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레스, 붉은 옷을 입고 첼시에 오다

오랜만에 UEFA 챔피언스리그 직관

by 집사가 되고싶다

킥오프 한 시간 전부터 경기장 주변은 이미 포화 상태였다.


프리미어리그 먹튀의 대명사가 된 토레스가 ATM 유니폼을 입고 스탬포드 브릿지를 찾은 날.

물론, 토레스의 방문보다 첼시 vs ATM의 UEFA 챔피언스리그 매치라는 사실 자체가 훨씬 더 큰 의미가 있겠지만, 빨토 시절부터 토레스를 좋아했던 나에게 어쨌든 의미는 부여하기 나름.

스탬포트 브릿지는 불과 며칠 전 스완지와의 리그 경기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복잡했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경기장 좌석은 약 4만1천석으로 한정되어 있는데 왜 경기장을 둘러 싼 사람은 훨씬 많아 보였을까.

이 날은 MATTEW HARDING STAND,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홈서포터즈석으로 자리를 잡았다. 마치 전쟁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마트에 사재기를 하러 가듯 끔찍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좁은 입구를 향해 몰려들었다.


몇몇은 MATCH DAY PROGRAMME을 보며 대화 하느라 그 긴 줄이 전혀 불편하지 않은 듯 했고, 또 다른 무리의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응원가를 불러댔다 (도대체 응원가가 몇 개니).

그리고 마침내 입성.

좁은 입구를 통해 킥오프를 알리는 휫슬과 관중들의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이 없었다. 서포더즈홀에서 추운 몸을 잠시 녹이고 뭐 적당히 씹어먹을 거리가 없나 기웃거리다가 결국 경기를 조금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곧바로 관중석으로 향했다.

참고: UEFA챔피언스리그 경기가 있는 날은 어떤 종류의 주류도 판매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마법 처러어어엄

국내든 해외든, 축구-야구 경기 직관을 오면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이 있다.

바로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는 저 좁은 계단과 입구를 지나는 순간. 등 뒤로 서포터즈홀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찌든 맥주 냄새가 조금씩 옅어질 때 즈음, 계단을 한 칸 한 칸 오를 때마다 조금씩 나타나는 초록색 잔디와 그 위를 떠다니는 관중들의 함성 소리.


그걸 느끼는 순간이 바로 직관의 묘미가 아닐까.


경기는 1:1로 끝났고, 결국 ATM은 챔스 16강 진출에 탈락했다. 하지만 토레스가 우리 눈 앞에서 멋진 헤더 어시스트를 보여주며 첼시팬이자 토레스빠였던 우리 입장에서는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이 멋진 장면을 눈 앞에서 보다니..!

복잡한 인파를 뚫고 서둘러 철수하는 방송 카메라팀

경기 종료 휫슬과 동시에 필사적으로 뛰어나왔다.

토레스와 그리즈만, 카라스코, 루이스, 오블락 등 ATM 주요 선수들의 모습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마음에 셀 수 없을만큼 많은 인파 사이를 요리조리 뚫고 지나 어웨이팀 버스 대기 장소로 향했다.

나도 one of them 이었지만.. 정말 사람 끔찍하게 많다

어웨이팀 버스 대기 장소는 이미 수십명의 스튜어드와 경찰들로 통제되고 있었고, 저 멀리 스페인에서 날아온 원정팬들이 단체 버스로 이동하는 경로에 인간 바리게이트를 쳐가며 안전한 퇴장을 돕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라리가 서포터즈의 스윀

챔피언스리그 16강 탈락에 대한 우울함? 침체된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이 날 ATM 선수들 어느 한 명도 바로 옆에서 소리치며 기다리는 팬들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심지어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팬들을 외면하며 버스에 탑승한 선수들이 대부분. 우리를 비롯해 수십명의 팬들이 한 시간 넘게 벌벌 떨면서 기다렸는데..

현존 ATM을 대표하는 선수이자 토레스 못지않게 큰 함성과 외침을 들었던 선수, 꼬마 대장 그리즈만.

그리즈만이 등장하는 순간 우리 주변에 있던 한 프랑스인이 각종 프렌치를 구사하며 그리즈만을 불렀지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버스로 타버렸다.



그런데 마침내 드디어 파이널리..!

기다림과 추위와 실망감과 아쉬움을 한 방에 날려준 이가 나타났으니..!


토레스는 진짜 존멋...

유니폼을 입으면 운동선수 스웩으로 멋지고.. 저렇게 수트를 입고 걸어나오는 모습을 보면 세상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을 정도로 멋지다. 물론, 토레스도 팬들에게 직접 다가오는 팬서비스는 생략하고 버스로 직행했지만, 적어도 팬들을 쳐다보며 손을 흔들어주는 최소한의 액션은 보여줬다.

심지어 버스 주변에 몰려든 (나같은 덕후빠) 극성 팬들에게 다시 한 번 액션을 보여주는 센스까지.


2013년 첼시

2014년 첼시

2015년 ATM

2017년 첼시


토레스가 뛴 경기는 이번까지 네 번 직관 했다. 아쉽게도 직관했던 모든 경기에서 그는 더 이상 내가 그리던 빨토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그가 경기장 위에서 뛰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고, 어쩌면 이 날이 '선수' 토레스가 플레이하는 모습을 직관한 마지막 날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경기가 친정팀 ATM 유니폼을 입고, 챔피언스리그에서 첼시를 상대로 선발 출전한 경기였다는 사실에 나 스스로 조금 더 의미를 부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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