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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쩔기자 May 31. 2023

너의 눈물과 맞바꾼 내 술자리

제기자 엄마의 돈 되는 잔소리⑪

"엄마, 내일 언제 올거야?". 어제 밤, 잠자리에 누운 넌 나에게 반복해서 물었다. 난감했다.     


오랜만에 잡은 취재원과의 저녁 자리. 4시 조기 퇴근을 한 지 두 달. 저녁 자리는 가뭄에 콩 나듯 하고 있다. 기자 일이란 것이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라 점심, 저녁 할 것 없이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오후에 너와 네 동생을 픽업해야 하는 내 입장에선 취재원과 저녁약속 한번을 잡기 쉽지 않다. 미룰 수 없는 저녁약속, 너에게 말했다. "엄마 내일 늦으니까 아빠랑 자고 있어.".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너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엄마 일찍 오면 안 돼?", "엄마 몇 시에 올 거야?", "엄마 빨리와.". 그렇게 울다 잠든 너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기자 일도 반쪽, 엄마 일도 반쪽. 발을 딛는 순간순간에 확신이 들지 않고 안개 속을 혼자 걸어가는 느낌.      


기자 경력 14년차에 시니어급 기자. 취재원과 좀 더 탄탄한 관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기자들은 취재원들과 저녁자리를 마련해 술을 마시고, 또 주말에는 필드에 나가 골프도 친다. 그런데 워킹맘이 내 입장에선 너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고작 저녁, 또 고작 주말인데 그 시간을 포기하면서까지 일을 하는 것이 맞는 지 의문이 든다. 너희들이 잘 때 출근하고 또 너희들이 잘 때 집으로 돌아오는 삶. 그렇게 일과 조직에 충성해서 돌아오는 것이 무엇일까.      





오늘은 좀 불편한 기사를 썼다. 한 대기업 팀장이 한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어. 내가 출입하고 있는 회사였지. 이 일을 계기로 익명 직장 커뮤니티에는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그 화살은 회사 CEO(최고경영자)에게 꽂혔지. 물론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데 직장 내 스트레스가 전부가 되지 않았을 테지. 하지만 산업부 기자로서 내가 쓴 기사는 그 팀장이 소속된 직장 내에 직원들의 불만과 내부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조직 내 문제들이었어.      



직장에서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려 삶을 포기할 정도라면 일을 그만두면 되는 것이 아닐까. 글쎄. 조직에서 벗어나 내 시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삶을 나 역시 항상 꿈꾸지만, 사실 조직에서 독립해 경제적으로 자립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더라. 스스로 사업체를 꾸리거나 고정적으로 수익을 발생시키는 자산을 가지고 있다면 좀 다른 삶을 꿈꿈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어느 조직에 소속돼 정해진 시간의 노동력을 조직에 제공하고, 그 대가로 월급을 받는다.      


하루의 대부분을 시간을 조직에 소속돼 일을 하다 보면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의미를 찾게 되기도 하고, 조직 내에서 좀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도 하지. 조직에 어느 수준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에너지를 쏟을 것인가를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다행지만, 그렇지 못 할 때도 있어. 조직생활에 함몰돼 삶과 건강을 잃고 뒤늦게 후회하는 사람들도 주변에 참 많다.      


워라밸. 일과 삶의 균형. 말은 쉽지만 그 선이 어디까지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저녁과 주말시간을 너희들을 위해 할애하다가도 일을 하다 보면 문득 이렇게 기자생활을 해도 되나 싶을 때도 있지. 그래도 너와 네 동생에게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테고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오질 않을 시간이니 그 때까지만이라도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려 노력해 보려고 한다. 물론 일하는 엄마를 둔 너의 성에는 차지 않을 수 있겠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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