하다. 태어날지 모를 아이가 안전한 세상에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책임질 수 있는 인간인지 나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