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난 '그리움'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던 거 같다. 전시에 대한 소개를 보았을 때 말이다. 에텔 아드난과 이성자의 전시를 소개하는 소개말에서 나는 '그리움'이라는 단어에 꽂혔던 것 같고, 전쟁으로 인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에텔 아드난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이혼 후 아이를 한국에 두고 유학을 떠난 엄마 '이성자'의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상상했던 거 같다. 그 애틋한 감정을 추상화로 어떻게 그려낸거지?
전시의 규모는 생각보다 작았다.(화이트 큐브 갤러리) 우주를 모티브로 삼아 그 세계에 천착했다는 동시대의 두 여인. 상실의 배경까지도 비슷한 두 여인의 그림을 한 전시에 담아보겠노라 기획한 그 기획 의도는 멋있었지만 전시된 두 작가의 그림들은 애석하게도 우주라는 공통점으로는 어떤 접점을 가지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전시에서는 이성자의 60년대 작품이 전시되었기 때문이다. (이성자의 후기 작품에는 우주 모티브가 나타난다.)
50년대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이혼녀가 파리로 혼자 유학을 갔다는 사실만으로도 범상치 않음을 느꼈지만 그녀가 그려내는 그림이 70년이나 지난 지금 보아도 전혀 위화감이 없었다는 것이 더욱 놀라웠다. 솔직히 나는 그녀의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덧칠. 세련된 방법으로 한붓 한붓 세밀하게 덧칠하여 물감을 쌓아 올려간 그림이 세월을 이긴 듯 반짝였다.
이성자는 생전에 그런 인터뷰를 했다. "내가 좋은 붓질을 하면 애들이 건강하리라는 생각으로 그림을 그렸다. 밤낮으로 그림을 안 하면 애들이 어찌 될까 불안하고, 애들이 보고 싶어 괴롭고. 내가 붓질을 하면 아이들이 밥 한 숟가락을 더 먹을 것이다."(1965년 파리에서 아들들을 그리며)라는 생각으로 붓을 잡았다고. 다분히 엄마의 그리움을 표현한 것인데, 그런데. 이상했다.
1950년대 그림을 배워본 적 없는 30대 한국 여성, 세 아들을 두었던 주부, 남편의 외도, 파리로 유학.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잡은 붓. 이 설명대로라면 (일반적인 상황에 비추어보자면) 그녀의 그림에는 처연함이나 절절한 그리움, 자신의 선택(유학)에 대한 후회와 같은, 붓으로 그려낸 통곡이 흘러넘쳐야 할 것만 같았는데, 그녀의 거듭된 붓질에선 그런 비애감보다는 균형감, 자신감, 밝음 같은 호방함과 기개가 넘쳤다. 희한한 일이었다.
문득 이 일반적이지 않은 서사를 가진 '이성자(1918~2009)'라는 작가가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그녀의 이름 앞에는 화려한 수식어가 수도 없이 따라다닐 뿐만 아니라 그녀의 이름을 딴 미술관도 있었다.(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제1세대 한국 추상미술의 주요 화가', '한국 최초의 성공적인 해외파 작가', "한국과 프랑스 모두에게 현대 미술사의 중요한 증거"(미술사학자 강영주, 정영목), "한국과 프랑스의 풍경과 전설이 서로 대화하도록 해준 동녘의 대사"(소설가 미셀 뷔토르) 등등.
의사였던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했지만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이혼을 선택한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고. 그 결정 하나만으로도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상당히 급진파였던 것 같다. 그리고 불어도 잘 못하고 그림을 배운 적도 없는 그녀가 파리에서 성공을 거두고 그 후에 금의환향(서울대학교에서 열린 귀국전시회)을 하고.
이 멋있는 여성 이성자와 15년 만에 재회한 아들(이성자기념사업회 대표)은 오랜만에 만난 엄마가 자신에게 보여준 게 미안함이 아닌 '당당함'이라는 사실이 처음엔 당황스럽고 서운했다고. 하지만 오히려 어머니의 치열함을 닮아 자신들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렇지. 내가 본 이성자의 그림에서 처연함 따윈 찾아볼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네.
비록 '그리움'의 인사이트는 얻지 못했지만, 나는 이 전시에서 엄마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열정을 가진 주체로서의 '엄마'를 만날 수 있어서 솔직히 반가웠다. 그녀의 그림에 비애가 철철 흘러넘치지 않아서. 밝고 단단해서 오히려 반전 있는 전시였다고 할까.
얼마 전 큰 아이가 대학에 입학해 기숙사에 입소했다. 처음으로 떨어져 지내는 건데, 이상하게도 기숙사에 들여보내는 준비 과정 내내 나는 별다른 기분이 느껴지지 않았다. 일반적인 짐작대로 '마음이 허전'해 기숙사에 내려주고 돌아 나오는 길에는 한바탕 눈물이라도 흘려야 마땅하겠거늘, 우리 모녀는 너무나 쿨하게 'bye'를 하고 헤어졌다.
섭섭하겠다고 말을 건네는 주변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나의 모성애를 스스로 의심하던 나에게 마치 의심을 거두라고 말을 건네는 듯해서 이 그림이 더 좋았던 걸까. 이 전시가 '고향 못 간 두 화가'라는 접점 아닌 접점을 만든 전시가 아니라 '엄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주제로 열렸더라면, 3040에게 더 큰 호응을 얻지 않았을까라는 상상을 해보며... 전시장을 나왔다.