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한 먹먹함
"아들아, 이번 토요일에 등산 좀 가려는데 운전 해줄 수 있니?"
막 출근하려는 내 뒤에서 아버지가 물으신다.
"네. 토요일에 다른 스케쥴은 없어요."
"그럼, 아침 6시에 출발하자."
등산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무리한 부탁이라는 걸 아시면서도 등산을 권하신다.
그래도 아버지 집에 얹혀사는 입장에서, 아니 아들 된 도리로 보아도 거절할 건은 아니다.
토요일 새벽, 아래층에서 아버지의 걸음 소리가 들린다.
"남이섬 같은 데 가면 수진이도 데리고 다같이 갈 텐데…. 어쨌든 오랜만에 당신이랑 아버지랑 단둘이 진지한 대화도 나누고 좋겠네."
"그렇긴 하겠지. 다리 힘도 없으신데 등산이 될지 모르겠네."
"마니산으로 가자."
"마니산이면…, 강화도요?"
이른 시간이라 강변북로가 한산하다.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산이다.
도무지 안 하던 등산이라 선선한 가을 아침인데도 땀이 제법 많이 난다.
"안 하던 등산하려니 힘이 좀 드네요. 아버진 괜찮으세요? 산이 꽤 높은데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녜요?"
정상에 오르니 말로만 듣던 참성단이 있다.
'여기서 성화 채취를 하는 건가? 생각보단 단출하네.'
참성단 주위에는 이미 산에 오른 사람들 10여 명이 경치를 감상하고 있다.
아버지는 준비해오신 망원경을 꺼내 서해부터 천천히 훑어보신다.
"너도 한 번 봐라. 저기가 북한이다."
"넓은 들판이 보이는데요."
"거기가 연백이다. 아버지 고향."
'아, 맞다. 아버지 고향이 연백이라 하셨었지.'
망원경을 다시 건네 받으신 아버지는 연백이라고 말씀하신 쪽을 오랫동안 바라보신다.
"마침 날씨가 맑아서 더 잘 보이는구나."
"네, 그러네요." 라고 말하며 아버지를 쳐다보다가 아버지가 망원경 밑으로 흐르는 눈물을 조용히 떨구시는 걸 보고야 만다.
다시 망원경을 나에게 건네주시고는 눈을 감고 눈물 젖은 얼굴을 차가운 산바람에 내어맡기신다.
"밤 따러 다니던 동네 뒷산도 보이고."
"…"
"작은 아버지랑 고모는 돌아가셨을 거다. 모진 곳에서 100살까지는 못 사시겠지."
"…"
"니 할아버지는 저 산에 묻고 왔단다."
"…"
"죽기 전에 이산가족 상봉신청 합격이 될는지. 팔십은 넘어야 순서가 온다는데."
"…, 저어, 그러면 5년은 더 사셔야 차례가 오겠네요."
아뿔싸!
안타까워 하시는 아버지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도 해드리지 못한 게 죄송해서 어렵게 한 말씀 드린다는 게 엉뚱한 소리가 되어버린다.
5년이라는 긴 세월을 더 기다리시라는 건지, 아니면 5년 안에는 기회가 안 올테니 포기하시라는 건지.
괜히 망원경만 조몰락거린다.
올라갈 때와는 달리 내려올 때는 투덜거리지 않는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건 세찬 산바람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