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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영신 Jan 25. 2019

[이전글] 반값등록금 요구가 '청년세대 이기주의'인가?

'청년 공동행동' 의미 폄하한 <중앙일보> 칼럼 유감

<오마이뉴스>, 2016년 3월 12일 게재.


▲  지난 3월 9일 <중앙일보>에 실린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의 칼럼 ⓒ 중앙일보


이럴 줄 알았다. 청년더러 그렇게 '분노하고 저항하라'고 훈수를 두지만, 막상 목소리를 내면 밟아버리는 일부 기성세대의 모습. 3월 9일 <중앙일보>에 실린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의 칼럼 '청년행동, 세대 이기주의 맞다'를 두고 하는 얘기다. 

오랜만에 두 팔 걷어붙인 청년들, 그런데…

지난 7일 10개 대학 총학생회와 청년단체 '청년하다'로 구성된 '대학생·청년 공동행동'이 4·13 총선을 겨냥한 6개 공동의제를 발표했다. ▲ 반값등록금 ▲ 최저시급 1만 원 보장 ▲ 공공임대주택 청년층 확대 ▲ 기업 사내 유보금으로 청년층 일자리 확보 ▲ 대학의 자율성 ▲ 대학 의사결정 기구에 학생 참여 보장 등 하나같이 청년 문제 해결을 위해 적잖은 의미를 지니는 과제들이다. 공동행동은 오는 26일 서울 도심에서 집회를 갖고 후보자 토론회, 투표 독려 등의 활동을 이어가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오랜만에 대학생들이 스스로 연대해 행동하는 모습이 눈길을 끌만하다. 아무리 '헬조선'이니 '흙수저'니 'N포세대'니 떠들어도 정부와 정치권이 그 육중한 몸을 움직이지 않으니 청년 당사자들이 직접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최근 총선 청년 네트워크, 대학생 참여 네트워크, 흙수저당, 알바당 등 청년들의 움직임이 우후죽순 일어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런 때 평소 그토록 청년의 역할을 부르짖던 기성세대들이 이들의 작은 도전을 응원하고 격려해주면 참 좋겠건만, 꼭 분위기를 깨고 고춧가루를 뿌리는 이들이 있다. 그나마 특정 주관이 뚜렷한 '가스통 할배'들이 그러시면 '온화한 미소'로 화답해줄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중앙언론에서 근거가 부족한 논리를 펴며 그런 반응을 보이면 청년들의 암담함은 깊어만 간다. 

제 권리 찾는 시민들의 '공동행동'은 정당

"총선을 37일 앞에 둔 7일 '고령자 공동행동'이라는 전국 조직이 출범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차장의 칼럼은 가상의 노인 단체가 노인을 위한 6개 요구사항을 제시하는 상황을 설정하고, 이를 '세대 이기주의'로 몰아갔다. 노인들이 그러면 보기에 안 좋듯, 청년들의 행동도 잘못됐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

일종의 '미러링' 전법을 쓴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하기 어렵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 조직이 자신들의 요구를 정리하고 정치권에 전달하는 것은 너무나도 상식적이고 정당한 정치 행위다. 노인들이 경제·사회적으로 소외를 겪다 직접 단체를 조직해 상황 개선을 위한 목소리를 낸다면 충분히 지지받을 만한 일이다. 청년들의 이번 행동도 마찬가지다. 

청년들이 반사회적인 주장을 펼친 것도 아니고 이 정도 목소리를 낸 것을 두고 세대 이기주의로 폄하한다면, 65세 이상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거나 지하철 무임승차를 허용하는 등의 정책을 이미 시행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세대 몰아주기'인가? 또 공무원연금, 국민연금 논란에서 나타난 이기주의를 굳이 따져보자면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중 과연 어느 쪽이 더 이기적인 주장을 펼쳤는가? 이처럼 이번 <중앙일보> 칼럼은 오히려 세대 이기주의를 부추기고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하는 '불량식품'에 다름 아니다.

청년 문제는 우리 사회 당면 과제가 아니라고?

칼럼 끝부분은 더욱 눈을 의심케 한다. 

"이들(청년공동행동)이 낸 발표문의 그 어느 곳에도 경제적 불평등을 포함한 사회 정의의 문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정책과 제도의 문제 등 우리 사회의 보편적 당면 과제에 대한 도전·개선 의지는 담겨 있지 않다. 이념형이 아닌 생활형 이슈에 운동력을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지만 청년·대학생의 정치 참여에 거는 기성세대들의 기대와는 꽤 거리가 있는 행보다."

중앙 언론에서 중직을 맡고 있는 지식인이 청년들의 저 절절한 요구에 담긴 '우리 사회의 보편적 당면 과제'를 읽어내지 못한다면 적잖이 실망스런 일이다.

등록금, 최저임금, 공공임대주택, 기업사내유보금 등의 문제는 두말할 것도 없이 '경제적 불평등을 포함한 사회 정의의 문제'다. 사회 일부 계층이 터무니없는 학비 부담으로 빚을 쌓아가고, 병아리 오줌만한 알바비로 생계를 위협받고, 살 집이 없어 결혼을 포기하고, 기업의 초과 이익이 노동자에게 분배되지 않는 현실이 어떻게 정의의 문제가 아닐 수 있는가? 

마찬가지로 학생들의 대학 운영 참여 역시 우리 사회 '민주주의'와 긴밀하게 연결돼있다. 대학 캠퍼스에서부터 자율적이고 민주적 의사결정이 이뤄진다면 그 사회 전체의 민주주의가 한단계 더 성숙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럴 거면 차라리 "가만히 있으라"

물론 각자 세계관·가치관이 다르므로 구체적인 방향이나 실현 방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청년들의 깊은 고민이 담긴 요구사항을 두고 '사회적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매도하는 것은 합당한 자세가 아니다. 청년들의 지금 행동이 의미 있는 사안이 아니라면 칼럼에서 말한 "청년·대학생의 정치 참여에 거는 기성세대들의 기대"가 대체 무엇인지 심히 궁금할 뿐이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정책과 제도의 문제", 예를 들면 '테러방지법'을 청년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막아달라는 것인가? (만약 실제로 그런 저항이 크게 일어났다면 과연 어떤 칼럼이 나올지.)

청년공동행동이 발표문에서 말하듯 "청년 문제는 청년 세대만의 문제로 한정지을 수 없다." 등록금, 최저임금, 주택, 소득양극화, 대학교육 등의 문제는 전 세대가 연관돼 있는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이며, 따라서 청년들 요구에 전 사회가 귀 기울일 때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다.

지금 청년들이 벌이는 작은 꿈틀거림은 기성세대를 포함해 사회 전체가 더욱 키워 나가야할 자산이다. 다양한 의견이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 경쟁하는 일이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성찰이 부족한 생각으로 막무가내 주장을 펼치는 일부 기성세대에겐 차라리 그냥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하고 싶다.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청년들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 큰 덩치로 앞을 가로막아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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