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시작된 2냥이 1아기 집사노릇
9년만에 집의 주인이 바뀌었다. 평소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살았던 냥이들 생에 가장 큰 변화가 찾아왔다.
아기가 태어났다!
주변 많은 이들의 우려를 뒤로하고 우리는 2냥이 1아기 라이프를 선택했다. 아기가 태어났다고 해서 9년동안 우리 부부와 동거동락해 온 냥이들을 잠시라도 다른 곳에 보낼 수는 없었다. 많은 어려움과 불편함, 걱정거리들이 산재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늘 해왔던 것 처럼 함께 살아보기로 했다.
냥이들은 이틀정도 아기를 대단히 꺼려했다.
응애애애애애!!! 천둥같은 울음이 터지면 어떻게든 아기와 최대한 먼 곳으로 도망쳤고, 아기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나 낯설었을까. 아기를 무서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대단히 낯설어 했다.
아기와 함께한 지 며칠이 지나자 호기심대마왕 이구름이 조금씩 아기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집사들과 달리 냥이의 다가감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아기는 그들에게 1도 재미없는 대상이었나보다. 옆에 다가와 킁킁 냄새를 맡고 주위를 맴돌아도 손길 한번 주지 않는 아기. 냥이들은 곧 아기에게 관심을 끊고,
그 망할 관심을 아기 침대에 두기 시작했다.....
한시라도 눈을 팔고 있으면 이녀석들이 아기 침대를 차지하려고 기웃기웃 집사 눈치를 엄청나게 본다. 하루는 냥이들이 집안 어디서도 보이지 않길래 혹시나 하고 아기 침대를 들춰보니 그 안에서 이구름의 핑크빛 코가 보였다.
냥이 침입을 막기 위해 아기침대를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담요에 간이의자, 찍찍이, 기타 등등의 것으로 침대를 덮어뒀는데, 저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자고 있는 것...
사실 고양이의 입장을 생각하면 이분들이 크게 무슨 잘못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기 때문에 집안 온도를 계속 24도 이하로 맞춰두다보니, 평소 27-28도에서 생활하던 냥이들에게는 제법 쌀쌀한 온도일 것이다. 그래서 어딘가 깊고 어둡고 따듯하고 폭신한 곳을 찾다보니 공교롭게 그게 아기침대일 뿐.
한편으로는 많이 미안하다.
아기가 집에 온 뒤로 집안 서열도 바뀌었고 (아기->이구름->이보리>집사), 솔직히 아기 보느라 냥이들에게 관심을 이전보다 5%도 못주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보니 냥이들은 늘 찬밥 신세.
따듯폭신깊숙한 아기침대를 사수하지 못한 냥이들은 쌀쌀한 거실에 몸둘 곳이 없다. 그래서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2층으로 밀려날 수 밖에 없는데, 그곳은 냥이들이 쉴만한 곳이 전혀 없는 곳. 집사가 최소한의 도리로 방석을 2개 올려놓긴 했지만, 이 집을 호령하던 호냥이들에게 고작 방석 2개 내어주고 거실을 점령했으니, 그 불편함이 얼마나 클까.
특히나 아기를 어깨에 올려 토닥토닥 하고 있으면 냥이들이 빤히 쳐다보고 있다. 왜냐하면 내 어깨는 원래 냥이들의 쉼터였는데, 내 어깨에 매달려서 궁디팡팡도 받고 마사지를 받는 게 가장 큰 휴식거리 중 하나였을텐데. 아기가 오고나서 내 어깨는 오직 아기에게만 허락된다. 그걸 바라보는 기분이 어떨까.
행여나 아기를 미움의 대상으로 여기게 될까봐 걱정된다. 아니면, 어쩌면 냥이들은 집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영물이기에 우리 아기가 혼자서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갓난이라는 걸 알고 이해해줄까.
어떤 식으로 생각하든 냥이들에게 미안하긴 마찬가지이다. 냥이들은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기 때문에 내가 더 좋은 집사가 되어야 하는데.. 당분간은 그게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아기에게 나쁜짓 하지 않고, 방석에 오줌테러를 할지언정, 아기 침대에는 아직 아무짓도 하지 않고 (하면 진짜 ㅈㄴㄷ.......) 쌀쌀한 온도에 감기기운도 보이지 않고, 아픈 내색 없이 건강하게 지내줘서 고맙다.
진심이다 냥이들아. 조금만 기다려주면, 아마 우리 아기가 너희에게 최고의 장난감이 되어주지 않을까..
(혹은 너희가 우리 아이에게 최고의 장난감이 될 지도 모르겠다)
고맙다. 지금처럼 건강하게 함께 같이 살자.
죽을 때 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