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죽음

나에 대한 씁쓸함

by 문기사

할머니가 죽어가고 있다.

'할머니가 돌아가고 계신다.' 라는 표현은 너무 현실의 느낌이 나지 않아서 실례를 무릅쓰고 '죽어가고 있다.' 라는 표현을 쓰기로 한다.

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하여 부모님 집으로 모셔온 지 이틀째다.


그래도 스스로 숨을 잘 쉬고 계신다.

가래가 넘어오는지 가끔 잔기침을 하신다.

물에 적신 거즈로 입 주위를 닦아드리고 한두 방울 정도만 입 안에 흘려보내드린다.


작은 아버지들, 작은 어머니들, 사촌동생들, 고모들도 속속 모여든다.


거실에서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들이 모여 장례 절차를 논의하신다.

안방문을 닫고 작은 소리로 얘기하시면 좋텐데 … 하고 생각해본다.

눈도 감고 계시고 몸도 움직이지 않지만 아마 소리는 다 듣고 계실 것 같다.


나는 베란다에 혼자 앉아서 개밥 그릇에 남아 있는 한 숟가락 정도의 밥알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할머니가 위독하셔서 그런지 낙천적인 또랑이도 요즘 밥맛이 없나보다.


할머니는 둘째인 나보다 언니를 더 좋아하신 게 분명하다.

연탄을 때는 온돌에 살던 유년 시절 할머니는 언니가 먹을 밥을 항상 아랫목에 이불을 덮어 보관하신다.

어차피 보관할 거 내 몫까지 두 그릇 묻어두셔도 텐데 .

언니는 체질상 뜨겁게 먹어야 한다는 게 할머니의 이유다.

언니는 입이 짧아 할머니가 정성스럽게 묻어두었던 밥을 다 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항상 서너 숟가락 정도의 밥을 남긴다.

할머니는, 밥을 남기고 일어서는 언니에게 "왜 다 먹지 그래." 라고 말씀하신 후 "너 먹어라." 라고 나에게 말씀하신다.

난 언니가 남긴 밥그릇을 가져다가 내 밥그릇에 밥을 옮겨 담는다.

한 숟가락 정도의 밥은 남기고.

나의 자존심이다.


언니가 결혼한 후 부모님은 조금 작은 평수의 집으로 이사하시고, 나는 회사 근처 투룸으로 이사한다.

할머니가 나와 함께 사시겠다고 하신 건 언니 때문에 나에게 소홀하게 대했던 지난 날이 미안해서인지도 모른다.

안양의 열세 평짜리 집에서 나와 함께 지내던 삼년 동안 할머니는 생각이 바뀌셨는지 항상 나에게 따뜻한 밥을 주신다.

난 출근할 때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할머니가 차려주시는 아침밥을 다 먹지 않는다.

항상 서너 숟가락 정도의 밥을 남긴다.

나의 자존심이다.

내가 집을 나선 후 하루 종일 혼자 계실 할머니는 아마 그 밥을 쓸쓸히 잡수셨을 것이다.


개밥 그릇을 '툭' 걷어차본다.


할머니는 부모님 집으로 옮겨오신 지 사흘째 되던 날 아침에 거칠게 여러 번 숨을 쉬시더니 '푸드득' 소리를 내고는 죽는다.

할머니의 눈에서 나온 눈물 한 방울이 귀 밑으로 떨어진다.


장례가 끝난 후 안양으로 돌아와 할머니가 쓰시던 방문을 열어본다.

할머니의 냄새가 먼지와 섞여 허공에 떠 있다.


커피 한 잔을 타서 창문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올려놓는다.


이 넓은 공간, 무려 열세 평이나 되는 공간을 혼자 사용할 수 있게 되어 기분이 몹시 좋다.

커피맛이 참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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