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나에 대한 조급함

by 문기사

대낮의 온도가 30도를 웃돌아도 밤에는 춥다.

속리산 입구 잔디밭, 침낭도 없는 맨바닥이라면 그렇다.


대학교에 들어가지 못한 것도 서러운데 더운 여름날 재수학원에 묶여 있는 건 더 참을 수가 없다.

평소처럼 아침에 일어나 학원 가는 것처럼 집을 나선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으므로 일단 멀리 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속리산을 목적지로 정한다. 교과서에서 보았던 정이품 소나무가 생각이 난 것이다.

장마가 시작되려나보다. 아침인데 하늘이 어둡다.


지금쯤 학원에서는 내가 결석한 것에 대해 무척 궁금해 하고 있을 것이다.


부모님은 잘못이 없다. 그냥 내가 못나서 그런 거다.


속리산 행 버스를 탄다.

좌절과 회한과 원망의 무게가 나를 짓눌러 속리산까지 가는 동안 내내 잠만 잔다.


속리산 입구 식당들에는 사람들이 가득차 있고, 노래와 고성들이 산등성을 넘어간다.

배가 고프다.

산 밑이라 그런지 금방 어두워진다.

산 속으로 들어가기에는 늦은 시간이므로 일단 잠을 자고 아침이 되면 산을 올라가려 한다.


잔디가 축축하다.

비옷을 깔고 잔디 공원 한 구석에 앉아 시간을 흘려보낸다.

어둠이 잔디에 두껍게 깔리면 나도 그 어둠을 깔고 누울 계획이다.

별들이 서서히 내려오면 그 별들을 덮고 잠을 청할 것이다.


스무살의 절망은 여름밤의 고독보다 아파야 할 텐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여름밤의 추위, 고독, 배고픔은 힘을 합쳐 나를 더욱 괴롭게 한다.

호텔의 불빛들이 점점 꺼진다.

사람들의 소리도 점점 꺼진다.


지금쯤 집에서는 내가 귀가하지 않은 것에 대해 무척 궁금해 하고 있을 것이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습기와 냉기가 나를 깨운다.

두 시간 정도밖에 못 잔 것이다. 그것도 서른 아홉 번이나 뒤척이면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지만 몸을 녹일 만한 곳은 없다.

비가 내린다.

버스 정류소 건물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한다.

비가 그치고 날이 밝는다고 해도 산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진다.

세상이 검은 색에서 푸른 색으로 바뀌고 있다.

배가 고프다.


안되겠다.

시내 쪽으로 가서 따끈한 걸 먹어야겠다.

첫차를 탄다.

보은 버스 정류장 앞 김밥천국에서 라면을 주문한다.

장마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한다.

번 가출 때는 속리산이 아닌 다른 곳을 선택해야겠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가 문을 열어주신다.

"오늘은 일찍 들어오네. 씻고 밥 먹어라."

밥이라는 걸 먹어야겠다.


나는 너무 조급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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