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건네는 질문 3.
매주 금요일 오후 2시, 너는 논술학원에 간다. 지난주엔 '정글북' 책을 받아와서는 글밥이 너무 많다며 투덜거렸지. 네가 다니는 영어학원, 피아노학원, 그리고 논술학원.
이 셋 중에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은 바로 논술학원이야. 내 교육관이라 할 만한 게 딱히 내세울 건 없지만, 그나마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거든.
그렇게 꾸역꾸역 책을 읽고 논술학원에 다녀온 너는 네가 쓴 글을 보여줬어. 선생님이 한 질문은 이랬지.
"모글리는 마을에서 사는 게 행복할까요, 아니면 정글에서 사는 게 행복할까요?"
글 속에 담긴 너의 대답은?
"나는 모글리가 정글에서 사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모글리가 자란 곳은 정글이기 때문에 익숙하고 편하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모글리에게 적대적인데 정글의 동물들은 모글리를 따른다."
네 글을 읽는데, 며칠 전 점심 자리에서 만난 한 취재원이 떠올랐어. 대기업에 다니는 부장님이었지. 기자와 취재원으로 만났지만 10년 넘게 알고 지내다 보니 웬만한 친구들보다 서로의 삶을 더 잘 아는, 비즈니스 관계 같으면서도 또 아닌, 그런 사이가 됐다.
부장님은 아내와 두 아들이 있는데, 부장님만 빼고 모두 캐나다에 살고있어. 가족이 캐나다 이민을 준비한 지 벌써 5년이 지났다. 부장님도 빨리 가족 곁으로 가고 싶지만 당장은 그럴 수 없었어. 이민자로 정착하기 전까지는 한국에서 돈을 벌어 가족에게 보내줘야 했거든. 그렇게 아슬아슬 버티고 있었는데, 그날 만났을 땐 이런 말을 하더라.
"이번에 임원 승진 못하면 캐나다 가려고요."
나는 물었지.
"캐나다 가시면 경제 활동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몸 쓰는 일 해야죠. 그래도 애들 크는데 옆에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와이프도 혼자 너무 힘들어하고요."
부장님 가족이 이민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2014년 세월호 참사였어.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이 침몰해 30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중 250명은 단원고 학생들이었지. 꽃다운 나이에 구조를 기다리다 허망하게 희생된 아이들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 정부와 해경의 위기 대응 실패 같은 구조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어.
부장님 부부는 그 사건 이후, 이 사회에서 아이들을 키울 수 없겠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이민을 결심했다.
하지만 캐나다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지.
좋은 일자리는 대부분 자국민 몫이고, 저임금 노동은 이민자의 몫. 그 조차도 일을 시작하기까지 워킹 비자를 위해 여러 장벽이 있었고, 인종차별은 덤이었다.
'이 나라를 떠나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기회를 주겠다.'는 결심이었지만, 부장님을 만날 때마다 느꼈어.
익숙한 환경을 포기한 대가로 짊어진 그 무거운 짐과, 가족을 향한 그리움.
너희 아빠가 늘 말하지.
"우리 딸은 싱가포르에서 대학 졸업했으면 좋겠다!"
네가 10개월쯤 됐을 때 1년간 살았던 싱가포르의 기억이 우리에게 너무 좋았거든. 네가 좁은 한국을 벗어나 좀 더 넓은 세상에서 살아봤으면 하는 마음은 아빠뿐 아니라 나도 가지고 있는생각이야. 물론 그 유학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책임은 결국 우리 몫이겠지만.
네 글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어.
만약 모글리가 마을에 내려가지 않고 평생 정글에서만 살았다면, 마을의 존재조차 모른 채 살았다면 그 삶은 어땠을까?
그 삶이 마을을 경험하고 다시 정글로 돌아온 모글리의 삶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글을 포기하고 마을에서 살았다고 해서, 다시 정글로 돌아간 모글리보다 더 불행하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모글리가 어떤 삶을 살든 정답은 없고, 어떤 삶에서 더 행복감을 느낄진 모글리만이 알 수 있겠지.
어떤 선택이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결국 자신이 지는 거야.
그렇지만 나는 네가 지금까지 네가 경험한 것들의 가치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아직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해서는 호기심을 품으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래야 어느 순간, 네 삶의 방향을 스스로 판단해야 할 때가 오면 스스로 더 행복한 쪽으로 나아갈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