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결혼식은 아니었지만-
결혼식을 끝내면 가감 없이 써보고 싶은 글이 있었다. 바로 결혼식 비용에 대하여- 먼저 나의 경우 원하는 결혼식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지극히 평범한 결혼식을 올렸고 심지에 폐백까지 했다는 사실. 하지만 그 덕에 결혼식 준비가 아주 수월했다. 정해진 룰과 순서만 잘 따라가면되는, 지극히 수동적인 준비 과정이었으니까.
결혼식을 준비하며 가장 경계했던 문장은 '남들도 다 하니까', 대신 항상 새겨둔 문장은 '우리답게'. 어른들에게 불편함을 안기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우리답게 준비하고 싶었다. 우리답게라 함은 사치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중요한 부분만 챙겨가며 식을 준비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견례부터 결혼식 당일까지의 비용은 약 380만 원, 신혼여행 6박 7일 비용 145만 원으로 총 525만 원 정도이다.
약 500만 원으로 결혼식을 끝마쳤다. 내가 원하는 결혼식을 했다면 훨씬 많은 돈이 필요했을 테지만, 그 비용만큼의 만족이 있었으리라 본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 하지만 적당한 금액으로 결혼식을 잘 마쳤기에 그 자체로 후련하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우리가 결혼식을 준비하며 절약할 수 있었던 비용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한복
폐백 진행을 위해선 한복이 필요했다. 구매할 생각은 당연 없었고 대여하려고 알아보던 중, 가까운 친구 한 명이 선뜻 빌려주겠단 반가운 말을 전해왔다. 나의 심중을 파악해준 센스 있는 친구 덕에 절약하게 된 한복 비용. 그리고 양가 어머니께서 각자 셀프로 한복을 구매하셨다. 까다롭지 않은 양가 부모님 덕에 이 또한 절약할 수 있었다. 늘 감사하다.
2. 예물과 예단
상견례 자리에서 예물과 예단은 하지 않기로 합의되었다. 하지만 딸 가진 우리 엄마 마음이 편치 않으셨나보다. 이불과 그릇을 시댁으로 보내셨다. 어쩌다 보니 예단(?)을 하게 된 건가 싶기도 하지만 엄마의 마음과 같이 조심스레 선물한 걸로 마무리하고 싶다. (시댁에서도 부담스럽지 않게 과일을 선물하셨다.)
3. 반지
반지의 경우 하기 싫었던 건 아니고 결혼식 준비 필수요건에 포함되지 않았을 뿐이다. 올해가 가기 전 50만 원 내로 심플한 커플링 하나쯤은 구매하고 싶다.
4. 웨딩 네일 포함 꾸밈비
신부에게 결혼식이라 함은 인생 통틀어 극강으로 아름다워야 하는 날. 디데이를 정해놓고 피부 관리, 몸매 관리에 공을 들이는 게 일련의 준비과정이 된 듯하다. 하지만 난 게으른 탓에 그 어떤 관리도 받지 않았다. 그저 잘 먹고 잘 지내며 건강하게 결혼식 잘 치르자는 생각이 전부였으니까. 그리고 개인적으로 손톱이 답답한 걸 싫어해 웨딩 네일 또한 패스해버렸다. 대신 결혼식 전날 올리브영에서 투명색 매니큐어를 구매했고 열심히 발라뒀다. 어찌됐건 가장 나다운 손으로 부케를 잡았고, 그렇게 결혼식을 끝마쳤다.
5. 부케와 부토니아
동생이 플로리스트인 덕에 부케와 부토니아를 선물 받았다. 부케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동생 덕에 이 부분도 절약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정말이지 아름다운 부케였다.
1. 식장 대관료 75만 원
팬데믹 상황에 맞춰 그리 크지 않은 예식장을 대관했다. 단독홀에 로비 공간이 커서 꽤나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예식 당일 진행 부분에 여러 문제들이 있었고, 역시 싼 게 비지떡이었던가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예식 공간만 봤을 땐 만족스러웠다.
2. 스드메 155만 원
스튜디오 촬영은 하지 않았으니 드메 비용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다이렉트 웨딩이라는 업체를 이용했고 결과적으로 아주 만족스럽다. 플래너가 최소한의 스케줄 조정만 해주기에 그리 비싸지 않다. 동행 서비스가 없지만 카카오톡 및 전화 상담으로 아주 꼼꼼하게 챙겨주신다. 준비 내내 챙겨주신 실장님께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 크다.
3. 웨딩 스냅 60만 원
좀 더 세분화해 보면 웨딩 스냅 촬영비 35만 원, 헤어 및 메이크업 15만 원, 의상 대여 10만 원으로 정리할 수 있다. 만약 다시 스냅을 찍게 된다면 꾸밈비에 15만 원을 소비하진 않을 것 같다. 나의 경우 찍고 싶은 웨딩촬영 컨셉이 명확했다. 골목길 촬영. 만들어진 공간이 아닌 그냥 평소 거니는 골목길에서 촬영을 하고 싶었고 결론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웠다. 우리와 비슷한 작가님이 우리 그 자체의 모습을 아주 예쁘게 담아주셨다.
