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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Oct 27. 2022

이 사람이 날 좋아하게 될 줄 알았어요

에세이

사랑만큼이나 삶에서 유별나고 특별한 게 있을까? 좀처럼 비켜서려야 비켜설 수 없고 맞서 싸우려면 또 맞서 싸울 수도 없는 것. 나에게 맞는 짝을 찾는 게 유전자에 깊숙이 담긴 지상명령이라 하더라도 그런 낭만적이지 않은 말로 사랑을 포장하지 않는 게 사랑의 미덕이다. 하지만 당신의 외모에 반하지 않았다는 말은 어째서인지 서운하다. 사랑은 그러하다. 작은 규모로 벌어지는 마음속의 고지전. 육체와 정신이 주고받는 즉흥연주. 그렇게 우리는 첫 만남에 재즈바를 갔다. 내가 첫 만남을 재즈바로 선호한다는 것은 당연 비밀로 했다. 그날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 밴드의 연주는 훌륭했고 우리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그날 밤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던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8마디 솔로를 16마디로, 32마디로 심지어 64마디 까지 늘려 버리면 우리는 금세 지치고 말 것이니까 다음을 기약했다. 조금 지칠만한 밀고 당기기를 거의 세 달에 거친 결과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나는 후쿠이 료의 앨범을 그녀는 히사이시 조의 앨범을 들으며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같은 피아노라 하더라도 세부 장르에서 두 사람의 취향이 갈리는 것처럼 우리는 비슷한 듯 다른 것들을 수두룩하게 가지고 있다. 따지고 들자면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이 으레 그렇게 시작되듯 우리는 우리의 공통점에 빠져들었었다. 공통점은 사랑을 눈먼 장님으로 만든다. 그녀와 내가 비슷한 사람이라 착각하게 만들고 그녀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겠거니. 하고 짐작하게 만든다. 같은 음표를 보더라도 어떻게 꾸밈음을 넣느냐, 이미 들어버린 습관이 어떻냐에 따라 연주는 확연히 달라진다. 악보를 펴고 서로 주석을 붙이지 않으면 안 된다. 처음 만난 두 사람, 이 연인에게 '사랑'이란 단어는 오래된 클래식 클리셰지만 제목만 그럴 뿐 완전히 새로운 악보를 쓰고 봐야만 한다. 그러니 우리의 사랑은 좀처럼 질릴 수도 없고 매번 새롭다. 마디가 끝나갈 때쯤이면 새로운 레퍼런스를 찾아보고 프레이즈를 만든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우리를 향한 것만 같고 우리는 악보를 수정한다. 사랑이 이만큼이나 우리를 특별하게 만든다.


 '아메리카노 드릴까요?'

웬만큼 피곤하지 않으면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그녀가 내게 첫 만남에 말했다. 그녀는 어느 스타벅스 매장의 중간관리자였고 나는 면접을 보러 간 지원자였다. 나는 한사코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겠다고 거절했다. 만약 사랑에 무조건적인 달콤함만 있다면 나는 그때처럼 매번 아메리카노를 거절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와 나는 당연히 이후의 데이트들에서 커피를 자주 마셨고 덕분에 우리가 충혈된 눈으로 잠을 못 잔 날은 숱하게 많았다. 사랑은 그렇게 고되다. 사랑이 고된 만큼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하는 날은 많아지기 마련이다. 그런 일을 방지하려면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 나와 당신의 사이에 루틴이 만들어지고 예상하기 힘들었던 날보다 예상 가능한 미래들이 충분히 더 많아진다. 그래도 우리 사이에 모순적 관성의 사랑은 없었다. 편안과 설렘이 함께 무대 위를 종종 거리며 대화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연극이 이제 막 시작한 것만 같다. 라라 랜드를 보며 눈물 흘리는 그녀를 안고 나는 감독이 어떻게 시나리오를 작업했을지 궁금했다. 익숙한 러브 스토리의 클리셰를 재즈처럼 변주하는 것. 그것만큼 우리가 매번 사랑을 대하는 방식과 닮은 것이 또 있을까?


 '이 사람이 날 좋아하게 될 줄 알았어요.'

무슨 자신감으로 말했던 걸까? 아니 무슨 자신감으로 알았던 걸까? 나는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당당히 말했다. 우리가 사랑에 빠질 줄 당연히 알았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에서 내가 아까 했던 그 말은 좀 그랬다고 내가 언급하자 그녀가 웃었다. 사귀기 전 그녀 앞에서 사랑에 빠진다는 건 삶과 사랑에 수동적인 태도라며 열변을 토했던 나는 첫 만남을 회고하며 ‘사랑에 빠졌다.‘고 말했다. 사실 그 마저도 부끄러워서 첫마디는 그녀가 날 좋아하게 될 줄 알았다며 사랑에게서 어린아이처럼 도망치듯 미끄러져 숨어버렸다. 사랑의 모순된 면면이 모순된 나를 끄집어내고 마는 걸까? 사랑에는 잘못이 없다는 말을 하기엔 사랑의 별남을 겪은 이들은 사랑에도 분명 잘못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 어찌 됐든 우리가 입을 맞춰 말하는 것은 우리가 첫 눈 맞춤에 곧장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과 지금껏 사랑에 능동적으로 사랑을 변화시켜 왔고 거기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한시도 빠짐없이 노력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낭만과 감상적 태도, 현실과 이상적 바람 사이에 사랑을 두고 아낌없이 물을 주고 있다. 무럭무럭 자라서 열매를 맺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무렴 어떨까 싶기도 하다. 나의 꿈에서 그녀와 나의 첫 눈 맞춤이 영원히 반복 재생될 것만 같다. 그리고 후에 또다시 그런 말을 할 기회가 생긴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될 줄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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