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피셔 첫 개인전 '페일 굿 : 실패도 나쁘지 않아'
언뜻 보면 어린 아이의 그림 같았다. 시종일관 유쾌한 늑대와 독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뱀. 불길함 따윈 눈을 씻고 보아도 보이지 않는 까마귀까지. 밑그림 자국조차 지우지 않은, 아이가 크레파스로 쓱쓱 그린 것만 같은 이 컬러풀한 그림들은 보면 볼수록 묘하게 웃음이 지어졌다.
4월 11일까지 서울 한남동의 갤러리바톤에서 열리는 앤디 피셔(Andi Fischer, b. 1987, Germany)의 개인전 '페일 굿(Feil Good ) : 실패도 나쁘지 않아'의 의 첫 느낌이다.
완성작이지만 대충 그린 듯이 보이는 것, 이것이 작가가 의도한 출발점이라고 했다. 실패를 뜻하는 영단어 'Fail'의 'a'를 'e'로 바꿔놓은 전시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피셔의 작품을 관통하는 수식어는 '실패도 나쁘지 않아'라는 유쾌함이다.
'아르 브뤼(Art Brut,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형태의 '원생미술'을 뜻하는 용어로 1945년 장 뒤뷔페가 만들었다)'에 뿌리를 두고 동물의 고유한 특징을 흡수 또는 변주하여 복합적 형상의 독창적인 화풍을 구축해온 작가는 전통적 서사와 현대 회화의 관계를 다시 묻게 한다.
밑칠을 최소화 한 흰 캔버스 위에 오일스틱과 연필로 원색의 평면적 이미지를 즉흥적으로 구축해 나가는 방식은 피셔의 트레이드마크다. 피셔의 그림에는 또 하나의 독특한 점이 있는데 바로 화면의 빈 공간이다. 이는 여백을 미완성의 증거로 간주해온 서양회화의 관습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것으로, 피셔의 그림을 더욱 특징적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다.
커다란 흰 캔버스에 배경 없이 담긴 동물들. 피셔는 고전 회화에서 장식물처럼 그려진 동물들을 전면에 내세웠는데(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까마귀·뱀 등은 독일 태생의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와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작품에 등장한 동물들이다) 오히려 그 여백이 그 동물들의 서사를 마음껏 상상해볼 수 있는 여지가 되었다.
작가는 고전 회화 속 사악한 뱀이나 불길한 까마귀 같은 고정관념을 지우고, 그들에게 새로운 관계와 서사를 선사했다. 그 관계에서 오는 의도된 어설픔 속에서 관객은 자유로운 상상을 시작하게 되는데, 문득 슈베르트의 즉흥곡(F. Schubert Impromptu, Op. 142, No. 3)의 선율이 떠올랐다.
5개의 변주로 이루어진 이 곡에서 느껴지는 슈베르트 특유의 천진난만함이 마치 피셔의 그림 같았기 때문이다. 특히 뱀이 몸을 칭칭 감아도 공포감은커녕 미소를 짓고 있는 어리숙한 늑대와 악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둘째 아이가 예중을 준비하던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이었다. 피아노 선생님은 지난해 입시 곡들을 들려주며 다음 콩쿠르에 가지고 나갈 곡을 선택하게 했는데(수학 학원, 영어학원에서 전년도 기출문제를 풀리듯 피아노를 전공하는 아이들도 지난 입시 곡 중 한 곡을 콩쿠르 곡으로 준비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가 고른 곡이 슈베르트의 즉흥곡이었다.
밤낮없이 열심히 연습한 곡인데 막상 받아든 점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소수점에 달하는 숫자 하나가 많이 아쉬웠는지 '수고했다'는 말 대신 '좀 잘하지' 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철이 없었다. 심사위원 선생님들이 매기는 점수 하나하나에 걱정과 환희가 오가던 시절이었다. 그저 피아노가 좋았을 아이에게 '그래도 괜찮아'라는 말을 왜 해주지 못했을까.
슈베르트의 즉흥곡을 들을 때마다 그때의 순수했던 아이가 떠오르는데, 혹시나 아이에게는 실패의 기억으로 남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늦었지만, 어설프게 써 내려간 지나온 시간들에 '실패도 나쁘지 않아'라는 뒤늦은 위로를 해주고 싶다. 처음이라 서툴렀노라고.
중년이 되어서도 인생은 매번 참 어설프고 지난 일들이 후회되곤 한다. 그런데 앤디 피셔의 그림을 보고 나니 실수가 꼭 오점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작가는 작품에 실수로 남겨진 페인팅 자국들을 작품의 필수적인 부산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실수를 오점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멋진 자신감이다.
어쩌면 인생도 빈 캔버스와 다를 바가 없는데, 앞으로는 인생이라는 캔버스에 남겨질 실수들을 좀 너그럽게 바라봐 주어야겠다. 그 어설픈 흔적들이 곧 나와 내 아이들의 이야기가 될 테니까. 그렇게 우리가 써 내려갈 서사에 짧은 응원을 보내본다. 실수해도 괜찮아.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