캐리어를 요리조리 끌어가며 중간에 택시도 타가며 약간 강행군(?)의 촬영이었지만 아주 즐거웠다. 단 하나 아쉬웠던 건 어쩐 지 나와 너무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메이크업과 과하게 꼬부랑 거리는 머리카락들. 나와는 너무 다른 화려한 가면을 줄곧 쓰고 있는 기분이라 불편한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촬영 중간 머리끈으로 머리를 질끈 묶어버렸다.)
4. 상견례 30만 원
두 가족이 처음 얼굴을 마주하는 날. 내 인생 통틀어 가장 불편했던 식사 자리였다 하하. 어른들이 함께 하는 자리기에 격식 있는 공간을 알아봤고, 괜찮은 한식 코스로 예약했다. 이 부분에 있어선 크게 절약하고 싶지 않았다.
5. 헬퍼 비 15만 원, 사진 출장비 5만 원
결혼식 비용 중 가장 아깝지 않은 비용. 선생님이 없었다면 이 결혼식은 엉망진창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선생님이 행하시는 여러 일들에 비해 비용이 적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시어머니께서 봉투를 따로 챙겨주시는 모습을 보고 편안해졌다. 특히나 우리 헬퍼님은 직업정신이 투철한 아주 멋지신 분이었는데, 광안리에서 양산까지 동행하며 나눈 짧은 대화들은 아직도 인상적으로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리고 사진 출장비 5만 원은 현장에서 직접 작가님께 전달했다.
6. 청첩장 10만 원
아주 심플한 내 마음에 쏙 드는 청첩장이었는데 가격이 가장 저렴했다. 오 일석이조로구나! 색연필로 귀여운 그림을 그려 지인들에게 전달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
7. 혼주 헤어 및 메이크업 30만 원
양가 부모님은 예식 장소 근처에서 진행하셨다. 나와 남편은 다른 장소에서 진행했기에 모두가 완벽하게 꾸민 채로 식장에서 만났다.
8. 신혼여행 145만 원
6박 7일로 남해, 하동, 산청을 다녀왔다. 몽글몽글 간지러운 초록들의 설렘이 가득한 자연 속에서 온전한 쉼을 즐기고 왔다. 우리가 존재하는 그 자체를 충만하게 느껴가며 서로의 존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귀중한 시간들이었다. 신혼여행이니 이참에 비싼 호텔에서 호캉스를 즐겨보자!라는 마음도 있었고 실제로 호텔들을 검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뭔지 모를 아쉬운 마음이 계속해서 차올랐고, 결국 자연 속 숙소들로 예약을 해버렸다. 하지만 언젠가 호캉스도 꼭 즐겨보고 싶은 이면의 마음도 존재한다.
음, 그리고 팬데믹 상황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신혼여행지는 아마도 그곳, 네팔이었을테다. 각자의 추억이 진하게 깃든 이 나라에서 정훈과 함께 달밧을 먹고 짜이 한 잔 즐기는 나의 작은 소망은 언제쯤 이뤄질까.
팬데믹 상황에 결혼식 초대하는 일이 쉽진 않았다. 그렇다고 초대하지 않을 수도 없는 참으로 얄궂은 상황. 정훈의 경우 정말 친한 친구 6명, 나의 경우 15명 정도의 친구를 초대했다. 어려운 시국 귀한 시간을 내주는 것에 진심 어린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개인 개인에게 편지를 쓰고 답례 봉투엔 소정의 금액을 넣었다.
어찌 됐건 결혼식이 끝났다. 참으로 홀가분하다. 식장에는 아는 얼굴보다 모르는 얼굴들이 훨씬 많았던 이상한(?) 결혼식이었지만 부모님들을 위함이라고 생각하니 크게 부대끼진 않는다. 허례허식은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예식장에 존재할 수 있어 좋았다. 번쩍 번쩍이는 화려한 드레스가 아닌 한복 같았던 드레스, 색조 화장을 거의 안 한 얼굴, 수수한 손톱, 단발머리까지. 예식 당일 헤어 메이크업 담당자가 색조화장과 묶음 머리를 권유했지만 내가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했다. 어쩐지 내가 아닌 모습으로 화장을 하고 머리를 하면 사람들을 대할 때 불편할 것 같았다. 그냥 평소와 비슷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싶었고 그렇게 했다.
결론적으로 비울 건 비우고 우리 다움을 최대한 지켜가며 결혼식을 잘 치렀다. 그리고 함께 산 지 1년 6개월 만에 드디어 우리에게도 결혼기념일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