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다.
고등학생이 되고 3월의 어느 날, 조례 시작 전에 한 무리의 선배들이 교실로 들어왔다.
기능부 선배 :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기능부의 2학년 장을 맡고 있는 김철수입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기능부에 대해 소개해 드리려고 왔습니다. 기능부에 가입하게 된다면 방과 후 및 방학 때도 학교에 남아서 기능경기대회를 목표로 훈련을 받습니다. 물론 남들 다 집에 갈 때 학교에 남아서 훈련을 받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힘듦을 견뎌내고 지방기능경기대회에 나가서 입상을 하여 메달을 딴다면 관련 분야의 기능사 자격증을 무시험으로 취득 가능하고 전국기능경기대회 출전권이 주어집니다. 우리 학교 기능부는 지방대회는 물론이고 전국대회에서도 매년 메달을 놓치지 않았던 역사와 전통을 가진 실력 있는 기능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국대회에서 메달을 취득할 경우 대기업에 특채로 들어갈 길이 열리며 산업기사 자격증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집니다. 취업뿐만 아니라 대학을 가게 되더라도 면접에서 상당히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매일 남아서 얼굴을 마주할 수밖에 없으므로 선배님들과의 인맥도 생기며 선생님들과도 친해질 수 있습니다. 혹시 기능부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거나 관심 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실과 교무실 옆의 자동제어 기능부실로 오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내가 전혀 모르던 세상에 대해 듣게 된 순간이었다. 기능부라, 확실히 설명을 듣기론 매력적인 면이 있었다. 당장 내 입장에서 취업은 관심 밖이 되었지만 대학 갈 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나의 관심을 끌기엔 충분했다. 혼자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 옆자리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친구: 야, 니 기능부 어떻게 생각하는데?
나 : 글세, 솔직히 흥미가 좀 생기기는 하는데 확답은 못하겠네. 니는 어떤데?
친구: 나는 기능부 해야 될 것 같다.
나 : 그렇나? 그럼 나중에 점심시간에 기능부실에 같이 한 번 찾아가 볼까?
친구: 그러자.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던가? 우리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친구 한 명까지 총 셋이서 그날 점심시간에 기능부실에 찾아가 보기로 하였다. 왠지 그날 오전이 참 길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점심시간이 되었고, 우리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곧장 기능부실로 찾아갔다.
우리 : (똑똑) 안녕하세요? 기능부에 가입하고 싶어 왔습니다.
선배 : 어, 그래. 잘 왔다. 1학년이야?
우리 : 네, 1학년입니다.
선배 : 지금은 조금 바쁜 일이 있어서 자세한 이야기를 하긴 힘들겠다. 미안하지만 저기 화이트보드에 학번이랑 이름 적고 일단 오늘은 가고, 다음에 부를게.
선배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화이트보드에 학번과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나가려는데 선배가 다시 말하더라.
선배 : 아, 근데 기능부 하려면 방과 후에 학원 다니면 안 된다. 학원 다닐 시간이 없어.
나 : 네? 학원 못 다니나요?
선배 : 어, 못 다녀. 근데 대학 갈 생각이라면 학원 다니는 것보다 차라리 기능부 하는 게 훨씬 이득이다.
나 : 아, 그럼 전 좀 더 생각해 보고 말씀드릴게요. 죄송합니다.
친구들 : 야, 왜? 그냥 같이 하자.
나 : 아니다. 난 좀 더 생각해볼게. 학원 못 다닐 것 같으면 어렵겠다.
그 길로 담임선생님과 상담하였고, 부모님과도 상담해본 결과 기능부는 가입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었다. 대학 진학을 위해 전문 기술을 배우고 관련 학과로 가는 방법도 좋은 방법이겠지만, 나는 공부를 해서 대학가겠다고 결론을 냈다. 여담으로 학기초에 기능부에 가입한 1학년은 정말 많았으나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정말 양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남들 다 하교해서 놀러 갈 때 학교에 남아서 훈련받는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후 시간은 흘러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어느 날, 기능부에서 활약하여 대회 입상까지 하던 친구 한 명이 나에게 기능부를 권한 적이 있었다.
기능부 친구 : 야, 니 기능부 들 생각 없나?
나 : 별로 생각 없다.
기능부 친구 : 야, 니 정도로 노력할 것 같으면 공부하면서 기능부도 하면 완전 대박 아니가? 니 만약 기능부 했다가 전국대회에서 입상이라도 해봐라. 진짜 그 정도 스펙이면 니는 어디든 골라갈 상황이 될 거 아니겠나? 그리고 솔직히 실업계에서 공부만 해서 잘되기는 쉽지 않잖아?
나 : 권유해줘서 고맙다. 내 생각해주는 건 고마운데, 나는 그냥 공부하기로 했다. 니 말이 틀린 건 아니고 공부로 잘되기 쉽지 않겠지만 방법이 있나? 그냥 해봐야지 뭐.
나에게 기능부를 권유했던 친구는 전국대회에서 메달을 딴 경력을 살려 군 복무를 산업기능요원(병역특례)으로 근무하였다.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관련 실습 강의에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 좋은 학점을 받았다고 하더라. 기능부에서 3년을 구른 실력이니 그 정도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비록 기능부를 하지 않았으므로 이 친구만큼의 실기 능력을 갖추지는 못했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였지만, 만약 그날 내가 기능부에 가입하고 전국대회에서 입상을 하였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지는 모르겠다. 혹시 특성화고에 진학한 학생이 공부에는 자신이 없지만 자신을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기능부에 가입해서 일찌감치 전문 기술을 배우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