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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는 사람은 강하다

야근 대신 선택한 파이썬, 워킹맘의 작은 결심

by 다미


재입사 후 내가 맡게 된 일은 반도체 회사의 생산관리였다.

업무는 명확했다. 테스트 수율, 설비 가동률, 주간 출하량 등 수많은 데이터를 매일 정리하고 보고서를 만드는 일. 하지만 정작 나의 하루는 너무 복잡했다. 하루 종일 엑셀 파일을 열고 닫고, 데이터를 복사하고 붙여넣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있었다.



그 시간을 줄이고 싶었다.



일을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지만, 더 본질적인 바람은 내 시간을 더 갖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있는 집으로 조금이라도 더 일찍 돌아가고 싶었고, 남편과도 따뜻한 저녁을 나누고 싶었다. 워킹맘에게 ‘야근’은 몸만 힘든 게 아니라, 마음까지 허전하게 만든다.



그런 마음으로 파이썬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독학으로 이것저것 찾아봤지만, 마음처럼 진도가 나가진 않았다. 그래서 결국 과외를 하게 됐다.



첫 수업을 들었을 땐 정말 신세계를 체험하는 기분이었다. 몇 시간 걸리던 반복 작업이 단 몇 줄의 코드로 자동으로 정리되는 걸 보면서, ‘세상에, 이런 게 있었단 말이야?’ 하고 놀랐다. 동시에 걱정도 들었다. ‘내가 이걸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중간에 포기하게 되는 건 아닐까?’ 늘 그렇듯 새로운 시작은 기대만큼이나 두려움도 컸다



. 다행히 두 번째로 찾은 선생님은 정말 잘 가르쳐주시는 분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주저앉지 않도록, 조급해하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그 즈음 읽었던 책에서 문득 한 문장이 떠올랐다. 사이토 다카시의 책이었는데,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용은 아직도 또렷하다. 첼로를 배우고 싶었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 대신,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계속하자’는 목표를 세웠다고 했다. 그렇게 3년을 꾸준히 이어갔고, 결국 첼로를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가 이상하게 내 마음을 붙잡았다. 나는 결심했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매일 하자.”


파이썬을 완벽하게 익히는 게 목표가 아니라,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익숙해지는 것.
일주일에 한 번이든, 하루 10분이든. 계속하기.



지금도 아직 배우는 중이다. 가끔은 코드가 돌아가지 않아 답답할 때도 있고, 여전히 에러 메시지를 보고 멍해질 때도 있다. 그래도 나는 안다.
‘어제보다 오늘 더 이해하게 되었고, 오늘보다 내일은 조금 더 할 수 있을 거야.’

잘하는 사람보다, 매일 하는 사람이 강하다.
그 문장이 요즘의 나를 지탱해준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파이썬을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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