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도시락을 싸야하는 것도 어제 알림장을 받고 알게 됐지. 알림장엔 의심의 여지없이 준비물에 '도시락'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런데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 잠시 고민을 했다. '여기 쓰인 도시락은 도시락 통을 의미하는가, 도시락 안에 김밥을 채워야 할 의무가 들어간 도시락인가?'. 확인을 위해 네 친구 엄마한테 카톡을 보냈다. 그 엄마는 이미 내일 쌀 김밥 재료를 모두 마련해 뒀더라. 초조해 진 내 마음과는 다르게 너는 첫 소풍을 간다는 생각에 잔뜩 들떠 있었지.
너를 낳고 깨달았다. 엄마는 똑똑해야 한다는 것을.
매달 변화하는 아이의 키와 몸무게를 기억해 누군가 물으면 자동응답기처럼 답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초음파 사진을 다이어리에 꼼꼼히 붙여 신체 발달 상황과 그날의 감정들을 꼼꼼히 기록할 줄 알아야 하며 이유식에 들어가는 야채들을 그램 수에 딱 맞춰서 이유식을 조리해야 한다는 것. 물론 똑 부러지지 못 한 난 애당초 따라갈 엄두도 못 냈지만 말이야. 사실 그런 네 친구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말문이 탁 막히는 순간이 많다. 누군가는 집에 두고 온 아이 얼굴이 어른거려 직장까지 그만둔다는데, 글쎄 사실 새벽에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부턴 네 얼굴 보단 숨가쁜 오늘의 일정이 더 어른거린다.
단축근무, 네 시 퇴근. 요즘 내가 너의 하원을 담당하고 있지.
너와 네 동생의 하원을 도와주셨던 네 할머니가 네 달 동안 독일로 가시면서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2시간 단축 근무를 신청했다. 그렇게 하루 두 시간, 너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게 된 거야. 물론 너와 함께 있는 시간은 소중하지만, 그 소중한 시간을 보장받기 위해 내가 치뤄야 할 기회비용도 적지 않았다. 2시간 단축으로 줄어든 급여와 출근과 퇴근, 또 다시 육아출근으로 이어지는 버거운 일들. 단축된 근로시간 안에 전에 했던 일을 모두 쳐내면서도 동료들에게 느껴야하는 죄책감. 저 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선 단축근무를 연장하는 안을 추진한다고 하는데, 글쎄, 단축근무를 경험하고 있는 입장에선 그것이 저출산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 지 의문이 든다.
단축근무 1달, 보약을 지어먹었다.
1달 사이에 체력은 급격하게 떨어졌고, 체력이 떨어질수록 너에게 짜증을 내는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약의 힘을 빌려 체력이 다시 돌아오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8살이 된 너에게 내 손으로 저녁밥을 해 먹였던 날이 몇 번이나 됐나. 항상 할머니 집에서 저녁을 해결했던 너. 그런 너와 함께 마주앉아 저녁밥을 먹을 수 있는 그 시간이 난 왜 그렇게 버거웠을까. 그렇게 생각을 고쳐 잡으니 너와 네 동생, 그리고 내가 마주앉아 밥숟가락을 드는 저녁 시간이 소중해 졌다.
너를 낳고 달라진 내 삶. "그래도 아이들이 사랑스러우니 괜찮지 않아요?" 하는 말에 마지 못 해 고개를 끄덕이지만,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건 아무것도 없다.
너를 낳고, 또 네 동생을 낳은 후 내 삶의 여유분을 너희들에게 내어줘야 했고, 그런 삶의 변화가 마냥 행복함으로 충만하지도 않다. 그저 달라진 내 삶 속에 행복에 대한 잣대를 다시 세우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지. 물론 이미 네가 없던 내 세상에선 찾지 못했던 가치들을 새롭게 발견한 것도 있다.
네 첫 소풍 도시락에 들어간 김밥은 비록 내가 직접 싼 김밥은 아니지만, 내 마음 만큼은 알아줬으면 좋겠다. 출근 전 새벽에 김밥집에 가서 네가 최고로 좋아하는 치즈김밥 두 줄을 사 온 네 아빠의 정성도 말이야. 그렇게 오늘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오렴. 네 김밥에 대한 책임은 이 정도로 퉁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