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들은 농.구.에. 미치는가

영하 10도의 날씨에 만난 영상 20도 세상

by 집사가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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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세상 미치도록 추운 어느 날, 오랜만에 농구장에 갔다.



최저 온도 -15도, 체감온도 -20도.


티켓팅을 하려고 줄을 서있는 그 짧은 순간에도 쉴새없이 몸을 흔들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티켓 수령 후 건물에 들어가도 생각보다 그리 따듯하지 않았다. 요즘 지어지는 건물에서는 보기 힘든, 건물의 냉기란 냉기는 그대로 흡수해서 실내 공간으로 발사하는.. 마치 옛 학교 복도처럼 난방이 되지 않는 돌판 복도. 하지만 경기장 출입문을 여는 순간 얘기가 달라진다.



이곳의 온도는 최소 영상 20도. 입고 있던 두꺼운 외투를 손에 걸치고 자리에 앉았다.

자주 찾아가는 축구나 야구 경기장과 다르게 농구, 배구 같은 실내 체육관에 갈 때면 그 특유의 냄새가 있는데,

아주 오래된 나무에서 스믈스믈 새어 나오는 냄새와 먼지 냄새, 그리고 사람 냄새가 참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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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직관의 가장 큰 재미 중 하나는, 바로 현장감이 아닐까. 어느 자리에 앉아도 사각지대 없이 코트가 한 눈에 들어오고, 심지어 방송에 잡히지 않는 벤치, 치어리더들의 모습까지 아.주.자.알. 볼 수 있다.


정말 선수들의 숨소리까지 들리냐고?


그러기엔 팬들의 함성과 장내 방송의 열기가 너무 뜨겁고 시끄럽다.



경기가 조금 시시할 때는 열받은 감독의 오버액션과, 골대 옆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치어리더들의 5초짜리 무한반복 응원을 감상하면 되고, 속공이 진행 될 때는 '끽끽! 삑삑' 거리는 농구화의 방향 전환 소리와 함께 경기 그 자체를 즐기면 된다. 농구라는 게임과 농구장이라는 장소 그 자체가 관중들의 눈을 쉴 수 없게 만든다.




팬서비스의 끝판왕


이 날 경기는, 홈팀 SK가 승리를 거뒀다.

그래서인지 경기 종료 부저가 울리고나서 경기장 분위기는 한껏 더 달아올랐고, 치어리더들이 코트로 뛰어나와 앙증맞은 율동과 함께 프리즈비 원반을 관중석으로 날리기 시작했다. 그 원반의 정체는 나만 빼고 경기장에 모인 모든 관중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원반을 잡은 관중들은 코트로 내려오세요"


라는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가 있기도 전에, 이미 수십명의 관중들이 코트에 모였고, 자유투 체험 이벤트로 선물 한 번, 구단에서 준비한 싸인북에 홈팀 선수단의 싸인을 직접 받을 수 있는 기회로 선물 두 번, 그리고 선수들과 단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선물까지 줬다.


원반을 잡지 못한 대부분의 관중들이 모두 경기장을 빠져나가고, 팬서비스 행사는 약 30분정도 계속됐다. 그 30분 동안, 코트 안에서는 선수와 팬이 직접 접촉하는 팬서비스가 진행됐고, 코트 밖에서는 스태프들이 일사분란하게 경기장을 정비하고 있었다.




딱히 할 게 없었던 나는 구단 관계자로 보이는 한 무리의 남자들이 다가와 "누구 기다리십니까?" 라고 물어보기 전까지, 텅 빈 관중석에 혼자 앉아서 여전히 왁자지껄한 코트를 구경했다.


경기가 끝나고 30분이 지날 때까지 여전히 경기장이 뜨겁게 살아있는 스포츠가 또 어떤 게 있을까.




사진 한 장으로 잠시 추억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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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나와 다시 차갑게 식은 복도를 걸어가는데, 낯익은 선수들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서장훈.

유니폼에 박힌 TTL 마크가 보여주듯,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정말 오랜 기간동안 농구 코트에서 빛났던 선수, 예능에 나와서 춤이나 추고 놀림받는 캐릭터로 알려져야 할 사람이 아닌데..

(개인적으로 나는 레전드로 칭송 받아야 할 운동 선수들이 은퇴 후 예능으로 진출 하는 모습에 쌍수 벌려 반대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연세대 시절부터 늘 헷갈리면서도 그 혼동이 너무 즐거웠던 조동현 조상현 형제. 2000년대 초반 농구를 봤다면 절대 잊을 수 없는 193cm의 흑인 가드 하니발도 사진 속에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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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빠져나오자 다시 현실추위와 맞딱뜨려야 했다. 영하 15도, 체감기온 영하 20도. 그래서인지 오늘은 유난히 경기장에 차를 가지고 온 관중들이 많은가보다. 30분이 지나도 여전히 길게 늘어선 줄.


뜬금없는 마무리

올 봄이 너무 기다려지는 수십가지 이유가 있는데, 저 앞에 보이는 잠실 구장이 큰 이유 중 하나이다. 작년보다 더 자주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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