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한 그리움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일부러 찾아가본다.
오카방고.
낡은 판자로 겨우 간판을 만들어 내건 신당동 떡볶이집의 나무의자들,
동시상영하던 동화극장 뒷마당 벽에 기대어 서 있던 커다란 영화 그림들,
중앙체육관 건너편 허름한 오락실에서 현란한 손놀림으로 시종 흥분한 채 괴성을 지르던 친구 만식이의 갤러그 비행체 소리들,
시체 냄새가 아직도 난다기에 웬만해서는 근처에 가지 않던 수구문 앞에 줄지어 앉아 있던 나물 파는 아주머니들,
땀 흘리며 축구하던 동대문야구장 뒤 공터의 울창한 플라타너스 나무들,
건장한 누나들이 행인들을 무조건 끌고 가서 피를 뽑는다는 소문이 있어 좀처럼 가보지 못했던 계림사와 국립의료원 사잇길,
형형색색 원단들이 사람보다 더 많았던 평화시장의 좁은 통로,
'빨간비디오'를 살 수는 있지만 면도날을 씹는 형들과 누나들이 죽치고 있어 길 건너 종묘 앞에서 바라만보던 세운상가의 불빛들,
학교마다 당번을 정해서 학생주임이 순찰을 돈다는 피카디리와 단성사 극장 앞의 짧은 치마 입은 누나들,
7층짜리, 8층이었을 수도 있다- 대형 서적의 대명사 종로서적의 하얀 서가들,
그리고, 나의 작은 섬 오카방고.
나는 대학입시에 실패한 후 오카방고에 들른다.
앉은 키보다 높은 등받이 의자가 나의 은밀한 좌절을 위로하듯 가려준 오카방고.
조지베이커셀렉션의 아이브빈어웨이투롱을 들으며 아이스크림과 과일이 섞인 파르페를 먹던 기억.
그 후로 난 오카방고에 자주 들르게 된다.
안동에서 올라와 함께 양영학원에 다니던, '억수로' 라는 단어를 거의 모든 문장에 섞어쓰던 재수 친구 형석이와 함께.
오카방고에서 만난 영미와 혜선이는 종로학원에 다니는 재수 친구다.
우리는 어느 여름날 돈을 모아 국일관 나이트클럽에 들어간다.
발에 신발 신은 후 처음으로 가보는 나이트클럽이다.
귓살을 찢을 듯한 소리가 스피커를 흔들어서 금방이라도 벽에 달린 스피커들이 땅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다.
우리는 기본으로 나온 오비맥주를 어설프게 몇 잔 들이킨다.
무대 위에서는 약간의 의상만 갖춰 입은 누나들이 펄쩍펄쩍 뛰어다닌다.
낯선 곳에 처음 와본 영미와 혜선이의 입술이 파랗게 질려가는 것 같다.
"아, 답답하다." 맥주가 맛있다며 벌컥벌컥 들이키던 혜선이가 갑자기 절규한다.
콧등에 맺히는 땀을 연신 손수건으로 닦아내던 영미도 한 마디 외친다. "이건 미친 짓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참이다. '이건 내 체질이 아니야.'
형석이가 내 뒷목을 잡아 끌고 밖으로 뛰쳐나간다.
영미와 혜선이도 쇠고랑 같은 끈이 달린 핸드백을 들쳐맨다.
입을 크게 벌리고 종로를 걷는다.
취기가 올라 벌건 얼굴에 시원한 밤바람이 부딪힌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오카방고로 향한다.
네 명이 앉으면 딱인 아지트 같은 쿠션의자에 몸을 기댄 후 웨이터에게 이렇게 말한다. 큰 소리로.
"파르페 네 개요."
족히 삼십 년은 지나간 것이다.
오카방고는 흔적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