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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Aug 17. 2022

영화 헤어질 결심 리뷰, 해석

이 리뷰는 개인적 소감에 불과하며 언제든지 수정되거나 파기될 수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출처 다음영화

헤어질 결심에는 수많은 해석본이 따른다. 마치 사제들이 경전에 주석을 달듯 수많은 리뷰어들과 평론가들이 이 영화에 숨겨진 가치에 대해 역설하고 토론한다. 대중들은 그것을 받아들이며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재생산한다. 누구나 다 알고 이해하는 이 영화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느냐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말아보자. 나는 사실 그에 대해 토로할 역량이 부족하기도 하거니와 다시는 없을 로맨스, 서래와 해준의 이야기에 완전히 붕괴되었으므로.


*서래

출처 다음영화

산에는 봉우리가 있지만 바다에는 봉우리가 없다. 등산객과 클라이머에게는 정상이라는 목표가 있다. 그러나 바다 위의 서퍼들에게 바다는 파도를 타는 것 그뿐이다. 대체로는 낮은 파도 때로는 높은 파도가 서퍼에게 달려들면 파도에 넘어지지 않으려는 것 그뿐이다. 서래는 바다 사람이다. 그녀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감내한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넘어와 처음으로 자기 얘길 들어준 기도수의 아내가 된다. 그녀는 자기 삶의 불행을 모두 감내하기로 한다. 마치 그녀가 어머니와 외조부의 유골을 계속 들고 다니는 것처럼. 해준이 그녀를 떠났을 때 그녀는 해준과 헤어짐을 받아들이기 위해 임호신과 결혼한다. 그녀의 삶과 사랑에 대한 태도는 수동적 자세 바로 감내였다. 그렇담 사랑에는 목표라는 것이 있을까? 사랑에도 목표가 있다. 나는 그것이 헤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하겠다. 우리는 사랑을 하면 으레 그것이 영원하길 바란다. 매 순간 대상을 보고 듣고 만지고 소유하려고 든다. 그리고 그것들이 영원하길 바란다. 정안이 해준과의 16년 8개월을 정확히 기억하는 것처럼 사랑에는 대상을 자신의 시간선 안에서 소유하려는 그런 뚜렷한 목표가 있다. 서래는 해준이 떠나고 난 뒤 그의 사랑 고백을 몇 번이고 반복해 들으면서 자신의 감내하는 태도를 고쳐 든다. 무너지고 깨어진 해준을 다시 찾아가 무너진 자신과 해준의 처지를 다시 곧게 세우려고 든다. 하지만 그녀가 자기 삶에서 감내하려고 했던 몇 가지 행동들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두 사람 사이를 마치 서로 반대로 들이치는 파도처럼 밀어내게 만든다.


*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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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가장 미스터리는 다른 무엇도 아닌 어째서 해준과 같이 정직하고 충직한 성품을 지닌 인간이 아내를 배신하는 행동인 외도를 저지르는가?이다. 아주 단순하게 보면 이 영화의 설정은 감독의 전작 박쥐와 비슷한데 직업적으로 정직하거나 혹은 그런 태도를 가지고 있는 남성이 우연한 계기로 만난 여성에 의해 자기 삶의 규율을 깨고 부정한 길로 들어서게 되는데... 와 같은 플롯을 가지고 있다. 박쥐에서는 상현(송강호 분)이 태주(김옥빈 분)에 사랑에 빠지는 계기는 아주 단순하다. 피의 갈증을 느끼던 차에 마침 생리 중이던 태주를 만나 성적 끌림이 폭발했다.로 설명할 수 있다. 그에 반해 헤어질 결심에서 해준이 서래에게 끌린 이유는 마뜩잖아 보인다.

 그가 서래를 사랑하게 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자. 헤어질 결심에는 에로스가 없다. 정안과 해준의 사이에는 성적접촉이 있지만 해준과 서래의 사이에는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감독이 이번 영화에서는 의도적으로 에로스를 삭제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감독의 작품에서 성적 충동과 행위는 꽤 중요한 장치이다. 그러나 헤어질 결심의 두 인물 해준과 서래, 두 인물의 사이에 성적 끌림은 분명 존재하겠지만 그 표면 위를 지나치지 않는다. 둘은 항상 긴장된 순간에 돌아선다. 기도수가 서래를 소유하기 위해 자신의 이니셜을 새긴 것처럼 육체는 쉽게 소유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해준과 서래의 사이에는 그 어떤 소유의 욕구가 없다. 둘은 서로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한다. 둘 사이의 사랑은 종교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단일한 단서이자 사실은 해준의 입에서 나온 대사이다. 둘은 공통점이 많다. 남편의 죽음을 말씀으로 전해드릴까요? 아니면 사진으로 보여드릴까요?라는 질문에서 사진이라고 답하는 서래에게 동족임을 느꼈다고 말한다. 해준에게 서래는 안식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다. 그녀를 지켜보다 깊게 잠에 들고 그녀의 호흡에 맞추면 쉽게 잠이 들어 버린다. 아내 정안과는 달리 서래는 무엇도 보채지 않는다. 그녀를 관찰하면서 느낀 동질감과 함께 하면서 느낀 편안함은 긴장되어 있던 해준의 삶에 안식을 제공한 것 같다. 그녀가 소나무 같이 꼿꼿해서 좋다는 표현도 해준 자신이 추구하는 삶이 바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에 빠지면 대상을 더욱 자세히 보려고 하고 더욱 자세히 들으려고 하며 때론 기록까지도 한다. 이것은 해준이 사건을 대하는 방식과 같다. 그는 강제적인 취조보다는 대상의 말을 들으려고 유도하고 현장을 더욱 똑바로 보려고 노력하고 자세히 기록하고 보관한다. 해준은 보고 듣는 것에 매우 민감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아내 정안은 그렇게 섬세한 인물은 아닌 듯하다. 해준은 항상 일방적으로 배려하는 인물이다. 그의 삶과 사랑에 대한 태도는 최연소 경감 타이틀과 정안과의 표면적으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정신적으로 문제를 겪고 있고 풀리지 않는 미결 사건들만 잔뜩 끌어안고 있었다.

