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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쩔기자 Dec 03. 2019

월급쟁이가 꿈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

[김 부장은 왜 그럴까⑮]



기업의 홍보맨과 기자는 오묘한 관계다. 


기업의 방패막이 돼야하는 홍보맨. 그 방패막을 뚫어야 하는 기자. 서로 양극단의 일을 하고 있지만 서로 웃는 낯으로 봐야하는 공생의 관계. 


근 10년간 기자로서 기업 출입을 하면서 


기업에서 내는 홍보 보도자료를 끼적이고 있을 때면 '과연 나는 기자가 맞는가' 좌절을 하다가도


기업이 잘못되면 월급쟁이 월급은 누가 주나 하는 자기 합리화로 기업 우호적인 기사를 쓰다가도


기업을 '까는' 기사감을 문득 발견할 때면 온데간데없었던 기자로서 사명감이 불쑥 나타나 '기자답게' 기사를 휘어 갈기다가도


막상 기사를 올리려 하면 지난 저녁 술자리에서 농담 따먹기 한 그 기업의 홍보맨의 얼굴이 눈 앞에 아른거리는.


기업 홍보맨인 김 부장과 기자인 나는 그런 애매모호한 관계다.


[사진= pixabay]


기자 출신 김 부장은 홍보맨이지만 누구보다 기자 생리를 잘 안다. 


별 이슈 없이 만나는 자리에선 기자 선배같이 굴다가도


홍보라는 자신의 밥벌이에 있어선 그 생리를 교묘하게 이용할 줄 안다. 


남들은 한 번 가기도 힘든 해외 연수를 기자로 있을 때 한 번 기업인으로 있을 때 또 한 번 다녀온 김부장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이용할 줄도 아는 인물. 


그런 김 부장이 점심 식사 자리에서 불쑥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살면서 중요한 기회를 몇 차례나 놓쳤어요."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전 원래 이공계 출신인데 의대를 가고 싶었죠. 그런데 결국 못 갔어요. 그러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죠. 의학전문대학원이 처음으로 만들어졌어요. 제가 도전만 하면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왜 안가셨어요?"


"그 해 결혼을 했어요. 결혼하고 어찌어찌 하다 보니 시간이 금세 지나가버리더라고요. 기회는 그렇게 어영부영 지나갔죠."


흰 가운을 입고 병원에서 차트를 보며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김 부장의 모습을 그리고 있을 때 옆에 앉아있던 후배가 물었다.

 


"선배는 직장생활하면서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았는데 아직도 꿈에 대한 갈증이 있어요?"




10년 전 기자의 꿈 하나만으로 가슴 뛰던 시절이 있었다. 꿈은 현실의 활력소였고,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마약과도 같은 것이었다. 


꿈에 대한 동경. 


물론 지금도 꿈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꿈은 더 이상 인생의 활력소가 아닌 무거운 짐덩이다.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만큼 고단한 하루하루. 


그런 일상에 차마 꿈을 놓지 못해 틈틈이 꿈을 달성하기 위해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세우고, 끝 모를 지루하면서 일상적인 노력을 이어간다.


[자료= Pixabay]


꿈을 달성하는 드라마틱한 순간은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고, 그 자리는 또 다시 새로운 꿈이 차지한다. 지루하고 끝 모를 노력도 함께.


차라리 멋모를 때 꿈에 대한 환상을 안고 살아가던 시절이 낫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찾아오죠. 그런데 그 기회는 순식간에 지나가버려요. 그러니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아무리 바빠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바쁜 일상 속 불쑥 들려온 김 부장의 꿈 타령. 


이렇게까지 하면서 꿈을 끌어안고 살아야하는 것일까 하는 고민이 들던 차에 정신이 번쩍 든다. 


그래요 김 부장님, 바쁜 일상에 숨이 넘어가도 챙길 건 챙겨야죠!


그나저나 그놈에 기회는 대체 언제 온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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