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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나의 중력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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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이승훈 Oct 30. 2022

동거 커플 브이로그

에세이

동거는 여전히 자극적인 소재다. 자식을 가진 부모님들에게도 이제 막 연인이 된 커플들에게도 그리고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동거'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사람들은 만약을 상정한 대화들을 하며 동거라는 판타지에 더 환상의 기름을 붓는다. 그리고 현재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플랫폼인 유튜브에는 '커플 브이로그'를 검색하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동거 커플들의 일상이 상위에 랭크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나와 내 연인도 그 틈바구니에 끼어있다. 현재 우린 고작 70명의 구독자들과 평균 300 정도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지만 하나 둘 영상을 올리며 본격 유튜브 경쟁에 돌입했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우리의 동거가 유튜브를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이벤트로 보일 수 있겠다. 물론 그 순서는 반대다. 세상천지에 누가 유튜브 하겠다고 억지로 동거까지 하겠는가. 동거라는 이벤트가 먼저 우리 삶으로 비집고 들어왔고 우리가 그것을 세상에 공표하기로 한 셈이다. 세상이라고 해봤자 아주 좁은 유튜브 세상이겠지만.

그럼에도 왜 하필 동거 커플 브이로그일까? 자극적인 주제에 편승하겠다는 심리와 누군가 우리를 봐줬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우리의 일상을 기록하고픈 욕심까지 그것들이 모두 합치면 우리 영상의 동기가 된다. 물론 어쩌다 잘돼서 돈 벌면 좋고. 그러나 세상 일 절대 우리 맘대로 되지 않으니까. 유튜브는 우리의 일상 기록용 테이프가 돼버리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실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우리의 사랑스러운 시절 그대로가 영상에 그대로 남아 있으니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는 모든 연인의 염원 그것과 다를 것이 없다. 테잎은 영원히 남아서 그대로 재생될 테니까. 마치 영원할 것만 같은 인터넷 세계에 영원히 남을 낙서를 남기는 것. 스톤헨지에 지워지지 않을 사랑의 낙서를 남기는 것. 그게 우리 커플의 가장 큰 동기가 아닐까?

.......

대부분에 의견이 통일되는 우리지만 우리의 동거생활에 입을 모아 동의하는 점은 바로 서로가 아니었다면 동거를 시작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 거란 점이다. 사랑에 빠진 커플이 입 발린 소리를 하는 게 아니다. 서로를 사랑함에도 동의하기 어려운 것들은 충분히 많고 우리는 그런 대화에 스스럼이 없다. 우리는 당신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진심이 아닌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동거에는 여러 가지 충분조건이 있을 것이다. 개인의 삶과 가치관에 따라 그 충분조건이 매우 상이하겠지만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충분조건들을 한번 나열해보기로 했다. 첫째 서로를 사랑할 것, 둘째 서로에게 미루지 말 것, 셋째 어느 순간에라도 항상 대화할 것. 그리고 …… 나열을 해놓고 보면 이것은 결혼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우리 개인의 가치관과 다르게 사회 전반이 공유하고 있는 동거에 대한 인식은 조금 부정적인 듯하다. 우리가 동거를 시작하기 전 어느 날 우리는 그에 대해 술을 마시며 진지하게 논의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결론은 이랬다. '사람들은 동거를 결혼의 이복동생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결혼이 갖는 법적인 영향력과 해석이 동거를 홍길동 정도의 위치로 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니까 동거는 결혼보다 책임이 덜한 행위이다. 사랑하는 연인 간 낭만적인 선택은 맞을지언정 성숙한 어른의 선택은 아니다. 주변인들의 부정적인 이야기의 뼈대도 사실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사람 일 모른다.'

그렇다. 사람 일이란 모른다. 어느 날 우리는 관계를 파국으로 이끄는 아주 작은 불씨를 가져와 지옥불로 만들어 비극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그렇담 결혼은 무엇이 다른가. 결혼도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지 않은가? 결혼을 아직 겪어보지 못한 우리에게 이것은 아직 이해불능의 영역이다. 그 이해불능의 영역에 닿았을 때 우리는 깨닫지 못한 무언가를 깨닫고 두 개의 차이를 나열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결알못 동거 커플에 불과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무식하고 용기 있게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표현의 책임은 과연 무엇일까? 무슨 일이든 책임이 돌아온다는 그런 옛말에 따른다면 우린 분명히 우리가 하는 일에 책임이 돌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그 책임은 무엇일까? 바라던 바와 그 뜻이 다르더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꾸준히 도전할 것이다. 사람 일 모르니까. 사람 일 모른다는 그 말이 지금 우리에겐 긍정적으로 보이니까. 우리의 유튜브, 우리의 테잎, 우리의 낙서는 앞으로도 여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