 해준은 서래를 똑바로 보지 못했다. 그가 사랑에 빠져서 였을까? 아니면 자신과 비슷한 인물이 그럴 리가 없다는 믿음이었을까? 돌봄 센터에 찾아가 직원과의 대화에서 그는 이미 사건의 실마리를 얻었었다. 의사표현이 어려운 노인들을 돌보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서래가 거짓으로 근태를 속일  있단 사실 말이다. 하지만 그는 여러 가지 증거들을 수집하면서 계속해서 서래가 진범이 아닌 것으로 특정하는데 서래가 자신을 속인 것에 대해 그는 '붕괴'됐다.라는 표현을 쓰며 자신을 무너트린다. 태산 같은 바위를 깨는 것은 다름 아닌  방울의 물이었다.


*호미산

출처 다음영화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서래는 처음으로 자신이 살기 위해 산을 올랐다. 그러나 호미산에서 서래는 헤어질 결심을 위해 산에 올랐다. 지금껏 자신을 억누르던 짐들을 내려놓고 자신으로 인해 무너진 해준에게 이전으로 돌아가길 요구한다. 이번에는 타인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서래는 해준의 붕괴가 심히 무겁고 중요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해준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함과 동시에 헤어짐을 고한다. 둘의 말은 계속해서 미끄러진다. 닮은 듯 다른 두 언어. 첫 만남부터 해준은 그녀를 배려하여 말을 풀어서 설명한다. 마치 사랑 고백처럼 말이다. 사랑에 빠진 초보 연인들은 그토록 언어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는가? 분명 같은 언어를 사용함에도 둘의 말은 계속해서 미끄러진다. 해준과 서래의 이야기가 첫사랑 혹은 어린 시절의 풋사랑을 떠오르게 만드는 것은 둘 사이에 아주 작고 사소한 단어들이 미끌리기 때문이다. 호미산에서의 두 사람의 대화 역시 계속해서 미끌린다. 심지어 해준은 서래가 벼랑 위의 자신을 밀쳐 죽일 거라 생각하고 눈을 감는다. 둘의 처음이자 마지막 입맞춤은 둘 사이의 언어적 경계를 무너트리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후 엔딩 시퀀스까지 두 사람의 언어는 계속해서 미끌린다.


 *숨바꼭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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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엔딩 시퀀스에서 결정적으로 두 인물의 언어는 다시 한번 미끌어진다. 이 영화에서 휴대폰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래가 진범인 증거이자 해준의 사랑 고백을 담고 있으며 서래의 위치를 추적하기도 하는데 두 인물의 사랑 고백과 증거인멸의 행위를 모두 목격하고 저장한 목격자가 되는 휴대폰을 해준은 바다에 버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서래는 해준을 붕괴 이전으로 돌리기 위해 이 모든 사건의 주체이자 목격자인 자신을 바다 깊은 곳에 묻기로 결심한다. 해준은 끊임없이 파도가 밀려와 바위에 부딪히는 해변에서 진짜 찾아야 할 서래는 찾지 못하고 자신이 서래에게 했던 말들만 머릿속으로 반복되게 된다. 나는 해준을 보며 무언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지만 그 무엇이 정확히는 알지 못하는 이야기 속의 어린 소년이 자꾸만 생각났다. 그는 다시 무너진다. 마치 세찬 파도로 인해 모래가 된 바위들처럼. 그래서 서래는 파도가 치는 해변의 모래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나보다. 그의 미결 사건이 되기 위해. 이 영화의 엔딩 시퀀스는 박쥐의 엔딩 시퀀스만큼이나 깊게 여운을 남긴다. 차이가 있다면 헤어질 결심의 엔딩 시퀀스는 '미결'이라는 단어처럼 마치 영원히 존재할 것만 같은 가능성을 지닌다. 마치 파도가 영원히 육지를 그리워하며 내달려 부딪히고 부서지고 무너지는 것처럼 말이다.


한줄평: 두 사람은 서로에게 산이자 바다가 되었고 그렇게 세계가 되었다는 신화 같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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