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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쩔기자 Apr 27. 2023

네가 추는 춤이 돈이 될 수 있을까

경제기자 엄마의 돈 되는 잔소리②


내 인생에 처음으로 초등학교에 학부모 상담을 갔다.     


네 삶에서 학생이 된 게 처음이듯, 내 삶에서도 학부모가 된 게 처음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어설프고 서툴지. 학부모 상담을 가기 위해 대충 청바지에 검정색 티 한장을 걸치고 문을 나서려는데 네 아빠가 그러더라. 요즘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옷 입는 패션이 가장 화두라고. 코로나 시대를 지나고 대면 상황이 많아지면서 젊은 엄마들이 그렇게 옷 차림에 신경을 쓴다는 거야.      


순간, 나는 현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반성했다. 그래서 곧장 옷장으로 가서 브라운톤의 세미 정장으로 갈아입었지. 잔뜩 먼지가 쌓여있는 굽 있는 신발도 꺼내 신으며 전투태세를 갖췄어. '내 자식 쉽게 보지 마세요!'란 메시지를 꾹꾹 눌러 담은 패션이었다.     


"춤을 정말 잘 춰요! 그냥 잘 추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 다른 아이들과 다르죠.". 선생님의 첫 마디는 그거였어. 춤을 출 땐 손동작부터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고.      


아기 때부터 너는 춤을 참 좋아했다. 말도 못 하는 너는 노래만 나오면 엉덩이부터 흔들어댔지.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아빠와 나는 음악을 틀고 또 틀고. 그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넌 아직도 그러고 있으니까.     


요즘 넌 아이브 노래에 꽂혀 있잖니. 사실 아이돌 춤 동작을 따라하는 너를 보면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야. 사랑과 헤어짐, 질투와 유혹을 노래하는 노랫말을 네가 알 리 없겠지만 그래도 여덟살밖에 되지 않는 네가 유튜브를 보며 아이돌 노래와 춤을 따라하는게 맞나 싶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이런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면 너와 사이는 점점 벌어지겠구나 덜컥 겁도 난다.      


상담을 하면서 문득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다는 너의 말이 생각났다.      


너의 재능을 너무 방치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한 생각에 집으로 돌아와 동네에 있는 뮤지컬 학원에 전화를 걸었다. 연기, 노래, 연극을 일주일에 네 번 알려주는 커리큘럼인데, 문제는 그 학원의 차량이 우리 집까지 오지 않는다는 거였어. 내가 일을 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너를 학원까지 데려다 줄 수 있는데 어쩌겠니, 일하는 내가 너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인데 말이야.     



예전에 탁구 국가대표들을 인터뷰 한 적이 있어. 스포츠 엘리트로 키워지는 과정에 대해 들었지. 7살 때부터 탁구를 시작해 부모 중 하나가 달라붙어 훈련장을 데려가고, 지역 곳곳을 다니며 지역 대회에 출전 해 아이들의 포트폴리오를 쌓아준다고 하더구나.      


생의 전부가 탁구로 점철된 어린 시절, 그 아이의 어린 시절 속엔 부모 중 한 사람, 혹은 두 사람 모두의 뼈를 갈아 넣은 희생이 녹아있겠지. 그것을 두고 부모의 희생이라고 한다면, 난 사실 희생에 희 자도 꺼낼 수 없다. 네가 아무리 춤에 엄청난 재능이 있다고 한들 내 재능까지 포기하며 네 삶에 올인 할 생각은 없다. 어쩌겠니, 이렇게 생겨먹은 엄마를 둔 네가 받아들일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염치없지만 난 네가 네 재능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지금 당장이야 네 발로 뮤지컬 학원에 찾아갈 순 없겠지만, 네 스스로 댄스학원을 찾아다닐 수 있게 된다면 춤에 대해 진지하게 빠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춤이 재밌을거고, 좀 지나선 남들보다 잘 춘다는 우월감이 생길 테고. 그렇게 계속 재능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내 재능을 돈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드는 순간이 올수도 있다. 네가 말하는 뮤지컬 배우에 대한 꿈이 그 때도 유효하다면 말이야. 그렇게 현실과 마주하며 깨닫게 될 거야.      


재능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 차고 넘치는데, 그 재능으로 돈을 버는 것은 쉽지 않다는 걸 말이야.     


지금의 넌 말이야, 여전히 춤을 그저 춤으로 즐길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어린 꼬맹이다. 너 같은 꼬맹이를 소위 긁지 않은 복권이라고 하지. 그 안에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재능이 숨어 있는. 그리고 그 가능성과 재능을 발견하는 것은 아직까진 내 몫일 테고. 그런데 한 마디만 붙이자면 말이야, 살아보니 그 특권이 주어진 시간이 그리 길진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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