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한 연민
금요일. 월차다.
카시트에 아이를 잘 묶고 나도 안전벨트를 맨다.
5개월만에 가는 친정이라 준비할 것도 많았는데 늦지 않게 출발하게 되어 다행이다.
시동을 켜자 <황정민의 FM대행진> 황족장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차 안을 요동친다.
4년 무사고 운전이기에 힐 신고 운전하는 것 정도는 문제 없다.
골목을 나와 뱅뱅사거리 방향으로 들어선 후 50여미터 지나서 양재대로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우당탕탕탕~~팅팅팅.
차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아니다.
내 차 지붕에 올려놓았던 분유통과 젖병, 그것들을 담았던 사각 철제통이 길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허연 가루를 날리며.
길가로 차를 세운다.
큰 맘 먹고 산 아벤트 젖병 3개 중 2개는 강남역 방향으로, 나머지 1개는 남부터미널 방향으로 굴러간다.
분유통은 분유 가루를 흩뿌리며 떼굴떼굴 굴러가더니 푸르덴셜 본사 앞 횡단보도에 멈춘다.
쏟아진 분유 가루는 뱅뱅사거리 한복판에 구토를 해놓은 듯한 모습이다.
철제통은 대형 화물차가 사뿐히 걷어차는 바람에 모퉁이가 찌그러져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도곡동 방향으로 떨어진다. 이 난동의 대미를 장식하듯 화려한 꽹과리 소리를 내며.
난동의 규모는 작지 않지만 제각기 굴러가는 여러 물체들을 따라가 주워 담기엔 좀 늦은 것 같다.
유아용 카시트에 아이를 앉히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항상 일의 순서가 문제인데, 손에 든 물건을 차 지붕에라도 올려놓고 두 손을 모두 빈 손으로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이 그것이다.
다음부터는 물건부터 차 안에 넣고 아이를 나중에 태우는 게 더 나을까 하고 잠깐 생각해보다가 화들짝 놀란다.
그건 아닌 것 같다.
이건 분명 교통 사고가 아니다. 차도 사람도 아무런 충돌이 없었으니.
게다가 그 번화한 교차로에서 이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목격한 사람은 기껏해야 130명 정도밖에 안될 것 같다.
다행스러운 건, 바쁜 아침시간이라서 그 130명의 행인들도 이 진기한 상황에 그다지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젠 추억일 뿐이다.
그리고 더 다행스러운 건, 요즘엔 운전석 창문 밖으로 머리통을 뺀 상태에서 창문을 올리는 실수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